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스트 대학원 입학기
음... 아직 어떤식으로 글들을 한 소주제로 묶을 수 있는지
혹은 하나의 스토리로 묶을 수 있는지 모르겠어서...
소제목으로만 분류를 하고 나중에 시간이 될 때 분류를 하려 한다.
지금은 간단한 대학원 생활 / 카이스트 입학기 두개로 분류를 하려 하는데
오늘은 카이스트 대학원 입학기의 시작을 다뤄보려 한다.
글씨를 보면 사람의 마음 됨됨이가 보인다고 하지 않는가
과연 제 3자가 내 글을 보면, 몇살처럼 보일지 살짝 궁금하긴 하지만
굳이 숨길 것도 아니니, 이야기해보자면 필자는 97년생. 20대의 마지막이자 아홉수를 지내고 있으며
올해 입학한 25학번들과 자그마치 10년 차이가 나는... 15학번 화석 중의 화석이다.
내 글을 읽어주시는 독자분들의 연령대가 몇살일지 나는 모르지만, 대학교를 다니거나 졸업한 사람들은
뭔가 모를 위화감을 느꼈을 것이다
"97년생이 15학번..? 어라?"
맞다. 필자는 운이 좋게도 조기 졸업의 수혜를 가장 야무지게 누린 과학고 졸업생이다.
그러나... 쉬운 졸업은 아니었기에, 여기에서부터 내 대학원 입학기를 풀면
나라는 사람에 대해서, 또한 내 절박함 그리고 대학원 입시에 대하여 공감하기 쉬울 것이라 생각해
2013년, 과학고 입시 당시로 잠깐 돌아가보려 한다.
여러분들이 생각하는 "과학고" 는 어떤 모습일지 궁금하다.
지금은 과학고의 상위호환인 영재고가 존재하지만,
그래도 과학고를 "천재" 혹은 "영재" 들의 집합체로 여길까?
필자는 그런 과분한 호칭으로 불리기에는 너무나 평범한, 중학교에 여러명 존재하는 "범재" 였다.
모두가 잠깐은 영재라고 불릴 수 있는 유치원, 초등학교를 지나면
생각보다 냉정한 평가를 받을 수 있는 중학생 시절이 필연적으로 찾아온다.
중학생의 공부량은, 그 당시 나에게는 상당히 버거웠으며,
초등학교 때 스스로 머리가 잠깐이나마 좋다고 생각했던 나에게는 현실을 깨닫게 해주는 장벽이었다.
인구 30만명도 채 되지 않는 도시의 자그마한 중학교. 300명 가량의 학생 중 기껏해야 10~20등
혹시라도 이 등수를 보고 기만이라고 느낀다면 사과하겠지만, 그 당시 과학고 학생 누구를 붙잡고 물어본들,
내 등수는 최하 등수였다....
스스로 자존감도 떨어지고, 공부에 손을 놓고 "롤"에 미쳐있던 그 당시, 과학고는 내게 일말의 기대도 없는
그저 바라볼 수 밖에 없는 신 포도였다.
지금 생각해봐도 그 당시의 나는 과학고를 가고싶지만 가지 못한 스스로를 부정하고 싶어서
지원하지 않으려 한건지, 정말 공부에 흥미를 잃었던 것인지 모르겠다.
그렇지만, 필자는 상당히 운이 좋다.
(내 인생을 100번 다시 산다고 해도, 지금이 손꼽히는 가능성이라 생각한다)
유독 내가 입시를 겪은 해에, 과학고 입시 전형이 바뀌었으며
2-1, 2-2, 3-1 중학교 세 학기중 "단 한 학기의 수학/과학 등수" 로만 성적을 판단한다는
기준이 제시되었다.
아직도 기억나는데, 2-1과 3-1 학기의 과학/수학 평균 등수는 20등 중후반이었지만
2-2에는 뭐에 홀린듯이. 수학 과학 과목은 찍은 문제가 전부 정답이었으며,
평소에 필자보다 명석했던 친구들의 부진으로 인하여, 두 과목 모두 1등을 달성하였다.
팔자에도 없던 과학고 준비는 그 때부터 부랴부랴 시작되었으며,
미리 준비해간 면접 문제 (ex : 삼발이 의자에 존재하는 수학적 원리를 생각나는 대로 말해보시오)가 나오는
말도 안되는 운으로 인하여 과학고에 합격하고 만다.
(관련 사진을 찾고자 했으나... 10년 전 사진은 모두 버려진 2G 폰에 존재한다)
그러나 운은 평생 가지 않고, 내 실력은 금세 말라버린 우물처럼 드러났다.
고등학교 1학년 수준도 선행을 마치지 않은 나는 대학교 1학년 수준의 수학/과학 문제를 다루는 친구들에게
농구선수를 만난 키 130cm의 꼬마아이처럼 매 시험 농락당했으며
1학년 1학기 중간고사 4X/60등, 수학은 자그마치 한 시험에서 58/60등을 기록하고 만다.
(너무 충격적이기에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당연히 그 한 순간 순간이 모여서 지금 나를 이루었지만,
어른들이 보기에 수능은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정말 별거아닌 시험 한 두번이었다.
그러나 나는 시험 당시 풀리지 않는 문제와, 옆의 창문을 바라보며 (3층이었다)
"지금 뛰어내리면 기말고사 성적은 어떻게 처리될까" 와 같은 고민을 했던 기억이 난다.
스스로 너무나 부끄러운 성적에, 할 수 있는 것은 노력뿐이었고
노력하는 재능이라도 타고났을 것이라 스스로 위로하며 1년을 부단히 노력한 결과
마침내 입시 시즌에는 23/60등이라는 쾌거를 이루었다.
(아마 29년 인생을 통틀어, 가장 간절한 시간이 아니었을까)
그리고 진행된 6개 대학에 대한 서류 제출
아직도 나는 2014년 11월, 인생 최악의 생일선물을 잊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