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발자 모드 속 마흔세 번째 이야기, 강릉 1부
강릉이다. 경기도에서 강원도로 넘어왔다. 눈 떴을 때는 수원이었는데, 분당과 서울을 거쳐 강릉까지 다다랐다. 기상한 지 10시간 만에 네 개 행정구역을 거칠 수 있다니 좋은 세상이다. 마음만 먹으면 이렇게 빠르고 편하게 이동할 수 있는 사실에 감사하면서도 신기해한다. 요새는 국내 여행도 해외여행만큼이나 매력적이다. 올해 엄마와의 여름휴가 장소는 강릉이다. 뚜벅이인 나는 이동의 편의성을 1순위로 둔다. 너무 외진 곳은 매력적인 경치를 가졌더라도 후보에서 제외된다. 역시 운전이 필요하다. 단시간 내 운전을 익힐 수 없기에, 숙소 후기를 비교하면서 세인트존스 호텔을 찾았다. 바닷가 근처면서 약간의 시내 냄새를 풍겨 가까운 거리에 갈만한 음식점이 많은 듯했다. 대부분 택시를 이용하겠지만, 요즘 같은 불볕더위에 택시가 안 잡히는 상황도 대비해야 한다. 걸어서도 밥 먹을 수 있는 동네라면 합격이다. 한 달 전이었던가. 엄마의 의사를 물어 예약한 다음 2박 3일의 일정으로 이곳에 왔다. 여전히 덥다. 다행스러운 점은 택시가 잘 잡혀 쪄 죽을 것 같을 때마다 무사히 피했다. 뽀송뽀송한 피부를 보면 아침에 나올 때를 빼고는 전혀 땀을 안 흘렸다. 만분다행에 감사한다. 체크인이 3시다. 일찍 도착해서 호텔 로비 카페에서 노트북을 켰다. 여행 후기는 쓰고 싶지 않은데, 호텔 자랑도 피하고 싶다. 그러기엔 나보다 전문가들이 너무 많다. 어떤 글을 써볼까.
이전 연재에도 이야기한 대로 거북목 자세 때문에 두통이 오기 시작하여 글 발행을 일주일 세 번에서 한 번으로 줄였다. 의자에 구부려 앉는 시간이 줄어드니 자연스럽게 통증도 사라졌다. 두통에서 벗어나자 살만하다가도 글쓰기 실력도 같이 줄어들 것 같아 조마조마했다. 이번 주 화요일, 정확하게는 월요일에서 화요일로 넘어가는 그날에 밤을 새웠다. 요새 사설 강의에서 단편 소설을 쓰고 있는데, 마감을 지키고 싶어서다. 초고는 이미 합평을 받았었다. 피드백을 어떻게 반영할지 고심하다 사나흘이 흘렀고, 그 고민의 결과를 글에 녹이려 잠을 미뤘다. 몇 년 만에 밤샘인지 대견했다. 생각보다는 글이 잘 풀렸는데, 퇴고에 대한 반응이 어떨지 두 번째 합평을 받아봐야겠다. 총 14명 정원 중 기한 내 단편을 완성한 사람은 2명이고, 퇴고까지 시도한 자는 내가 유일하다. 물론 나보다 소설적인 재능이 뛰어난 사람은 있다. 한 분은 인물의 심리 묘사가 기가 막혔고, 다른 분은 소재 선택이 탁월했다. 이분들과 비교하면 나는 감정도 못 살리고 소재도 평범하기 그지없다. 나한테 믿을만한 구석은 성실이다. 초등학교 방학 때도 서예학원에서 일곱 여덟 시간을 버텨서 선생님이 끝나고 문 잠그고 가라고 열쇠까지 맡겼단다. 지금 생각하면 우둔해 보이는데, 그때도 지금도 가진 게 없어서 시킨 대로 끝날 때까지 한다.
소설이 아닌 글을 쓰니 즐겁다. 컨디션도 이틀 전에 밤을 새운 체력치고는 멀쩡하다. 다음날 양일 치 잠을 자지 않아서 피곤해야 하는데 생각보다 잘 견딘다. 두통도 결국 집필 스트레스에서 기인하지 않았나 싶다. 오늘 소설 강의가 끝나면 새로운 글쓰기를 등록해야 한다. 이상적으로는 상급반 소설 수업을 들어야 하지만 다시 그 창작의 고통으로 들어가기가 두렵다. 지난주 마감된 다른 강의를 대기 신청하고 나서 어제 오전에 자리가 났다는 연락을 받았다. 평소 같으면 분명 봤을 문자를 두 시간 후 확인하면서 안타깝게 기회를 놓쳤다. 소설은 그만 쓰라는 하늘의 계시라면서 자신을 다독였다. 강릉행 기차 안에서 김애란 작가의 《너무 한낮의 연애》를 읽었다. 별것 아닌 이야기 같은데, 술술 읽혔다. 소설 선생님은 합평할 때 자연스러움이 가장 큰 칭찬이라고 했다. 선생님의 조언에 따라 안 읽던 소설도 읽기 시작했다. 기존에 소설은 픽션이라서 흥미를 못 느꼈다. 솔직히 읽지 않았다. 가짜 이야기에 내 감정을 허비하고 싶지 않아서다. 그러나 소설은 치밀하게 만들어진 허구였다. 작가는 글에 드러나지 않은 부분까지 계획해서 인물을 만들어낸다. 역시 아는 만큼 보인다. 바닷가에서 노트북을 치고 있으니 내가 마냥 헤밍웨이같이 대단한 글을 쓰는 사람처럼 느껴진다. 반년 전에는 해변에서 코딩을 꿈꿨었는데, ChatGPT가 등장하면서 글 짓는 업으로 진로를 바꿨다. 뻔하지 않은 강릉 이야기를 이제 시작할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