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취향대로 이야기하는 한국 순정 만화
신일숙 작가는 나에게 전설 속의 인물이다.
나에겐 8살, 3살 차이가 나는 사촌언니들이 있다. 할머니가 살아계실 때에는 명절이면 친척들이 모두 큰집에 모였고, 덕분에 나는 고등학교 졸업 때까지 사촌 형제들과 무척 친하게 지낼 수 있었다. (생각해 보면 8살, 6살 차이 나는 큰 언니와 큰 오빠가 당신들을 졸졸 쫓아다니는 사촌 동생 무리들과 기꺼이 놀아준 덕분이다.)
글자를 읽기 시작한 아득한 시절부터 아빠가 매월 사 준 만화 잡지(보물섬!)를 보며 자란 나는 역시 만화를 즐겨 읽는 언니들 옆에서 눈동냥, 귀동냥하는 걸 좋아했다. 너는 아직 어려서 이해 못 할걸?이라는 도발은 있었지만, 언니들은 읽고 있는 작품들을 자랑하듯 이야기해 주었다. 그때 8살 차이의 큰 언니가 열정적으로 이야기 해 준 작품이 신일숙 작가의 [아르미안의 네 딸들]이다.
큰 고모(큰 언니의 엄마, 즉 큰 언니는 나와 고종사촌이다) 집에 놀러 가면, 나는 늘 언니 방을 어슬렁 거렸다. 할리퀸 소설과 만화책이 곳곳에 숨겨져 있었던 그 방이 어찌나 궁금하던지. 어느 날 방을 기웃거리고 있던 나를 끌어내는 대신, 언니가 천장에 붙어 있는 수납장을 살짝 열어 말로만 듣던 [아르미안의 네 딸들]의 책을 보여주었다. (아마 자랑하고 싶은 마음에 보여준 것 같다) 나 보고 싶어, 보면 안 돼?라는 요청에, 아직 어려서 이해 못 할걸, 좀 더 크면 봐,라고 반쯤은 약을 올리며 수납장 문을 닫아버렸다. 보여주다 말다니!
한국 만화계에서 손꼽히는 대작, 만화라는 장르를 넘어선 수작, 한국에서도 이런 세계관과 꽉 짜인 구성으로 웅장한 스토리를 보여줄 수 있다는 걸 알게 해 준 기념비적인 작품.
언니는 어린 사촌동생을 앞에 앉혀두고, 초등학생이 이해하기 어려운 단어들로 늘 이 작품에 대해 열변을 토했다. 화려한 수식어로 초등학생의 마음을 들뜨게 만들어놓고는 눈앞에서 작품을 감춰버렸으니.
그래서 나에게 한동안 신일숙 작가의 [아르미안의 네 딸들]은 보려면 때가 될 때까지 숨죽여 기다려야 하는, 섣불리 접근할 수 없는 작품이 되었다.
그런 내가 이 작품을 읽어도 되는 때가 된 건 고등학생이 되고 나서였다. 신일숙 작가의 대서사시가 드디어 완결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읽었으니 아마 그 즈음일 것이다. 다시 한번 찾아보니 1986년에 연재를 시작해 1996년에 완결된, 10년이 걸린 작품이었다.
작품 초반에는 길고 사각형인 얼굴이 당황스러워, 너무 아름답다는 대사에 의문을 가졌지만, 작품이 진행되면서 선이 고와지고 나 또한 그림체에 익숙해져 거부감은 오래 가지 않았다. 물론 아주 어린 시절부터 절대적으로 옳았던 큰 언니의 말 때문에 이 작품에 대한 경건함을 유지하고 있었던 영향도 컸을 것이다. 감히 이 작품에 부정적인 마음을 품어선 안 돼, 뭐 이런 세뇌에 가까운 명령 같은 거 말이다.
다 읽고 나서의 감상은 언니의 열변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우와, 어떻게 그 시절에 이렇게 고대사를 기반으로 상상력을 발휘하여 이렇게 저렇게 엮어 낼 수 있을까 라는 감탄. 고대사를 스토리의 배경으로 다루는 작가의 지식과 상상력에 눈이 반짝거렸다.
그리고 네 자매 중 첫째 레 마누아에 대한 연민.
이 때문에 내가 레 샤르휘나를 얼마나 미워했는지 모른다. 결국은 운명이 문제였지만 그래도, 다 저 애 때문인 거 같아서 말이다.
자신의 욕망을 나라와 왕권 강화로 제한한 단호한 카리스마의 여왕님. 신하들로부터 절대적인 신임을 얻어낸 능력자. 동생들의 운명에 대한 책임감. 하지만 동생들과 부모를 위해 눈물을 흘리는 다정함.
초반엔 전략캐 특유의 야비한 모습이 두드러지긴 했지만 뒤로 갈수록 레 마누아는 이 작품을 읽는 내내 나를 이끌어준 매력적인 인물이었다. 죽음을 맞이하는 장면은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는데, 마지막까지 그녀의 의연함을 보여주어 마음이 아프면서도 납득이 되었다는 감상이 남아 있다. (다시 보니 케네스가 함께여서 다행이었어)
또 하나 강한 여운이 남았던 건 마지막 장면의 에일레스.
나라를 멸망(?)시키고 불새가 되어 어디론가 날아간 (사라진) 레 샤르휘나를 기다리기 위해 잠이 든 에일레스의 모습. 두 페이지에 걸쳐 눈을 감고 길게 누워있는 에일레스의 모습과 그 옆을 지키고 있는 흑표범, 그리고 그의 독백. 이 페이지를 보면서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다시 오기는 하려나, 그래서 깨어날 수 있으려나.
레 마누아에 대한 압도적 편애로 레 샤르휘나를 좋아할 수 없었던 내가, 그녀에게 조금이나마 마음을 열 수 있었던 건 에일레스와의 관계성 덕분이었다. 아르미안의 재앙이라 여겨졌던 그녀였기에 전쟁과 파괴의 신 정도 돼야 운명의 상대가 될 수 있는 것이 딱했고, 각자 속한 곳에서 배제되어 온 두 사람이 이제야 좀 행복해지겠다는데 신이고 인간이고 합세해서 둘을 없애려고 하니.
그들의 행복이 용납될 수 없는 게 아깝고 안타까웠달까. 결국은 죽거나 죽여야 하는 운명으로 알면서도 나아가는 둘의 모습에 여운이 많이 남았다.
사실 여기에 등장하는 모든 주요 캐릭터가 다들 딱함을 가지고 있긴 하다. 에일레스를 떠올리니 계속 이어서 딱한 인물들의 사연에 마음이 착잡해진다.
스와르다는 어떻고(리할에 대해 너무 금사빠인데다 감정오버가 심해서 질린 부분도 있지만, 크세르크세스 마음을 좀 받아 보면 어땠겠니), 리할은 또 어떻냐고(레 마누아에게 선택받고 그녀를 선택하는 순간은 뭐야? 싶지만 - 좋아하면서 왜 빼고 저래? - 레 마우아에게 완벽하게 휘둘리면서도 끝까지 잊지 못하니까 그 부분에선 조금 딱하달까).
케네스는 말해 무엇하며(철부지 순정남), 하다못해 크세르크세스도 딱한 면이 없지 않으니까.(그 시절 최악의 미친후회강공) 주요 출연자가 아닌 네 자매의 어머니인 선대 레 마누와 위 세 명의 생부와의 이야기도 참 딱하고 말이다.
제일 여한이 남지 않은 건 진행 중엔 비극적이었지만 결국은 가장 행복했던 아스파시아와 바헬(페리클레스)이려나.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결국 돌고 돌아 만나서 해로하였습니다, 로. 착하고 상냥한 이의 운명은 오래 걸려도 행복을 얻게 해 주는 걸까. (아니 그렇게 치면 샤리와 에일레스는 뭐 한 것도 없는데 신들의 농간 때문에!)
예언에서 시작하여, 네 자매의 삶이 운명 안에서 뒤틀리고, 의지가 전설이 되는 대서사시라는 점에서 전설 같은 작품.
언니의 영향에서 시작되어 내가 온전히 읽어 낸 후의 이 작품에 대한 감상이다.
(문득 바사라랑 뭔가 비슷하기도 하고, 라는 생각을 했는데 어디선가 두 작품을 비교한 걸 보고 혼자 좋아했었다)
이후에도 신일숙 작가의 작품은 찾아서 보긴 했지만, 왠지 [아르미안의 네 딸들]이 나에겐 정점 같은 느낌이라 다른 작품에 대한 감흥은 옅은 편이다. 전설로 남아 있을 때가 가장 눈 부시다고 할까.
그럼에도 이 작품 하나로도 충분히 레전드라 할 수 있는 작가이니, 나에겐 신일숙 작가는 전설의 작가가 맞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