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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윤시내의 “열애”

by 김지민

2025년 03월 29일 >>>


지난 한 해를 다 잊고 산뜻하게 새해를 맞자는 망년회(忘年會). 교회에 오니 이에 준하는 행사가 송구영신(送舊迎新) 예배다. 한 해 동안의 은혜에 감사드리며, 새해에도 같은 은혜로 함께해 주시기를 간구하는 행사다. 예배의 시작은 대체로 밤 11시. 그리고는 마침내

“10, 9, 8, 7…… Happy New Year!”

세상이 폭죽을 터뜨리고 술잔을 마주치는 그 시각, 교회는 예배를 마치고 애국가 제창을 한다. 1년 내내 찬송가만 부르다가, 그날은 예외로 애국가를 4절까지 다 부른다. 진새골 교회를 11년 다녀 보니, 유일하게 밤 12시를 넘기는 행사가 이것이다.


이처럼 공식 예배는 늦게 시작하여 자정 넘어 끝나지만, 실제 행사는 6시부터다.


1. 6~7시: 집집마다 한 가지씩 해 온 음식으로 함께 팥럭(potluck) 저녁식사

2. 7~9시: 각 순(筍)별로 일정 기간 준비해 온 퍼포먼스/장기자랑, 이후 시상

3. 9~11시: 각자 1년 전 타임캡슐에 묻어 둔 기도제목들을 꺼내 반추 및 나눔


코로나 첫 해인 2020년에는 이 행사가 그냥 강행됐는데, 그때 나는 “임시순장”이었다. 각 10여 명의 순원(筍員)들로 구성된 총 6개 순(筍)의 순장(筍長)들은 모두 1년직. 그런데 우리 순은 마침 순장이 궐석이 되어 연말까지 남은 두 달을 내가 임시로 맡고 있었던 것이다. 교회를 다니면서 맡아 본 유일한 장(長), 최고의 벼슬이었다.


아무리 다녀도 늘 교회가 남의 집 같고, 또 그런 행사 준비는 해 본 적이 없었던 나. 하지만 “임시”라도 할 일은 해야 하는 것. 이런저런 궁리와 논의 끝에 두 가지를 준비했다. 하나는 우리 순(筍) 가정 자녀들의 찬양과 율동, 다른 하나는 가수 뺨치는 실력을 갖춘 어느 순원의 노래였다. 상금과 자존심이 모두 걸린 대사(大事), 팀마다 은밀히 “대단한 준비”들을 하고 있다는 소문이 돌았다. 그리고 막상 뚜껑을 열어 보니, 진짜 입이 딱 벌어졌다. 어디 값비싼 디너쇼(dinner show)에서나 볼 수 있음직한 놀라운 공연을 베푸는 팀까지 나왔다. 그런데 우리 팀은 문제가 컸다. 그 “가수”가 불참 가능성이 있다 하는가 싶더니, 당일에는 연락조차 안 되는 것이었다. 우리 순서는 다가오고, 사람은 안 나타나고, 안 할 수는 없고...... 나는 결단을 내리고 출전자 명단을 고쳤다.


우리 교회에서 나는 소위 PPT --- Microsoft 社의 파워포인트(Power Point)라는 소프트웨어 --- 담당. 모든 예배와 행사에서 슬라이드 넘기는 일을 맡고 있었다. 상황에 따라서는 슬라이드를 직접제작 또는 수정할 때도 있었다. 그날 그 7시 행사, 나는 우리 순(筍)의 그 “가수” 이름을 지우고 이렇게 다시 타이핑해 넣었다.

“5순: 피아노 연주, 윤시내의 <열애>”

피아노 교본이라곤 “어린이 바이엘”도 구경을 못해 본 나. 따라서 차마 연주자 이름까지 적을 수는 없었다. 그러나 내가 곧 선보일 것은 분명 한 판의 “연주(演奏)”는 연주였다. 수정된 화면을 봤는지 아내가 방송실로 달려왔다. 저거 당신이 하는 거냐 해서 그렇다고 했더니, 씩 웃으며 걱정 반 기대 반 얼굴을 하고 자리로 돌아갔다.


집에 피아노가 있는 것도 아니고, 교회에서 몇 번 연습을 한 것도 아니고, 또 마지막으로 건반을 두드려 본 것이 언제인지도 모르겠고...... 나는 그냥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려 앞으로 나갔다. “열애”가 발표됐던 1979년 이후, 눈앞에 피아노가 있고 주변에 크게 방해가 안 될 성싶으면 무작정 한 번씩 쳐 봤던 “40년 불변의 애정”, 그것이 전부였다. 연주 전에 간단히 인사를 드렸다.

“저희 정규 멤버가 급한 일이 생겨 부득이 제가 나왔습니다. 아시다시피 지난 6~7년, 저는 아내에게 100% 순종하며 살았고, 감사하게도 저희 가정은 완벽한 평화를 얻었습니다. 100% 순종은 보통의 사랑으론 안 되고, 뜨거운 사랑, 즉 열애(熱愛)가 필요합니다. 따라서 가수 윤시내씨의 <열애>를 한번 연주해 보겠습니다. 저는 피아노를 배운 적도 없고, 더더구나 100명 좌중 앞에서의 연주는 꿈도 꿔 본 적이 없습니다. 혹시 도중에 듣기 힘드시더라도, 3분만 꾹 참아 주십시오. 감사합니다!”


사람들은 도대체 이게 무슨 영문인가 했을 것이다. 조용히 전주(前奏)가 시작됐다. 실제 노래에서는 가수가 이와 같이 읊는다. 노랫말이 너무 좋다.


“처음엔

마음을 스치며 지나가는 타인처럼

흩어지는 바람인 줄 알았는데

앉으나 서나 끊임없이 솟아나는

그대 향한 그리움”


그리고 본 연주가 계속됐다.


“그대의 그림자에 싸여 이 한 세월~~

그대와 함께하나니 그대의 가슴에 나는~~

꽃처럼 영롱한 별처럼 찬란한 진주가 되리라 그리고~~

이 생명 다하도록...... 태워도 태워도 재가 되지 않는 진주처럼 영롱한~~

사랑을 피우리라”


가사를 특별히 위와 같이 줄 바꿈 한 이유가 있다. 각 물결 표시(~~)마다 건반을 왼편 끝에서 오른편 끝까지, 오른손 네 손가락으로 내가 주르륵 한 번 그어 주기 때문이다. 실제 노래에선 윤시내의 가창력만 돋보이고 반주는 조용하지만, 조잡하기 그지없는 내 솔로(solo) “연주”에는 꼭 필요한 극적 효과다. 아니 어쩌면 그 보다는, 그 노래는 그 네 곳의 그런 강한 액센트가 곡을 훨씬 더 애절하게 만든다고 느꼈을 수도 있다. 음악을 모르는 내가 어떻게 그런 “편곡”을 했을까? 그것은 영원한 미스터리로 남겠지만 아무튼 그렇게 손에 익어 40년...... 본 연주 뒤에 후렴을 한 번 더 치고, 전주와 똑같은 후주(後奏)를 끝으로 치면서, 나는 슬며시 고개를 빼어 들고 아내 쪽을 바라봤다. 본인이든 남편이든, 교회에서 나대는 걸 질색을 하는 아내가, 두 손가락으로 “승리의 브이(V)”를 지어 보이며 환하게 웃어 주었다.


연주를 끝내고 일어서서 인사를 하자 기립박수에 “앵콜! 앵콜!” 함성까지, 예배당은 잠시 그 본연의 자세를 잊은 듯했다. 엉겁결에 땜빵한 것 치고는 대성공이었다. 행사가 끝나고도 여러 교인들께서 찬사를 아끼지 않으셨다. 피아노 전공자에겐 “산토끼” 수준, 하지만 보통 사람의 귀엔 진짜 그럴싸한 한 판의 “연주”로 들렸을까? 참 세상일은 모르는 것이었다. 살다 보니 40년을 기다려 딱 한 번 그렇게 써먹기도 하는 것이었다. 매사에 우리는 준비만 하고, 혹 그 때와 장소를 정하시는 이는 진정 따로 계신 것이 아닐까? 나는 평생 겨우 밥벌이나 하면서 꼼지락꼼지락 늘 뭔가를 궁리하며, 준비하며 살았다. 지금도 그렇다. 그것들이 언제 어떻게 빛을 볼지 또는 끝내 어둠에 묻힐지, 그 생각은 안 한다. 경험상, 어차피 내 뜻대로 안 되니까. 그래도 맘 속에 그런 소망이 있기에 오늘 하루를 살고 또 내일을 기다린다. 어쩌면 소망의 실현보다 소망 그 자체가 더 값진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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