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킹맘 DNA로 14년 가정주부 놀이

내 몸에 맞는 옷 입기

by TriBeCa

첫째가 태어난 20대 후반까지 성취만을 향해 달려온 인생이었다. 첫째가 태어난 직후 신사동 유명 산부인과 의사가 해준 말이 "이젠 아이만 돌보면서 지내면 되겠네. 엄마가 욕심이 많으면 아이가 힘들어요." 지금 생각해 보면 말도 안 되는 성차별적 발언이지만 여러 유명 연예인들이 다녔던 이 병원 원장님의 영향력은 막강했고 실제로 고학력 전문직 여자 선배들 상당수가 출산과 더불어 미련없이 전업주부를 택하는 모습을 보고 이 말에는 분명 내가 알지 못하는 의미가 있을 거라 생각했다. 능력 있는 고연봉 남편과 결혼한 주변의 지인 여성들이 거의 다 미련 없이 전업주부의 길을 선택하는 것을 보고 전업주부는 일종의 특권처럼 여겨졌다. 내가 뭔가를 공부하면서 준비하는 근황 업데이트를 해주면 다들 '아, 아기도 있는데 왜 굳이 그런 걸 하려고 하지?(Why bother?)'라는 얼굴로 진심 어린 걱정을 해주곤 했다. 그렇구나 결혼을 잘한 여성들은 일을 하면 안 되는 거구나... 자연스럽게 느끼게 되는 일상이었다.


그러다 첫째가 태어난 지 얼마 안되서 남편을 따라 외국 생활을 하게 되면서 전업주부 생활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었다.나라, 도시를 옮겨가면서 매번 새로운 환경에 적응, 낯선 곳 물정을 익혀야 했고 첫째가 아직 어릴 때 둘째까지 태어나서 신생아 아기 엄마가 일을 할 수 있는 여건은 절대 주어지지 않았다. 인맥, 학벌이 통하지 않는 해외에서 외노자로 돈을 버느라 고군분투하는 남편에게 육아 분담을 바라기는 애초부터 불가능했다. 애 둘 이유식 만들기, 요리, 청소, 빨래에 하루 종일 쉬는 시간 하나 없을 정도로 바쁜 하루였는데 늘 어딘가 공허하고 허전했다. 뭔가를 배우고 싶고 사회생활을 하고 싶다는 마음은 가득한데 책을 꺼내 들어 좀 보려고 하면 애들 둘중 한 명이 깨거나 내 손이 필요하지 않은 순간이 없었다.


여권 신장, 남녀평등을 외칠 것 같던 미국 아줌마들도 뉴욕의 살인적인 물가 속에서 아이가 어릴 때는 다들 전업주부의 삶을 선택하며 집안의 야무진 총 매니저 역할을 하고 있었다. 그래도 그네들은 조부모, 친척들의 힘이라도 빌릴 수 있었지만 우리처럼 맨땅에 헤딩하는 외국인 가족들에게는 가족이 전부였고 위기가 오더라도 알아서 헤쳐나가야 했던 참으로 고된 순간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불평도 잠시, 주변의 어린아이들이 있는 워킹맘들의 삶은 그야말로 chaos 그 자체였다. 애가 아프고 고열에 시달려도 데이케어 선생님한테 메모 정도만을 남기고 회사로 직행할 수밖에 없는 그녀들. 빈번한 병치례, 크고 작은 사고들 앞에서 워킹맘들은 속수무책이었고 뉴욕의 중상류층 이상 여성들은 거의가 전업주부였기 때문에 이러한 고민에서 벗어나 있었고 전업주부라는 타이틀은 사실 부러움의 대상이 아닐 수 없었다.


아이들이 커나가면서 틈틈이 시간이 날 법도 했지만 베이비시터를 두기에는 너무도 비싼 뉴욕 물가에 시간당 20불이 넘는 시터 비용을 지불해야 했기에 공부, 일까지 하기엔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아이들 두고 외식 night out을 하기에도 마음이 바빴다.) 마음은 늘 워킹맘인데 전업주부로 지내면서 힘들었지만 나름 생활의 지혜도 늘어갔고 요리 솜씨도 기하급수적으로 발전해 세 가족 정도는 너끈히 초대해서 홈파티를 하기도 하는 등 이 생활에 익숙해져 갔다. 주변에 친하게 지내는 언니들, 지인들 모두가 전업주부 생활을 너무나 잘 즐기고 있었고 그들과 어울리면서 나도 전업주부로서의 삶을 충분히 즐기고 있다고 생각했다. 14년 후에 한국에 돌아오기 전까지는.


14년 외국 생활을 마치고 돌아온 한국은 예전의 한국이 아니었다. 사회가 느리게 변하는 미국, 홍콩등 외국과는 달리 이미 서양보다도 더 개인적인 삶의 방식 확립되고 남녀불문 개인의 성취, 발전이 1순위가 되는 등 예전에는 전혀 예상치 못하던 모습으로 한국이 변해가고 있었다(in a good way). 미국, 일본등 혼밥 문화를 접하면서 이런 생각을 종종 하곤 했다. "미국의 사업 모델은 한국에 적용되긴 쉽지 않겠다. 우리는 개인주의 문화가 아니니까." 하지만 이젠 혼밥 문화를 언급하는 자체가 식상할 정도로 사회는 빠르게 변하고 있고 다양한 변화를 유기적으로 받아들이면서 발전을 거듭하는 한국 사회의 모습에서 퍼뜩 잃어버린 내 모습이 눈에 띄었다. 그렇다 난 전업주부로 행복한 사람이 아니었다. 사람마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 좋아하는 스타일이 있는데 그게 워킹맘이든 전업맘이든 본인이 행복한 정체성이 있는 것이다. 또래집단에서 부러워하는 전업주부가 내 몸에 맞는 옷인 줄 알았는데 어느 순간 갑자기 "그래, 난 아직 앞으로 나가야 할 일이 많은 사람이지."라는 realization이 들었다.


상류층 사회의 전업주부들이란 더 이상 주부들의 커리어를 통한 소득, 사회적 신분 상승이 의미가 없을 정도로 계층화된 안정적인 절대 부를 누리고 있는 집단이다. 그러기에 아직 안정을 논할 단계가 아닌 상태에서 전업주부를 하며 그들과 같은 만족감을 느끼려 했던 게 애당초 전제가 틀린 것이었다. 아니 물질적으로 부유하지 않아도 나의 천성 자체가 전업주부로서 organized 되고 homemaker로의 삶에 의미를 찾는다면 전업주부는 본인의 몸에 맞는 옷인 것이다. 내가 가진 진정한 성향, 취향을 외국 생활 14년 만에 발견하고 현재 내 상황에서 가장 잘 맞는 커리어, 영국 변호사 시험 준비에 매진하고 있다. 아직 상류층 사모님 전업주부로의 길은 요원한 일개미로서 내가 가진 전투성과 성취감을 열심히 발휘하며 하루하루를 즐겁게 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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