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만장한 대학생 낭만의 페이지
교대에 들어갔다고 해서 성실한 생활이 기다리고 있었던 건 아니었다.
오히려 집을 떠나 자취생활을 하는 자유라는 이름 아래 더 방황했다.
대학에서 처음 배운 술이 나를 삼켰고, 나는 흔쾌히 그 속으로 뛰어들었다.
눈을 떠보면 필름이 끊긴 밤들이 많았다.
지금은 길에서 담배 피우는 사람들을 보면 혐오하는데
그 사람들은 과거의 내 모습으로 바뀐다.
강의실의 내 자리는 자주 비어 있었다.
내가 사라진 자리엔 1.78이라는 초라한 성적이 남았다.
1.75의 학사경고를 겨우 면한 것을 다행이라 해야 할까.
2000년대 초반은 대한민국이 격동하는 내 인생의 낭만기였다.
공부보다 더 집중한 것은 게임이었다.
스타크래프트, 던전 앤 파이터, 서든어택.
친구들과 PC방에서 밤을 지새우는 날이 많았다.
하숙방에선 어머니를 졸라서 산 PS2를 켜고,
현실보다 가상의 전장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냈다.
연애도 했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이 쉽다고 착각했다.
처음에는 온 마음을 다해 아꼈지만, 시간이 지나면 쉽게 지쳐버렸다.
헤어짐을 반복하면서도, 정작 내가 상처를 줬다는 사실은 몰랐다.
그렇게 떠돌던 어느 날, 교회에 나가게 되었다.
처음에는 여자 친구를 위해 따라간 것이었지만, 이상하게도 마음이 편안해졌다.
그곳에서 처음으로 무언가를 믿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기도하는 순간, 혼자라고 느꼈던 시간이 조금씩 옅어졌다.
내 안에 변화가 필요하다는 걸 깨달았을 무렵, 임용고시에 도전했다.
열심히 했다. 정말로.
하지만 첫 번째 결과는 불합격.
세상이 무너지는 기분이었다.
나는 다시 술을 마셨고, 다시 게임에 빠졌고, 다시 길을 잃었다.
그런데도 부모님은 나를 탓하지 않았다.
"우리 애가 설마 그러겠어?"
"곧 좋아지겠지."
그 답답하지만 막연한 믿음이 나를 일으켰다.
포기할 수 없었다.
두 번째 도전은 이전과 달랐다.
마음을 다잡고, 한 문장 한 문장 필사하며 교사가 되기 위한 준비를 했다.
그리고 마침내, 합격.
우회하고, 넘어지고, 방황했지만, 결국 나는 교사가 되었다.
역시나 3월 발령은 아니고 9월 발령이었다.
발령을 기다리는 동안은 체중이 15kg 이상 불어날 정도로 막살았던 것 같다.
공부하라고 뒷바라지해준 부모님께 죄송하게도 너무 맘대로 살았던 것 같다.
가끔 기차를 타고 고향에 내려가면 내 방 창문을 열고 고개를 내밀어 몰래 담배를 피운 적도 많다.
그런데도 부모님은 설마 내가 그랬겠냐는 생각으로 나를 믿어주셨다.
아직도 정신 못 차린 성인이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때처럼 그랬듯이
믿어주신 건지 그냥 모른 체 하신 건지 아니면 그냥 아니라고 믿고 계셨던 것일지..
이제는 그 시절을 돌아보며 생각한다.
내가 길을 잃고 방황했듯, 아이들도 어두운 시간을 지나갈 것이다.
하지만 그 순간, 나를 믿어주는 사람들이 있었듯,
나도 그들에게 그런 존재가 되어야 한다고.
그렇게 나는 매일 교실에 선다.
과거의 나를 기억하며, 오늘의 아이들을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