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왠 줄 알어? 내가 참 좋아하는 옷이거든. 그게 말이야...보드~라우니 등이 참 따숩거든 ” 어르신은 차를 타고 나서도 분이 풀리지 않으시는지 했던 말을 하고 또 하셨다. 지금 단단히 화를 내고 계신 우리 어르신은 코로나 격리 전담 병원에서 막 퇴원하는 길이시다.
오미크론이 창궐하여 전 국민이 코로나에 감염되던 22년 초, 우리 요양원도 그 걷잡을 수 없는 전파력을 피해가지는 못했다. 설 명절 직후 실시한 선제 검사에서 어르신들을 돌보는 요양보호사 한 명이 확진되었다. 그 한 명이 200명으로 불어나는 데는 두달이 채 걸리지 않았다. 요양원은 그야말로 코로나로 초토화 된 전쟁터와 다름없었다. 각종 방호복과 소독약으로 무장하고 코호트 격리를 하며 사투를 벌였지만 우리의 무력함만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감염 초기에는 어떻게든 확산을 막고 고령의 어르신들을 보호하고자 확진자들을 코로나 전담병원으로 이송을 해야 했다. 우리 어르신도 그 중 한 분이셨다. 확진자 명단에서 어르신 이름을 확인하던 날 보건소에서는 강력하게 전담병원 이송을 권고했다. 워낙 고령인데다 추가 확진을 막으려면 병원으로 가셔야 한다는 것이었다. 강제나 다름없는 권고였다. 전국적으로 넘쳐나는 코로나 환자로 인해 병상 배정을 받는 것이 하늘의 별따기였던 시기였다. 그런데 이를 어쩐단 말인가? 어렵게 병상 배정을 받고 앰뷸런스까지 연결되었는데 어르신께서 입원을 완강히 거부하셨다.
“ 내가 이렇게 멀쩡한데 가기는 어딜 가? 나는 절대 못 가 ”
“ 코로난지 뭔지 나는 그런 거 몰라... 그 거 다 거짓말이야. 한 발짝도 안 움직일거야 ”
완력까지 써 가며 거부하는 어르신을 설득하느라 한나절이 더 걸렸다. 보건소 직원까지 설득에 나선 후에도 ‘간다’ ‘안 간다’를 수차례 번복한 후에야 구급차를 탈 수 있었다.
요양원의 멋쟁이, 흥부자, 1인실 안방마님으로 살아 있는 권력을 누리고 있는 우리 어르신은 올해 나이 99세다. 1924년생이시니 한국 나이로는 100세다. 만약 누구라도 건장한 체구에 주름살도 찾기 어려운 이 분을 직접 뵈었다면 “ 정말 100세시라구요? ” 깜짝 놀라 반문하였으리라. 워커를 사용하기는 했지만 짱짱하게 걸어서 어디든 가실 수 있고, 한참 젊은 우리들보다 목청도 기운도 좋으셨다. 노래 솜씨도 수준급이어서 행사가 있을 때면 초대가수로 무대에 오르시곤 했다. 그 뿐이랴? 세상 돌아가는 사정에도 밝고 자기 생각도 뚜렷한 분이라 말로는 당해낼 사람이 없었다. 그러다 보니 나름은 까다롭고 요구도 많은 어르신이었다. 맘에 안 드는 일이라도 생기면 어찌나 불호령을 하시는지 어르신 마음을 맞춰드리려 담당 선생님들이 애도 참 많이 쓰셨다. 하지만 위풍당당한 자신감과 호탕함이 매력적인 분이셨다.
어렵게 병원에 입원하여 무사히 격리가 끝나고 퇴원을 하는 날, 보호자는 도저히 모셔올 시간이 안 된다며 요양원에 부탁을 해 오셨다. 이런 일들은 보통 나의 몫이다. 병원이 워낙 멀기도 했고, 격리가 끝난 후에도 감염의 위험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기에 직원들을 보낼 수가 없었다. 어르신을 맞으러 아침부터 서둘러 병원으로 출발했다. 그런데 병원 격리 병동 앞에서 아무리 기다려도 어르신이 나오지 않는 것이다. 한참을 기다리고 있는데 방호복으로 단단히 무장한 병원 직원이 몹시 난감한 표정으로 나를 찾았다. 어르신께서 병원에 입원할 때 입고 온 옷을 돌려주지 않으면 절대 한 발짝도 움직일 수 없다며 병실에서 버티고 계시다는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웃픈 기억이지만 그 당시는 코로나 격리 병동에 들어가면 입고 왔던 옷과 소지품을 모두 소각해야만 했다. 내 옷을 내 놓으라는 어르신은 그 어떤 말로도 설득이 되지 않았다. 달래도 보고 얼러도 보고 살짝 겁을 주어 봐도 막무가내였다. 전화로 엄마를 다독이던 아들도 나중에는 화가 나서 괜찮으니 억지로 떼매서 모시고 오라며 전화를 끊고 말았다. 반 강제로 휠체어에 실려 병원 밖으로 나온 후에도 어르신은 본인 옷을 찾을 때까지 차에 탈 수 없다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셨다. 새 옷을 사 준다는 회유도. 이러시면 여기에 계속 사셔야 한다는 압력도 통하지 않았다.
“ 아이고 내가 별 꼴을 다 봐~ 아니 입던 빤스까지 훔쳐가는 도둑 소굴은 난생 처음이야. 훔쳐갈 게 없어서 노인네 옷을 가져가? 이런 죽일 놈들. 얼른 내 옷 가져와. 가져오기 전에는 절대 안 가, 이놈들아 내 옷 가져와~~~”
얼마나 카랑카랑 소리를 지르시는지 주변에 있는 다른 방문객들이 가던 길도 멈추고 돌아봤다. 다시 아들과 수차례 통화를 시켜드리며 얼른 집에 가시자고 애원을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렇게 1시간이 훌쩍 넘어가며 같이 퇴원하던 많은 분들이 가야할 곳으로 바삐 떠나고, 어떻게든 차에 태우려던 병원 직원들도 지쳐 격리병동의 쇠문을 굳게 닫고 들어가 버렸다. 우리 둘만 남은 삼엄한 병원 주차장엔 꽃샘추위와 어르신의 고함소리만 허공에 맴돌았다.
얼마의 시간이 더 흘렀을까? 어르신을 붙잡고 설득하던 나의 인내심이 바닥날 즈음, 생존 본능처럼 어르신께서 나를 부르셨다.
“ 아가씨 , 나 델러 와 줘서 고마워. 아가씨한테 화 난 건 아니야. 내 옷 줄 때까지 나는 못 가니까 아가씨는 차에 타 있어.. 추우니까 차에 타”
그 카랑카랑하던 목소리는 어디 가고 세상 부드러운 목소리로 흰머리칼이 드문드문한 나를 아가씨라고 부르시는데 마스크 속으로 피식 웃음이 나왔다. 코로나 따위는 중요치 않은 어르신께 그 옷은 이미 소각장에서 한 줌 재로 사라졌을 거라고 아무리 이야기 해 본들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웃음을 참으며 어르신 손을 꼭 잡았다
“ 어르신~ 저 정말 차에 가 있어도 돼요? 진짜 너무 추워요”
“ 어...얼른 가. 얼른 들어가”
“ 그럼 어르신 옷 찾으시면 저기 있는 차로 오세요. 저는 거기서 기다릴게요.”
차 있는 곳으로 살짝 발걸음을 옮기면서 뒤를 돌아보니 씩씩 거리는 어르신이 내 쪽으로 따라 오시는 게 보였다. 여전히 이 도둑놈들을 반복해서 부르시면서 말이다. 모르는 척 슬그머니 차 문을 열며 부축해 드렸더니 어르신께서 힘겹게 올라 타셨다. 얼른 시동을 켜고 히터를 올리고 따끈하게 온열시트 버튼을 눌렀다.
“ 어르신 이제 가 볼까요? 이런 도둑놈의 소굴은 얼른 벗어나는 게 좋잖아요~~”
그랬더니 이제 좀 누그러진 어르신이 화답하신다.
“ 그래, 이제 갑시다. 내가 절대 가만 안 둬..얼른 가”
두 번 다시는 이 곳에 오고 싶지 않다는 어르신을 모시고 병원을 빠져 나오며 왠지 모를 시원한 바람이 가슴에 불어왔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 몸을 가린 방호복을 집어 던질 때의 그 기분이랄까? 코로나에 짓눌렸던 스트레스가 어르신의 당당한 요구 속에서 희석되는 것 같았다. 방역이라는 이름으로 매주 두세 번씩 PCR 검사를 하며 마스크와 방호복에 꽁꽁 갇혀 ‘안된다’는 부정의 언어에 매몰된 요양원의 일상을 대변해 주는 듯 했다. 막무가내로 소리를 지르고 싶은 건 어르신이 아니라 나였는지도 모른다고 말이다.
요양원으로 돌아오는 길에 어르신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마음을 달래드렸다.
“ 어르신 밥은 어떠셨어요? 드실 만 했어요?”
“ 밥은 아주 잘 나오더만. 반찬도 골고루 나오고 맛도 좋았어”
“ 어머 다행이에요...같은 방에 계시던 분들이랑은 불편하지 않으셨어요?“
” 아이구 말도 마. 그거 있잖아. 똑똑 줄에서 방울방울 떨어지는 거 그거 코에 한 이가 있었는데 참 딱하더라구. 맛난 거 먹지도 못하고 말이야“
” 그리고 세수를 못 해서 너무 힘들었어. 아침에 세수를 해야 하는데 할 수가 있어야지...꼼짝 못하게 하니 내 맘대로 할 수 있는 게 없어서 답답했어.... 그래도 간호사들이 참 친절하드만...“
어르신의 이야기는 끝도 없이 펼쳐졌다. 그러더니 또 옷 이야기를 하신다.
” 아니 내가 이런 이상한 소굴은 첨 봐. 싹 다 도둑이여. 남의 옷을 가져가서 안 주는 몹쓸 곳은 첨이야.“
” 어르신, 많이 속상하셨죠? 제가 꼭 나중에 병원 쪽에 항의할게요..그냥 넓은 마음으로 한 번만 용서해 주세요“
” 입고 온 옷만 주면 되는데 너무 속상해....근데 그 옷이 말이야, 내가 좋아하는 옷이거든.“
어르신과 도란도란 이야기를 하는 중에 어르신 손에 들린 작은 전화기도 바쁘게 울려댔다. 큰아들, 작은아들, 막내아들....무사히 병원을 출발한 엄마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마음 졸인 자녀들이 계속해서 전화를 걸어왔다. 어르신은 연신 속상한 마음을 달래느라 옷 이야기를 반복하셨다
” 너 그 옷 알지? 저번에 입고 나갔던 그거. 엄마가 그 옷을 참 좋아하잖아. 왠 줄 알어? 그 옷을 입으면 보드랍고 따뜻하거든. 그래서 그랬어“
새 옷을 사서 가지고 온다는 아들에게 서너번도 더 반복하시던 그 말씀이 너무 정겨웠다. 어르신이 좋아하는 그 옷, 도대체 얼마나 따뜻하고 보드라웠으면 저토록 애지중지 하셨을까? 그 맘을 몰라주고 소각장으로 보내버렸으니 그것은 온전히 나의 잘못인 것 같았다.
‘ 입원하실 때 그 옷은 못 입고 가게 할 걸.. 다른 옷을 입혀 드릴걸... 한 번 더 여쭈어 볼걸... 입원을 안 하겠다고 고집을 부릴 때 그냥 요양원에 계시게 할 걸..’
생각에 생각이 겹치며 애정 하던 주인과 인사도 없이 작별한 그 보드랍고 따뜻한 옷에게도 미안함이 들었다. 그리고 그날 어르신과 돌아오는 차 안에서 생각했다. 저토록 똑 부러지게 내 생각을 말 할 수 있다면 좀 까다로워도 괜찮겠다고, 저 노인의 당당함이 멋지고 아름답다고. 저렇게 나이 들 수 있다면 100세까지 살아봐도 괜찮겠다고.
요양원에 계신 많은 분들이 앓고 계신 치매라는 병은 야속하게도 생각을 멈추게 만든다. 과거에 혹은 특정 사람에게 집착하거나, 방금 전 일도 기억하지 못하는 혼돈 속에 살아간다. 그러다보니 표현할 수 있는 내 생각이란 것이 극히 제한적이다. 표현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무표정 사이로 진주처럼 빛나는 어르신의 언어들이 살아 움직였다. 비록 고집불통 불호령 속에서 추위에 떨다 한나절을 다 소비하고 말았지만 저 매력적인 노인의 옆자리를 꿰찬 것이 행운이란 생각이 들었다.,
모두에게 말씀드리고 싶다. 당당하게 나의 생각과 감정을 표현하고 너무 참지 마시라고, 내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좀 더 솔직해지자고. 다만 조금은 사랑스럽게 예의를 갖추어서.
“ ...... 왠 줄 알어? 내가 좋아하는 거잖아 ”
“ ...... 왠 줄 알어? 내가 가고 싶지 않아서 그래 ”
“ ...... 왠 줄 알어? 내가 오늘 좀 바쁘거든 ”
저토록 당당하고 건강하던 어르신께선 거짓말처럼 딱 보름동안 침대에 누워 계시다가 100세 생일을 이틀 남기고 하늘나라로 이사가셨다. 멋쟁이 우리 어르신, 지금쯤 좋아하던 그 옷을 입고 장구 치고 춤 추고 계시겠지. '얼씨구 좋다'노래 하고 계시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