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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의 죄를 고합니다.(1)

초등학교 시절의 죄

by 금쪽이선생

철없던 문제아의 후회

어린 시절 나는 하고 싶은 대로 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었다.

나를 제어할 사람도, 나를 올바르게 인도할 사람도 없었으니까.


훔친 돈으로 펼쳐진 ‘어린 왕’의 세상

옅은 빛이 들어오던 어느 날 우연히 안방의 광택이 화려한 자개 농장에서 10살 꼬마의 눈높이보다 높은 위치의 검은빛 서랍을 손 잡이를 당겨 열어봤다. 십 원짜리 오십 원짜리 백 원짜리 오백 원짜리 동전이 꽤나 많았다. 티가 나지 않게 한 번씩 동전을 움켜쥐고 밖으로 나가 군것질도 하고 오락실을 갔다. 바늘 도둑이 소도둑이 된다는 말처럼 몇 번의 절도(?)를 성공한 후에 시간이 흘러서는 과감히 아버지의 호주머니를 뒤졌다. 붉은빛이 감도는 천 원짜리, 선명한 초록빛의 만 원짜리가 손에 잡혔다. 세상에, 이런 돈이 그냥 주머니 속에 들어 있다니! 그 순간 나는 평생 써도 다 못 쓸 부자가 된 것만 같았다.

돈이 생기자 세상은 다르게 보였다. 문방구에서는 사고 싶은 걸 마음껏 샀고, 오락실에서는 시간을 무한정 보냈다. 슈퍼마켓에서 과자를 한 아름 사고, 친구들에게 그냥 줄 때도 많았다. 중국집에서 친구들과 짜장면을 시켜 먹었으며, 택시를 타고 동네를 휙휙 돌아다녔다. 심지어 게임샵에도 들러 군침을 삼키던 게임팩을 사들였다. 나는 그야말로 ‘흥청망청’이라는 단어를 몸소 실천하며 살았다.

그렇게 몇 년이 흘렀다. 초등학교 6학년이 되던 어느 날, 아버지의 회초리가 내려왔다. 그동안 무심하던 아버지였지만, 사라진 돈의 규모가 커지자 드디어 깨달으셨던 것 같다. 나는 그날 처음으로 돈을 훔치는 것이 나쁜 일이라는 걸, 아니, 적어도 걸리면 안 된다는 걸 배웠다. 그날 한 대인가 두 대를 맞았는데, 내 생각엔 비 오는 날 먼지날 정도로 두들겨 맞았어야 했다..


친구들에게 했던 미안한 짓들

나는 친구들도 많이 괴롭혔다. 지금으로 따지면 명백한 학교폭력이다. 아침마다 친구들을 우리 집으로 불러 나를 데리러 오게 했다. 그게 당연한 것인 줄 알았다. 화가 나면 친구들을 때리기도 했다. 아무 이유 없이. 힘이 조금 더 센 것만으로 우위를 점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기억나는 친구들이 있다. 조ㅇㅇ, 윤ㅇㅇ. 그리고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또 다른 아이들. 그들에게 나는 사죄해야 한다. 하지만 어떻게 해야 할까? 그 시절 상처받은 그 친구들은 지금 어디에서 어떻게 살고 있을까? 40대의 나이가 되었을 텐데. 만나면 정말 죄송하다고 말씀드리고 싶다.

나는 심지어 여학생에게 아이스께끼를 했다. 울음을 터뜨리던 그 얼굴이 어렴풋이 떠오른다. 그때 나는 깔깔 웃고 있었다는 기억이 난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내 행동의 부끄러움에 몸이 움츠러든다. 이름조차 기억나지 않는다. 사죄드릴 대상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 더 수치스럽다.

더러운 장난도 많이 했다. 코를 파서 친구에게 묻히고, 침을 묻혀 장난을 쳤다. 그때는 웃고 넘어갔지만, 지금 생각하면 끔찍할 정도로 유치하고 비열하다. 친구들의 집에도 아무렇지 않게 드나들었다. 마치 내 집인 것처럼. 그 집 부모님들께도 죄송하단 말씀드리고 싶다.


손버릇이 나빴던 아이

나는 도벽도 있었다. 친척 집에 가면 맘에 드는 물건을 훔쳐왔다. 게임팩, 장난감, 워크맨…. 친척들은 분명 이상하게 생각했겠지만, 어린 나에게서 물건을 훔친다는 개념을 떠올리지 않았을 수도 있다. 아니면 알고도 모른 척했을지도 모르겠다.

슈퍼마켓에서도 손이 갔다. 계산대에서 눈을 피한 채, 작은 물건들을 주머니에 넣었다. 들키지 않으면 괜찮다고 생각했다.


회초리로 훈육이 끝났을까?

그렇게 문제를 일으키고 다닌 내게 선생님들은 가만히 있지 않았다. 나는 정말 많이 맞았다. 하지만 그 체벌이 나를 바꿨을까? 아니다. 오히려 나는 ‘이 정도 맞으면 되는 거구나’라고 생각하며 계속해서 같은 죄를 반복했다.

나는 내 잘못을 반성하지 못했던 것 같다. 그저 ‘맞으면 끝’이라고 여겼다. 그리고 그 잘못들은 반복되었다. 어쩌면 나는 그때 부모님이 나의 잘못을 감싸주는 게 사랑이라고 느낀 적도 많았다. 올바르게 훈육하지 않았기 때문에 잘못된 길로 자랐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이 지금 내 죄책감을 덜어주는 것은 아니다.


지금에서야 뒤늦게 드는 죄책감

나는 지금 초등학교 교사다. 문제 행동을 보이는 아이들을 보면 내 어린 시절이 떠오른다. 과거의 나는, 아이들보다 더한 문제아였다. 그리고 이제야 뒤늦게 깨닫는다.

내가 괴롭혔던 친구들, 가슴 졸이던 부모님과 선생님들, 물건을 도둑맞고도 내게 아무 말하지 않았던 친척들. 모두 나 때문에 힘들었을 것이다. 그때 나는 몰랐다. 하지만 지금은 안다. 그리고 미안하다.

하지만 미안하다는 말만으로 끝내고 싶지는 않다. 나는 교사로서 아이들을 바르게 인도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어린 시절의 나처럼, 길을 잃고 방황하는 아이들이 조금이라도 더 나은 길을 찾을 수 있도록 돕고 싶다.



죄송합니다. 부모님

죄송합니다.. 친구들

죄송합니다...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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