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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베트남에서 어른이 되었나 - 6

다시 일어날 수 있을까

by 구황작물

그렇게 조금씩 지사가 나아졌다.


처음엔 6달에 한 컨테이너, 3달에 한 컨테이너, 1달에 한 컨테이너.. 한 달에 두 컨테이너


조금씩 물량이 늘어났고 직원들도 많이 생겼다. 회사에서 인정받아 나중엔 내가 원했던 창고도 짓게 되었다.



그 당시 내 나이가 29


회사에서 인정받았다.


지금 생각하면 내가 누리고 있던 것들을 참 감사하며 겸손해야 했어야 되는데


그땐 자만했었다.


멍청하게도..



회사의 믿음과 지원이 없었다면 이룰 수 없던 일들이었는데


어린 나이에 법인장 소리 들으며 살다 보니 내가 정말 뭔가 된 것 같았다.


그때를 생각하면 얼굴이 뜨거워질 만큼 부끄러운 행동도 많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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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시간이 흘렀고 베트남에 온 지 2년 하고도 6개월이 조금 지날 때 즈음


본사에서 3년 주재원 계약 이후 본사로 복귀하라는 얘기가 오갔다.



그 당시 나는 브레이크가 고장 난 열차처럼 앞만 보고 갔다.


누군가 조언을 하던 본사에서 어떤 방향성을 제시하던 내가 하는 말이 맞다고 생각했고


그렇게 행동했었다.


난 아직 더 할 수 있었고 자신 있었다.



당연한 결과지만, 본사에서는 일 못하는 직원은 데리고 가도 말 안 듣는 직원은 참 감당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렇게 그동안 없던 회계감사라던지.. 어떤 압박 같은 게 들어왔다.



아까웠다. 내가 다 만들어 놓은 거래처며.. 내 직원들..


내가 가면 이 일을 누가 대신 할 수 있겠냐는 생각도 있었다.



본사로 가면 이제 다시 바닥부터 시작인데 두렵기까지 했다.




그렇게 난 본사 복귀를 거절하고 퇴사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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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은 쉬고 싶었다.





한 2달을 그렇게 쉬었다.



일할 땐 그렇게 미친 듯이 울려대던 전화기가 조용해지고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조금씩 생각했다.


다시 일해보고 싶다.


사장님들에게 고민을 얘기하자


주저 없이 다시 해보라고, 어리니까 뭐든 할 수 있으니까 걱정 말고


그렇게 30살에 사업을 시작했다.



결론은, 망했다.


내 사업,, 주재원 이야기는 자세한 얘기는 나중에 다시 글로 쓰려고 한다.


지금은 내 결혼이야기니까..


참 웃기게도 날 그렇게 사랑하던 3년 된 베트남 여자친구는 내가 정말 비참하게 망가질 때 떠났다.


사실 어떤 큰 뜻이 있어서 사업을 한 건 아니었으니까 지금 생각해 보면 망하는 게 당연한 수순이었다.




일이 없으니까 뭔가 하긴 해야겠고.. 여자친구와 가족들은 다시 일 안 하냐고 무언의 압박이 오고.


그래서 그냥 했던 것이었다.


그러니 잘 되는 게 이상하지.



하지만 모아둔 돈을 잃는 건 그 당시에는 좀 견딜 수 없을 만큼 힘들었다.


사업이 망하면 보통 돈도 잃지만 건강도 같이 잃는다고..



나도 그랬다.


너무 괴로웠다. 순간의 선택의 실수로 몇천만 원을 날려버렸으니


산전수전,, 공중전 우주전까지 겪었다.



가족도 없는 해외에 혼자 남겨진 기분이란.. 정말 끔찍했다. 그 외로움이 날 비참하게 만들었다.


매일 술에.. 맨 정신으로 버틸 수가 없었다.


빛이 싫어서 매일 대낮에도 커튼을 치고 폐인처럼 그렇게 집에 숨어 지냈다.


마약중독자처럼,, 어떤 일상을 즐거움도 없었고 더 이상 살아가고 싶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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