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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의 죄를 고합니다(3)

고등학교 시절엔 어떻게 되었니?

by 금쪽이선생

고등학교 시절,
내 인생에서 가장 ‘갇혀 있던’ 시간이 아니었나 싶다.

지역에서 제일가는 사립 고등학교에 턱걸이로 합격하였다.


사립학교 기숙사 생활.
하루하루가 규칙과 통제의 연속이었다.

나름 잘 적응하는 부분도 있었지만 기숙사에서 6시에 기상하여

7시 30분부터 하는 학교생활이 끝나면

기숙사에서 또 밤 10시까지 공부를 해야 했다.


갑자기 고등학교에서 모범적인 행동만 할 순 없었다.

기숙사를 탈출해 가끔은 친구들과 PC방에도 갔다.

스타크래프트와 디아블로 피파가 나온 역사적인 시기에 고등학생이었다니..


허락되지 않은 자유는 늘 달콤하면서도 쓰라렸다.
학교나 기숙사에서 선생님들께 들킬 때마다 엎드려 매를 맞았지만
이상하게도 또 반복했다.


초등학교, 중학교 때 나쁜 짓을 하다가 많이 맞았던 양상과는 차이가 있었다.


수업시간 졸다가 걸려서도 맞고,
기숙사 점호 시간에 늦어 엎드린 채 엉덩이를 맞았고,

반장역할을 제대로 못해서 복도에 난간을 잡고 걸레자루가 부러질 때까지 맞았다.

맷집을 중학교 때까지 차곡차곡 최대한 길러놓은 덕(?)을 보았다.

선생님들이 대부분 먼저 지쳐서 때리는 것을 포기하셨다.


한 번은 씁쓸한 경험도 있었다.
아버지의 어떤 모임에 따라가서 받았던 거금의 장학금 10만 원.

부모님이 너 알아서 쓰라고 쾌척하셨다.

기숙사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PC방을 갈까, 음악 CD를 살까, 만화책을 살까..

얼마나 설레었던가..

기숙사 쉬는 시간에 잠시 캐비닛에 넣어두고 씻고 온 사이 사라졌다.


처음에는 누굴 의심하는 것도 조심스러웠다.

하지만 결국 화가 치밀어 올라
의심 가는 친구들의 캐비닛을 열어 뒤져보는 추한 모습까지 보였다.
하얀 봉투를 반 접어놓은 10만 원은 결국 찾지 못했고,
그때의 허탈함과 부끄러움은 오래도록 마음에 남아 있다.

내가 이전에 친구들 물건을 훔쳤을 때

친구들은 이런 기분이었겠구나.. 그때 느낀 바가 컸다.

이전까지의 생활을 보면 나는 참 그렇게 당해도 싸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그런 와중에도 초, 중, 고 12년 동안 10번 이상 반장과 전교임원을 맡았다.

명함만으로는 ‘모범생’이었다.
부모님과 친척들은 나를 자랑스러워했고,
나는 그 기대에 좋은 성적으로 부응해야 했기에 힘들었다.

무엇보다,
지금 생각해도 부끄러운 건
고득점을 위해 컨닝을 했다는 사실이다.

공부를 잘하긴 했지만
더 잘하고 싶어서,
더 인정받고 싶어서
필통 속 쪽지에 의지하기도 하고
팔뚝에 작은 글씨를 써놓고 시험지를 바라보았다.


시험이 끝나면 늘 칭찬이 쏟아졌다.
‘역시 너는 다르다’

'어느 대학교에 갈 거니?'
‘우리 집안의 자랑이다’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어찌 되겠지 뭐..'

내 속은 텅 빈 것 같았다.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의 옷을 입고
그저 잘 꾸민 허상으로 하루하루 살아가는 기분이었다.

그 거짓으로 부모님을 즐겁게 해 드렸다니..

가장 죄송했던 부분이다.

그래도,
지금 돌아보면 그 시간들이 내게 남긴 건 후회만은 아니다.
불안하고 조급했던 마음,
실수와 비겁함이 차곡차곡 쌓여

결국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나의 첫 번째 수능은 갑자기 작년과 역대급으로 달라진 첫 번째 불수능이었는데

그때 완전 망해버렸다..(대학시절 이야기는 다음 회에..)


하여튼 고등학교 생활의 답답함을 잘 견디지 못했다.
결국 기숙사에서는 무단외출이라는 선택을 자주 했다.

가장 큰 이유는…
바로 그때 만난 '첫사랑'이나 다름없는 여자친구 때문이었다.

이때는 DDR과 펌프가 유행해서 그거에 또 매일매일 푹 빠졌었는데

다이어트가 절로 되었다. 피지컬은 180 / 70 외모에도 자신이 조금 생겼다.


그때 그 소녀를 만나기 위해 몰래 뛰쳐나가던

그 설렘과 떨림은 아직도 내 안에 남아 있다.


그날 학교 앞 번화가의 길목을 나란히 걷던 기억

공원 벤치에 앉아서 시답잖은 이야기에도 즐거웠던 기억


충격적 이게도

그 인연은 아직도 내 곁에 있다.

내 인생의 가장 큰 선물이자,
나의 반쪽이 된 사람.

나를 인간으로 만들어준 사람.



그 이야기는…

다음에 천천히 풀어보려 한다.


‘기숙사 몰래 뛰쳐나간 고등학생이 어떻게 평생의 짝을 만났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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