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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목사와 점쟁이, 그리고 아내

by 김지민

2025년 7월 3일 >>>


약 50년 전, 어느 개척교회 목사가 길을 가다가 그 마을 점쟁이와 마주쳤다. 목사와 점쟁이, 상상만 해도 절로 미소가 피어나는 흥미진진한 조우. 아니나다를까 그들은 역사에 길이 남을 기발한 대화를 남겼다.

"안녕하십니까?"

"네, 안녕하세요, 목사님?"

"예, 덕분에요. 최근에 선생님께 점 보러 오신 손님 한 분을 저희 교회로 보내 주셨더군요. 정말 감사합니다!"

"웬 별말씀을요, 목사님! 동종업계에 일하면서 서로 돕고 살아야지요."

하하, 그 점쟁이, 말솜씨가 그 정도 됐으니 점을 쳐서 먹고살았으리라. 몇 해 전, 우리 부부는 뜻밖에 그 유명 목사님을 직접 만나 뵈었는데, 긴 대화 중에 그 점쟁이 일화가 등장해 모두 배를 잡고 한참 웃었다.


그런데 "점(占)"이라 하면, 나의 아내가 또 일가견이 있다. 한때 전국의 용하다는 점쟁이는 다 꿰뚫고 있었을 정도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점쟁이" 덕에, 우리 부부도 오래 등졌던 교회를 출석, 오늘에 이르렀다. 상세한 스토리로 말하자면...... 2009년, 나는 뼈아픈 사업 실패의 고통을 뒤로한 채 시카고에 가 있었다. 어떤 연유로 그 전화가 왔는지는 기억에 없지만, 하루는 아내가 무슨 전화를 받다가 나지막이 물었다.

"여보, 시카고 어느 한인교회라면서 전화가 왔네요, 자기들 교회에 나오라고. 뭐라고 대답하죠?"

"야, 이번에 점쟁이가 그랬다며? 교회를 다니든지, 종교를 좀 가져 보라고? 우리 차제에 교회 다시 나가자."

그렇게 우리는 아내 점쟁이의 생생한 충고를 상기, 10여 년 만에 다시 교회를 갔다. 시카고 북쪽, 차로 1시간 거리의 그레이스교회를 그때부터 한국 돌아올 때까지 2년을 출석, 교회생활을 재개했던 것이다.


그전에 우리는 내 유학시절 몇 년간 교회를 다닌 것이 거의 전부였다. 둘 다 세례까지 받았지만, 솔직히 뭐가 뭔지 하나도 몰랐던 상태. 그런 중에 그레이스교회를 가게 된 것이었고, 성경을 손으로 한 번 적는 --- 실제론 컴퓨터 키보드로 타이핑하는 --- 그 교회 성경필사 대회에서 내가 어쩌다 1등을 했다. 실업자라 시간도 많은 데다 타이핑 속도도 제법 빨랐던 나는, 역대 최단기간인 "66일" 필사 완료로 거기 "명예의 전당"에도 올랐다. 그리고는 한참 뒤 "창조"의 신비를 파고들던 중에, [진화론=100% 허구]임을 확신하게 됐다. 그러자 비로소 "창세기"의 천지창조로부터 시작하는 "성경(聖經)"이 다 이해되고 믿어졌다. 일천하나마 지금의 신앙은 그렇게 하여 얻어졌다. 아직 밥 먹을 때 기도도 안 나오는 엉터리이긴 해도, 여하튼 처자식/사위/손녀손자가 하루빨리 예수 믿기를 밤낮으로 염원하는, 그런 믿음이다.


그렇게 우리는 "점쟁이" 덕에 교회를 다시 찾았고 믿음 또한 향상됐다. 그런데 그 2009년은 아내의 화려한 "10년 점(占) 이력"의 딱 중간 지점이다. 시카고에서의 유학/직장생활 후, 나는 1996년에 귀국, 취직을 5년 남짓 했다가 2002년에 "내 회사"를 차렸다. 그런데 그것이 2004년부터 내리막을 걸었고, 그 어간부터 아내가 점집을 찾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러다가 2014년 우리가 진새골 온누리교회를 다니면서부터는 발길을 끊었다. 내 기억에, 아내는 어느 절친의 매우 놀라운 "경험담"에 혹하여 처음 점집을 찾았다. 그 친구는 "홀어미니 밑 외아들"과 결혼했는데, 그 타이틀이 암시하듯 시집살이가 매우 혹독했다. 견디다 못해 점을 보러 갔더니 점쟁이 왈, 3년 뒤 몇 월에 돌아가시니 인내하며 기다리라고 했다. 놀랍게도 정확히 그렇게 됐고, 그 친구의 말을 들은 아내가 즉시 경기도 일산으로 그 점쟁이를 찾아간 것이었다.


아내가 수도 없이 봤다던 그 점(占)들 중에, 내 점괘가 희망적으로 나온 경우는 한 번도 없었다. 이 집 남편은 앞뒤가 꽉꽉 막혀 --- 하하, 100% 맞는 말이지만 --- 사업은 못 한다, 이 사람은 군인 같은 것이 맞다, 등등의 순전히 암울한 얘기들뿐이었다. 그나마 아내를 위로해 준 것은 자식들 점괘였다. 가는 곳마다 그들이 "크게 될 것"이라 했고, 아내는 철석같이 그걸 믿었다. 딸과 전화 중에 사업 얘기가 나올 때마다 아내가 어김없이 한 말,

"수연아, 아무 걱정 하지 마라. 점쟁이들마다 전부 니는 크게 된다 했다."

아내의 활동무대는 주로 서울/경기지역이었다. 처제 또는 친구들과 용하다는 곳을 골라 다녔다. 부산의 어느 유명 점집은 매일 일정 수 발행되는 번호표가 있어야 점을 볼 수 있었다. 그래서 부산에 사시는 장모님께서 새벽같이 택시를 타고 가 그 점집 문간방에서 잠시 눈을 붙이시는 수고 끝에, 겨우 번호표를 얻었다.


점(占)이라 하면, 나는 점괘 자체보다 그에 관련된 "확률"에 늘 관심이 있었다. 그날, 장모님께서 그렇게 번호표를 받아서 아내 대신 점을 보신 후, 이렇게 전화로 아내에게 물어보셨던 것을 나는 기억한다.

"경희야! 너거 도근이 말띠 맞나?"

맞다, 우리 아들 도근이는 말띠다. 장모님께서도 그 "띠"로 그 점쟁이의 실력을 신속히 한번 가늠해 보고 싶으셨던 것이다. 정말 신기한 일 아닌가? 12분의 1 확률의 "띠", 어떻게 그걸 맞혔나? 사람들이 줄을 서고 돈을 주면서까지 그들의 점괘를 들으려 할 때는, 틀림없이 뭔가가 있다는 게 아내의 지론. 우리 아들의 띠도, 아내 친구 시어머니의 때도, 얼마든지 요행으로 맞힐 수 있다. 하지만 한두 번이 아니고 그런 것들을 "계속해서 맞히니" 손님이 끓는 것이다. 수학적으로, 확률적으로, 어떻게 그것이 가능한가?


한번은 아내가 점을 보러 갔는데, 자리에 앉고 돈을 내자마자 그 여자 점쟁이가 대뜸 하는 말,

"보니까 오늘 딸 자랑 하러 왔네."

일단 이 한 마디로 그 점쟁이는 4분의 1 확률의 불확실성에 도전, 승리했다. 아내에게 딸이 있다/없다가 우선 각각 확률 2분의 1, 딸이 애를 먹여서 왔는지 아니면 진짜 자랑스러운지가 또 확률 반반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떻게 그걸 아내 얼굴만 보고 단번에 말할 수 있었을까? 놀라움은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그런데 얘는 어떻게 학교를 자꾸 다니다가 말다가 하지? 지금 학교 다니고 있어요?"

그랬다. 우리 딸 수연이는 내 회사에서 인턴 한다고 1년 휴학, 그 뒤 침술 배운다고 또 1년 휴학, 그리고 맨 끝에는 벤쳐 회사(brilliant.org) 한다고 세 번째로 휴학을 하여, 아직 대학 졸업장도 없다.


우리가 진새골교회에 처음 왔을 때만 해도, 교인들이 전체 회중 앞에 얘기할 기회가 종종 있었다. 순별 발표, 생일 축하, 결혼기념일 축하 등등. 한번은 내가 마이크를 잡은 김에 재미로 아내의 "점(占) 이력"을 소개했다. 하하, 교회 안에서는 평생 가도 못 들어 볼 희귀한 얘깃거리였으리라. 좌중은 하하호호 웃음바다가 됐고, 나는

"혹시 용한 점쟁이 찾으시는 분은 제 처한테 연락 주세요."

하고 익살맞은 멘트로 순서를 마쳤다. 그래서 그랬나? 그 다음 주 발표된 그해 "서리 집사" 명단에 온 교인이 다 들었는데 내 아내만 쏙 빠졌다. 내가 사무실로 찾아갔고, 다 옛날 일이고 이젠 점 안 본다고 재차 강조, 그 다음 주에 수정 명단이 발표됐다. 건강한 사람은 병원을 안 간다. 아내도 진새골에 싼 전세로 이사를 들어가고 자식들도 잘 되면서는 점(占)은 더 이상 입에조차 안 올렸다.


아내는 영악한 사람이다. 점쟁이한테 섣불리 정보를 먼저 흘리는, 그런 우매한 일은 결코 안 한다. 그런데 그런 침묵/노력을 비웃기라도 하듯, 점쟁이들은 자꾸 맞힌다. 그러니 신기해서 또 자꾸 여기저기 다녔던 것이다. "동종업계" 운운한 그 점쟁이만 봐도, 점쟁이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닌 것 같다. 언어구사, 임기응변에 천재적인 재능이 있어야 할 것 같다. 점쟁이들 눈에 진짜 뭔가가 뵈는지, 나는 정말 궁금하다. 언젠가 어느 교인이 그랬지만, 귀신이 있으면 신(神)도 영(靈)도 있는 것일까? 아내 말대로, 광대한 영(靈)의 영역을 점쟁이들이 일부 침범, 이것저것 조금씩 맞히며 밥벌이를 하는 것일까? 은혜를 많이 입어 진새골교회는 종신(終身) 출석한다고 아내가 선언해 놓은 상태. 그래도 입조심해야 되겠다. 혹시라도 다른 교회 가면 절대로 점집 얘기는 안 해야 되겠다. 혹 아량 좁으신 분을 만나면 교회 출입부터 통제당할지 모르니까.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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