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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죄가 없던 1년

인생의 전환점이 된 재수.

by 금쪽이선생

방황의 끝에서 선택한 길

몇 년 쉽게 나오던 수능이 갑자기 어려워져서 주입식 공부만 하던 나는 수능을 망쳤다.

수능 보는 날, 급식실의 설렁탕 점심은 왜 이리 또 맛있던지

너무 과식해서 오후 시험은 졸면서 본 것 같다.
기대했던 성적이 나오지 않으니 선택의 폭이 좁아졌다.
의대를 간다고 까불던 나는, 결국 집 근처 종합대에 진학했다.

거기서 마주친 건 동네에서 늘 보던 친구들이었다.
고등학교 시절, 나는 나름 유명한 지역 사립고를 나왔다.
그 친구들은 나를 보며 의아해했다.
"너 여기 왜 왔냐?"
"명문고 나왔다며? ㅋㅋㅋ"
가벼운 농담 같았지만, 한편으로는 조롱처럼 들렸다.

한 달 동안은 그들과 함께 열심히(?) 놀았다.
술도 마시고, 게임도 하고, MT도 가보고 수업은 대충 듣는 둥 마는 둥 했다.
대학생활이 이런 거 아니겠나 싶었다.

그러나 그 시간이 길어지자 결국 사람 좋다는 아버지가 폭발하셨다.
어느 날, 집에서 나에게 호통을 치셨다.

"이 개놈의 자식아!!"
초등학교 6학년 이후로 그렇게 크게(?) 혼난 적이 없었다.

숙취에서 깨어난 그 순간, 머리가 띵— 했다.

그날 밤, 많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결심했다.
이대로 가면 안 되겠다고.

다음 날, 바로 자퇴서를 썼다.
그리고 재수를 시작했다.

처음 1학기 동안은 동네 재수학원에서 공부했다.
그러다 2학기에는 더 집중하기 위해 원래 고향에 있는 유명한 재수학원을 선택했다.
그때는 고시원에서 생활했다.



공부도 열심히 했지만 역시 옆건물 꼭대기의 AZIT(아지트) PC방은 거의 매일 갔던 기억이 남는다.

디아블로 2가 한창 인기였던 그때였다.
그래도 마음만은 더 독하게, 더 절실하게 공부하고 싶었다.


1년이 지나 다시 치른 수능.
성적은 그럭저럭 괜찮았지만, 뭔가 애매한 점수였다.
막상 원서를 쓰려니 고민이 많았다.

그때 문득, 고3 담임선생님이 떠올랐다.
다짜고짜 찾아가서 상담을 요청했다.
선생님은 내 성적표를 보더니, 이렇게 말씀하셨다.
"교육대학교는 어때?"

그때까지만 해도 교사가 될 생각은 없었다.
그런데 그 말이 이상하게 마음에 남았다.
집에 돌아와 곰곰이 생각했다.

‘교대... 가볼까?’

두 곳의 교대에 지원했다.
전형이 달라서 한 곳은 바로 탈락했고

다른 한 곳은 후보 5번.
기적적으로 합격 통보를 받았다.

그렇게 나는 교대생이 되었다.
방황 끝에 선택한 길이었다.
그리고 그 길이 내 인생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대학시절은 내 마음속 앨범에서 언제나 꺼낼 수 있을만큼

생생하고 그립고 즐겁고 아쉬운 추억들의 사진으로 채워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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