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발자 모드 속 일흔여덟 번째 이야기
며칠 전에 겪은 일인데, 카페에 앉아있으니 스멀스멀 다시 떠올랐다. 출근길에 아주머니 두 분이 전철을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그 뒤에 줄 섰다. 전철이 왔다. 쇼트트랙 출발선에 선 듯, 그들은 문이 열리자마자 엄청난 반응속도로 빈자리를 향해 돌진했다. 빈 두 좌석은 마주 보고 있었다. 끝에서 두 번째 자리와 임산부석. 반응 속도가 비슷했던 이들은 거의 동시에 두 번째 자리에 도착했다. 여태 내가 알던 한국인의 미덕은 여기서 자리를 양보하는 거였다. 임산부석에는 앉을 수 없으니 말이다.
“저기 가서 앉아.”
“저기는 임산부석인데.”
자리를 차지하지 못한 그녀는 결국 반대편으로 가서 앉았다. 임산부석에 앉은 걸 탓하는 게 아니다. 자리가 비면 앉을 수도 있지, 논점은 한국인의 미덕이 바뀌고 있다는 점이다. 남 그만 신경 쓰고 내 의사를 분명히 표현하기 시작했다. 나는 아무리 컨디션이 안 좋아도 전철 바닥에 쭈그리고 앉으면 앉았지, 임산부석에는 얼씬도 안 한다. 양심보다 사람들 눈초리가 더 신경 쓰인다. 그런 관점에서 아주머니는 용감했다. 남들 시선 따위야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 의사를 전했다. 지인에게 앉을자리까지는 알려주지 말지, 그냥 본인 다리가 아팠다고 했으면 더 나았을 것 같다. 지나친 개인주의는 문제지만, 굴절 없는 자기 의사 표현은 건강한 관계를 만든다. 때때로 하얀 거짓말이 필요한 때도 있겠지만. 문득, 김애란 작가의 〈좋은 이웃〉이 생각났다. 한국인들에게서 유독 심한 과시용 소비는 주변을 너무 의식해서 생겨난 비행 일지도 모르겠다. 남들 좀 덜 신경 쓰고 살자. 나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