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생이 되면서 나는 더 커졌다.
170cm, 100kg
몸도 커지고, 마음속 욕망도 덩치만큼이나 커져 버렸다.
(부모의 방임과 방관에 의해 비만아가 된 케이스다.)
하지만 커진 건 그것들뿐이었다.
마음은 여전히 미성숙하고 야만스러웠으며, 부끄러움도 두려움도 몰랐다.
수업 시간에 선생님이 나를 지적하면 고개를 돌려 한숨을 내쉬거나 눈을 흘기곤 했다. 내 표정을 본 선생님은 분노로 얼굴을 붉혔고, 나는 그저 입꼬리를 올렸다.
그 끝은 늘 몽둥이질이었다. 발로 얼굴을 차이기도 했다.
맞아도 억울하진 않았다.
맞을 만했으니까..
나의 나쁜 손은 점점 더 대담해졌다.
친구들의 필통 속 샤프, 예쁜 스티커, 다이어리를 훔쳐 가방에 숨겼다.
컴퓨터 가게에선 선반 위 게임 CD를 슬쩍 품었다가 붙잡혀 혼쭐이 난 적도 있다.
가게 주인은 내 뺨을 세게 때렸고, 나는 엉엉 울었다.
운 이유는 불쌍하게 보여 이 상황을 마무리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죄책감보다는 범죄를 성공하지 못해 아쉽다는 마음의 소리가 더 들렸다.
공교롭게 엄마는 같은 학교 교사였다.
내가 저지른 일들을 하나하나 수습해 주셨다.
나 대신 무릎을 꿇고, 손이 발이 되도록 빌었다.
시험 때면 살짝 힌트를 건네주기도 했다.
(이건 지난번에도 언급했지만 나의 형과 관련된 출생의 비밀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그땐 몰랐다. 그게 엄마 마음속에 얼마나 큰 짐이었는지.
그저, 엄마는 늘 내 편이라는 생각뿐이었다.
이제 와서… 그때의 엄마를 떠올리면, 가슴이 저려온다.
중학교 시절 나는 화가 많은 아이였다.
별일 아닌 일에도 얼굴이 붉어지고, 주먹이 먼저 나갔다.
싸움이 붙으면 친구들은 저항도 못 하였다.
그렇다고 심하게 두들겨 팬 건 아니고
한 두 번 주먹질 후 금방 싸움은 끝이 났다.
(나의 잘못을 두둔하는 것은 아니다. 정말 미안하고 수치스럽다.)
특히 한 친구의 얼굴이 떠오른다.
그 아이는 내 주먹을 맞고서도 울지 않았다.
오히려 나에게 미안하다고 하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 가정교육을 잘 받은 올바른 친구였다.
그 눈빛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너무 미안하다. 이름이 외자였던 고씨성을 가진 친구야..
왜 그렇게 분노가 많았을까.
왜 그렇게 미안함을 늦게 배웠을까.
더 어리석은 일들도 했다.
집 뒤의 조그마한 학원 선생님의 담배를 훔쳐 친구에게 건네주며 비밀스럽게 웃었고, 수업시간에는 장난 삼아 선생님의 치마 밑을 훔쳐본 적도 있었다.
그때는 웃겼지만, 지금은 그저 구역질이 난다.
(학원선생님은 날아 차기를 할 정도로 분노하며 나를 체벌하셨던 기억이 난다.)
맞았다.
많이 맞았다.
뺨을 맞고, 몽둥이로 얻어맞고, 발로 차였다.
하지만 그게 내 잘못을 멈추게 하지는 못했다.
그리고 지금도 떠올리기 괴로운 한 사람.
한 선생님은 집요하게 나에게 내 몸을 소중한 곳을 보여달라며 졸랐다.
1년 가까이 거절했지만 결국 빈 교실로 끌려가, 그 사람이 내 몸을 본 날이 있었다.
그때는 그것이 잘못인지 몰랐다.
마치 내 탓인 것 같아서 더 깊이 숨겼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그것은 폭력이었다.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었던, 지워지지 않는 상처였다.
이 모든 기억을 이렇게 글로 써 내려오며, 나는 또 한 번 깊은숨을 쉰다.
어릴 적 나는 왜 그랬을까.
나의 어린 시절은 왜 그 모양 일까.
나는 왜 이렇게 후회만 남는 어른이 되어버렸을까.
내가 상처 준 친구들, 부모님, 선생님들…
그저 죄송하다는 말로는 부족할 것이다.
하지만 오늘 이렇게 적는다.
미안합니다.
정말, 많이 미안합니다.
나의 이야기를 분명히 안 좋은 과거의 기억하고 계실 선생님들께도
나로 인해 그런 기억을 만들게 하여 죄송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