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내가 할 수 있는 게 이것밖에 없어서
너는 무언가를 시작하면 늘 책을 사는 것 같아
언젠가 나의 대학 동기가 나에게 해준 말이다. 나는 주식을 시작할 때에도, 취미를 새로 시작할 때에도, 서점에 갔다. 심지어는 마음이 힘들 때에도, 마음공부를 시작했다. 책 읽기를 좋아하는 것도 물론 있겠지만, 사실 나는 그저 자리에 앉아 책을 펴고 공부하는 것이 가장 익숙할 뿐이다. 삶의 많은 시간을 공부로 보냈고, 나는 꽤나 거기에 열심이었다. 성공한 사람이 자신의 성공방식을 다른 사람에게 강요한다는 말처럼, 나도 내 나름대로 얻은 성공방식인 '공부'를 나에게 밀어 넣었다. 이 흐름이 나를 배신하곤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매번 가장 마음이 편안한 방식을 선택하고 만다. 이쯤 되면, 공부를 좋아할지도?
내가 생각하는 공부란 뭘까? 공부의 정의는 어디까지로나 확장될 수 있지만, 내가 여기서 말하고 싶은 공부는 학생 때의 그 공부다. 지식의 습득과 새로운 것에 대한 배움.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회사에서 하루를 보내며, 수많은 어려움을 만난다. 그리고 난 어려움에 짓눌리면 이 공부로 도망친다.
내가 회사에서 만난 첫 번째 시련은 단연, 무능함이었다. 내게 던져진 업무를 난 제대로 처리할 수 없었고, 어디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감도 오지 않을 때, 무식한 나는 도서관으로 향했다. 그리고 전공책을 폈다. '내가 배움이 부족해서, 대학원에 가지 않아서 일을 못하는 것일지 몰라.'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래서 대학원을 다니는 친구들에게 대학원생들이 쓰는 책이 무엇인지 물어보고 다짜고짜 그 책을 샀다. 석사를 졸업한 동기 언니가 그거 공부하는 게 회사일에 도움이 되는 게 아니라 말렸지만 듣지 않았다. 두꺼운 책을 펴고 이해할 수 없는 문장에 밑줄을 그어가며 공부했다. 나는 전공을 어느 정도 살려서 회사에 입사했기 때문에 그 과정이 아예 도움이 되지 않는 일이라곤 할 수 없지만, 돌아보면 80퍼센트는 도움이 되지 않았다. 어쩌면 90퍼센트? 그때 내가 취했어야 할 것은 선배들에게 더 물어보기, 회사 자료를 찾아보고 이해하기, 내가 한 업무를 피드백하고 복기하기였을 것이다. 목표에 맞지 않는 해결법이었다. 하지만, 그 과정이 그 시절에 힘든 나에게 심리적으로 큰 위로가 되었던 것은 분명하다.
회사에서 만난 두 번째 시련은 역시 관계다. 왜 저 녀석은 저렇게 밖에 말을 못 하는지. 그놈의 임원 만들기에 왜 저렇게 혈안이 되어 있는지. 내가 퇴근시간과 주말을 반납해 가며 만든 이 성과가 세상에 도움이 될 거라고 내 마음을 두둥실 하늘 높이 떠오르게 했으면서, 왜 너 녀석에게만 도움이 되고 끝나는지. 난 아주 이상적인 사람이다. 모두가 함께 으쌰으쌰 하면 세상을 더 아름답게 만들 수 있고, 모두가 그런 세상을 꿈꾼다고 생각한다. 나는 성선설을 믿는다. 그래서 지극히 현실적인 회사의 수많은 관계에서 방향을 잡지 못하고 휘둘렸다. 이때, 내가 취한 선택도 역시 공부였다. 나는 심리학 책을 닥치는 대로 읽기 시작했다. 내 심리기작을 이해하고, 세상의 관계들을 이해하고 공부하고 싶었다.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공부를 통해 알아가고 싶었다. 이 과정에서 나는 다양한 정신의학적 병에 대한 지식을 얻게 되었고, 굉장히 흥미를 자극하는 내용들이었지만 역시 저 녀석을 이해할 수 있게 되진 않았다.
나는 많은 위기의 순간들에 공부로 도망쳤다. 하지만, 대부분의 문제들은 그대로 있었다.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다. 대신 공부는 나에게 두 가지를 제공했다. 자기 효능감과 희망. 엉덩이에 땀나게 붙잡고 있다 보면, 어제는 이해하지 못했던 문장이 오늘은 이해가 될 때가 있었다. 요즘은 챗지피티를 이리저리 괴롭히고 나면 내가 이해하기 쉬운 말로 바꿔주기도 했고, 나는 그 지식을 넙죽넙죽 받아먹었다. 나는 더 알게 되었다. (물론 그만큼 휘발되었지만) 그 순간의 나는 왜인지 어제보다 더 나은 내가 된 것같이 느껴졌다. 그 고양감이 좋았다. 공부하며 생기는 호기심을 충족시키는 것도 좋았다. 일생에 아무 도움이 되지 못하더라도. 그리고 나는 이상하게 공부를 하고 나면, 조금 더 나아질 것이라는 막연한 환상이 있다. 아마 오랜 주입식 교육의 산물이겠지. 공부만 잘하면 잘 먹고 잘 살 거라는 오랜 가르침이 공부하며 심리적으로 안정감을 느끼도록 만들어 주었다. 근거는 없지만 더 나은 방향일 거야. 모범생으로 살아온 나의 나날들이, 관성적으로 나를 책상에 앉히고, 그 상황에 마음이 편안해지도록 만들었다. 이런 맹목적인 믿음은 나를 더 힘들게 하기도 했다. 지금보다 어릴 적의 나는 가위바위보 게임에서 항상 보만 내는 아이처럼, 모든 문제에 공부라는 카드를 꺼내 들었다. 그래서 때로 많은 길을 돌아갔지만, 그런 근거 없는 희망이 내가 힘든 시기를 버티게 해 준 힘이 되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요즘 나는 직장 생활에 넌덜머리가 난다. 분명 나는 존재만으로 가치 있는 사람 이랬는데, 회사에서는 나의 존재가치를 계속 증명하라고 압박한다. 그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은 예민해지고, 친절을 잃는다. 한 사람이 날카로워지면 그 옆에 있던 구슬들도 자연스레 긁히고 깨지며 함께 날카로워지기도 한다. 그래서 요즘 나는 토익 공부를 시작했다. 문제를 풀고, 맞추고 단어를 외우고, 표현을 배운다. 그럼 어제보다는 더 많이 맞출 수 있겠지. 빨간 동그라미가 조금 더 늘어나겠지. 어쩌면 그 빨간 동그라미는 지지부진할지 모른다. 그놈의 계단식 성장! 점수 오르긴 하는 거야? 하지만 계속하면, 분명 늘어날 것이다. 그 과정에서 나는 어제의 나보다는 조금 더 나은 나임을 체감하고, 더 나은 환경에서 살아갈 수 있을지 모른다는 희망을 품는다.
어머, 공부를 좋아한다고 말할 정도면 공부할 생각에 신나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서 책상에 앉으시나요?
아뇨. 어쩌면 시리즈의 1번 글은 와식생활이었다는 것을 기억해 주세요. 침대에서 최대한 일어나지 않을 궁리를 바닥에 배를 대고 한번, 뒤집어서 두 번 합니다. 그리고 반복.. 그렇게 뒤척이기를 몇 번을 하다가 일어납니다. 공부는 '공부해야 되는데 생각하는 시간' >>> '공부하는 시간'이라는 고유 특성을 가지고 있잖아요? 저에게도 유효합니다. 좋아하는 것에 대한 글을 쓰면서 느낀 점이 있습니다. 저는 좋아하는 것을 찾으면 그걸 할 생각에 벌떡벌떡! 일어나고 눈이 번쩍 떠져서 아침이 기다려지고 그럴 줄 알았어요. 그런 좋아하는 것을 찾은 분들도 분명 있겠죠? 부럽습니다. 하지만 제가 찾은 좋아하는 것들은 쌀밥의 단맛 같아서, 은근합니다. 책상에 앉기 전에는 '해야 할까?'를 잠시 생각합니다. 그래도 진짜 하기 싫은 건 이 생각을 백만 번쯤 하다가 시작하거나 시작 안 하는데, 좋아하는 건 몇 번 생각 안 하긴 해요. 그리고 하고 나면 금세 몰입하고 기분이 스멀스멀 좋아집니다. 특히 공부가 그래요. "하고 싶어 죽겠다! 안달이 난다! 가슴이 뛰어 미치겠다!" 보다는 "한번 해볼까?"로 시작해서 "거-참. 괜찮네! 나 좀 괜찮은 듯?"으로 끝난답니다. 이런 것도 좋아하는 걸로 쳐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