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바나나의 기적
이야기는 브라질의 아름다운 시골 마을, 가파른 산길에서 시작된다. 여행 중이던 주인공의 낡은 자동차가 갑자기 고장난 것이다. 라디에이터에 누수가 생겨 엔진이 과열되고 말았다. 할 수 없이 집 몇 채가 전부인 작은 산골 마을에 멈춰 서게 됐다. 그러나 작은 가게 몇 개가 전부인 그곳에서는 수리할 곳을 찾을 수 없었다. 애석하게도 가까운 정비소는 20km나 떨어져 있었다. 난감한 주인공의 심정 따윈 상관없이 호기심에 가득 찬 동네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그리고 그때, 별 일 아니란 듯이 한 남자가 외친다
"이건 고치기 쉬워요. Green Banana만 있으면 되죠"
'아니, 라디에이터 재킷에 구멍이 생겼는데 덜 익은 바나나가 무슨 소용이지?'
황당했지만 별스런 방법이 없었다. 그 남자가 하자는 대로 내버려 두는 수밖에.
그 남자는 바나나 하나를 반으로 자르더니 잘린 부분을 라디에이터 재킷에 눌렀다. 그러자 그때 마법 같은 일이 벌어졌다. 바나나가 녹더니 뜨거운 금속 사이에 단단한 접착제가 되어 누수를 즉시 멈춰 세운 것이다.
그저 덜 익은 과일, 아직 때가 오지 않은 과일로만 여겼던 초록 바나나가 이런 신기한 효능을 가지고 있었다니! 놀라웠다. 주인공은 그 특별한 지혜 덕분에 무사히 차를 수리하고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영어 공부를 해 보겠다고 매진했던 십수 년 전, 학원 교제에 실렸던 'The Green Bananas'라는 글의 일부다. 이 글을 읽고 질문에 답을 적어 가는 것이 그날의 과제였다. 모르는 단어를 빼곡히 적으며 읽어 내려갔는데도 도무지 무슨 뜻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글을 이해할 수 없는데 답은 더더군다나 달 수 없었다. 낯선 이국땅 오지에서 갑자기 멈춰 선 자동차의 주인처럼 갑갑하고 막막했다. 그저 타고난 근성으로 무조건 읽고 또 읽기만 했다. 아마 열너댓 번은 읽었던 것 같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끈질긴 반복이 겹치고 겹치던 어떤 한순간, 초록 바나나가 보여준 기적의 장면처럼 번뜩하는 섬광이 일었다. 그리고 문맥이 그림을 그리듯 깨달아지는 것이 아닌가! 전혀 이해할 수 없었던 문장의 중심이 확 안겨들었다. 폭발할 것 같은 쾌감이 몰려왔다. 어려서부터 공부는 그리 밀리지 않았었는데 그런 기분은 처음이었다. 마흔도 더 넘은 여자에게 초록 바나나는 그렇게 기적의 아이콘이 되었다.
전혀 쓸모없어 보여도 누군가의 필요와 만나면 세상에 둘도 없는 귀한 것이 된다는 초록 바나나의 교훈과, 포기하지 않고 반복하다 보면 깨달아지더라는 체험이 만나 나라는 사람의 이야기가 풍성해지기 시작했다. 가 보지 않은 세상에는 특별한 가치와 의미를 지닌 예상치 못한 초록 바나나로 가득 차 있고, 그중 어떤 것은 천천히 익어가며 나의 필요와 마주치기를 기다리고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하니 황홀했다. 내게 필요한 것은 익숙함과 이별을 감행할 용기와 모험뿐이었다.
사실 내가 지금 이런 모습으로 살아가리라고는 한 번도 상상해 본 적이 없었다. 요양원이라니.... 그것도 멀쩡히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서. 아직도 성능이 팔팔하게 살아있는 1급 정교사 자격증과 공무원 신분을 쿨하게 집어던지고 사회복지사로 다시 태어난 지금, 나는 무궁무진한 인생 이야기의 마지막 장을 고이 접는 일을 하고 있다. 덜 익은 바나나는커녕 땡감 수준에도 미치지 못하는 미숙한 내겐 몹시 과분한 일이란 걸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실은 힘들고 버겁다. 도망치고 싶은 순간도 많았다. 끊임없이 대면해야 하는 죽음 앞에서 미리 맛보는 노년의 삶은 쓰고 아렸다. 덜 익은 바나나를 입에 물었을 때처럼.
요양원에서 일하며 초록 바나나가 불쑥불쑥 생각나기 시작한 건 오로지 어르신들 때문이었다. 끝도 없이 하루 종일 워커를 밀고 돌아다니시는 어르신이 계셨다. 돌아다닌다는 표현은 적절치 않다. 운동을 하고 계신 것이었다. 복도 이쪽에서 저쪽 끝까지 아침에도, 점심에도, 저녁에도, 온전치 않은 다리를 뒤뚱거리면서 아랑곳 않고 발을 떼는 어르신의 집념은 대단한 것이었다. 새벽이면 앵두처럼 빨간 립스틱을 바르고 꽃가라가 화사한 티셔츠를 뽐내며 복도를 걸었다. 어르신의 경이로운 요양원 생활은 그뿐이 아니었다. 홈쇼핑을 보다가 덜컥 물건을 사기도 하고, 몰래 어떻게 장만했는지 생활실 한켠에 간장게장을 담아서 숨긴 적도 있었다.
무엇이든 맛있게 드시고 유쾌하며 쉬지 않고 움직이는 어르신을 뵈면서 이곳에 도도히 흐르는 것은 죽음이 아니라 삶이란 것을 보았다. 그깟 영어 문장 몇 줄을 이해하려고 밤을 새우던 내 의지와는 비교할 수 없는 어르신의 걷고자 하는 열망이야말로 초록 바나나의 기적이 아닌가!
우리 옆에 숨 쉬고 있지만 놓치고 있는 수많은 초록 바나나들이 어울려 살아가는 곳, 요양원은 그런 곳이다. 외롭고 아프고 늙어진 초록 바나나, 미숙하고 실수투성이에 철없는 초록 바나나, 고마움은 알지만 표현하지 못하는 초록 바나나, 모시고 싶어도 삶이 힘겨운 초록 바나나, 어쩔 수 없이 일터로 내몰린 생계형 초록 바나나.... 어르신, 보호자, 직원들 모두 손에 쥐고 싶은 노란 바나나가 되기 위해 서로에게 접착제가 되어주어야 하는 곳, 이곳은 그런 곳이다. 그래서 소란도 많고, 아픔도 많고, 눈물도 이별도 많다. 그런데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아직 우리 손은 따뜻하고 걸어야 할 걸음은 많이 남아있다. 월요일에 큰소리로 웃고 화요일엔 춤을 추고 수요일엔 그림을 그린다. 목요일에 수수께끼를 풀고 금요일엔 기도를 한다. 토요일엔 보고 싶던 딸을 만나고 일요일엔 간만에 쉬며 다음 주를 기다린다. 삶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눈물은 좀 나중에 흘려도 된다고, 외로움은 잠시 접어두어도 된다고 오늘도 삶은 노래한다. 그리고 익기를 기다리는 때 이른 초록 바나나에 불과하지만 당신과 함께여서 다행이라는 안심과 위로가 충만하다. 죽으러 왔다며 눈물로 현관문을 넘어섰지만 금세,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이 지속된다는 진리를 겸손히 인정한다.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끈기 있게 마지막까지.
모두가 가야 하는 길 위에서 익어가기 위해 애쓴다는 것은 어쩌면 도처에 숨겨진 나의 초록 바나나를 잘 찾아내는 일이 아닐까 싶다. 무턱대고 믿기엔 불안했지만, 좀 모자라 보였지만, 성에 차지 않았지만 나와 함께 걸어가는 고맙고 따뜻한 가족, 이웃, 친구, 동료들이 있다. 그리고 함께의 힘으로 포기하지 않고 삶을 지킨다, 그 일을 위해 우리가 있다. 밥을 먹여드리고, 기저귀를 가는 선생님들의 손은 어느새 어르신들의 구멍 난 삶을 메우는 초록 바나나가 된다. 집에서는 돌볼 수 없는 애달픈 자녀의 마음도, 이곳을 삶의 터전으로 삼은 선생님들의 통장 잔고도, 공연 봉사를 온 무명 가수의 반짝이는 구두코도 부지불식간에 누군가의 초록 바나나가 된다. 연약하기에 더 쉽게 이어 붙어 한 지붕 가족이 된다.
어르신들의 백발 위로 햇빛이 내려앉는다. 어느새 백발은 은빛으로 반짝인다.
그 은빛 지붕 아래서 펼쳐지는 흥미진진한 삶의 이야기들이 여기 있다. 이곳에 둥지를 틀고 옹기종기 살아가는 우리들의 이야기가 당신께 초록 바나나의 기적 같은 특별한 선물이 될 수 있길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