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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사의 무게와 창작의 존엄성

저작권에 대한 자기반성

by 시절청춘

오랫동안 당연하게 여겨왔던 블로그 기록을 돌아보다 문득 쓰라린 자기반성에 빠졌다. 매일 밤 책의 문장을 손끝으로 옮겨 적던 필사의 순간들과 그 흔적을 블로그에 그대로 담았던 행의들을 되돌아보니, 짧은 인용은 모르겠지만 한 권의 책 전체를 매일 사진 찍고 그대로 필사하는 건 분명 위험한 발상임을 이제야 느끼게 된 것이다. 마치 익숙한 길을 걷다 갑자기 발밑의 땅이 무너져 내린 듯, 마음 한구석이 불편하고 무엇인가가 어색해졌다.

한 달 정도 전부터 심혈을 기울여 필사하고, 본문을 사진 찍어 나의 생각을 함께 하게 했던 책이 있다. 그 책은 작가의 날카로움과 시대를 꿰뚫는 듯한 강렬한 문장들을 내 마음속 깊은 곳에 담아 둘 수 있도록 써져있었고, 나만의 언어로 재해석하는 과정은 그 어느 때보다 지적인 흥분을 느끼게 만들어 주었다. 그리고, 이렇게 탄생한 기록들을 디지털 공간인 나의 블로그에 조심스럽게 쌓아 올리는 것 역시 큰 기쁨이었다. 마치 나 혼자만의 비밀스러운 지식을 쌓아 올리는 듯한 뿌듯함이 있었다. 그런데 오늘 아침, 문득 '이게 과연 윤리적인 행위가 맞을까?' 하는 날카로운 의문이 머릿속을 스쳤다. 출처를 명시하면 괜찮을 거라고 안일하게 생각했지만, 사실 내가 해왔던 이 행위 자체가 누군가의 소중한 창작물을 무단으로 복제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섬뜩한 깨달음이 뒤늦게 찾아왔다.

서둘러 블로그에 게시했었던 책의 사진과 필사본들을 포함해 작성했던 글들을 비공개로 전환했다. 마치 잘못을 저지른 어린아이처럼 가슴이 두근거리고 얼굴이 화끈거렸다. 특별한 변명거리도 없었다. 그저 오랫동안 간과했던 저작권이라는 보이지 않는 벽을 뒤늦게야 느끼면서 강렬하게 부딪혔던 것뿐이었다.

이제는 누군가의 지적 재산을 그대로 베꼈던 필사는, 나 혼자만 소중히 간직하기로 했다. 필사를 글의 본문에 포함하는 대신, 책의 내용을 깊이 있게 성찰하고 나만의 언어로 소화하여 진솔한 감상을 풀어내는 방식으로 기록의 방향을 전환하고 있다. 어쩌면 이전의 완벽한 필사본 사진과 원본의 내용들이 없어, 얄팍한 지식으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그 안에는 오롯이 나의 시각과 목소리가 담겨 있을 것이다. 이렇게 하는 것이 어쩌면 잘못된 나의 습관을 바로잡고, 나만의 색깔을 찾아가는 새로운 시작이 될 수 있으리라 조심스럽게 기대를 하게 만들어 주었다.

이번 부끄러운 경험을 통해 저작권이라는 묵직한 주제에 대해 다시금 깊이 고민하게 되었다. 한 사람의 고뇌와 열정이 담긴 창작물의 가치는 그 어떤 것으로도 함부로 침해될 수 없으며, 마땅히 존중받아야 한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앞으로 내가 만들어 나갈 모든 글들 역시, 이러한 깨달음을 바탕으로 신중하게 써 내려갈 것을 다짐해 본다. 어쩌면 오늘 깨달은 이 작은 부끄러움이, 앞으로 더 성숙한 기록자로 나아가는 소중한 밑거름이 될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품어본다.




한 사람의 각고의 노력으로 만들어진 창작물은 마땅히 보호받아 마땅하며, 그 누구도 가치를 훼손시키는 행위를 해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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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 이미지 출처 : 캐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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