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첫 번째 직업: 동시통역사
내가 가진 수많은 모습 가운데 현재 삶의 키워드는 40대 가정 주부, 영국 변호사 시험 수험생이 아닐까 한다. 고등학생 아이들을 키우는 주부로서의 나의 역할은 그 누구도 대체할 수 없는 일이고 영국 변호사가 되기 위해서는 수험생의 과정을 거치는 것이 필수이기 때문에 이 두 역할이 지금 내게 가장 중요하다.
하지만, 대학 졸업 후 나의 커리어 아이덴티티는 흔히 동시통역사라고 알고 있는 국제회의 통역사 혹은 통번역사로부터 시작되었다. 한국에서 전문 통번역사로 활동하기 위해서는 통번역대학원을 졸업해야 하는데 이 분야에서 가장 역사가 깊고 독보적인 한국외대 통번역대학원에 진학해 공부를 하는 것이 업계 전문 네트워크에 들어가 제대로 된 대우를 받으며 일을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Learning a new language is having a new personality."라고 하지 않았던가? 새로운 언어를 배우는 것은 새로운 자아를 형성하는 것처럼 인생에 대한 관점, 문화, 세계를 이해하는 놀라운 일이었다. 외국어를 배우는 묘미에 완전히 빠져 이보다 열심히 외국어 공부를 할 수 없었겠다 싶을 정도로 노력한 결과 대학을 졸업한 그 해 한국외대 통번역대학원에 진학할 수 있게 되었다. 당시 강남역 스타벅스에 매일 아침 8시까지 출근(?)해 아침을 먹고 점심까지 먹으며 오후 6시까지 꼬박 공부하는 패턴을 통해 카공족이라는 개념도 없었을 때 이미 카페 스터디 개념을 만들었다고 할까. 당시 친구들은 도서관, 독서실에서 공부하는 것이 일반적이라 커피숍에서 공부한다고 하면 다들, 커피숍에서 공부가 돼? 하던 때였으니까 ㅎ
외국어를 마스터하는 과정이 험난한 만큼 통번역대학원 2년의 시간은 내 인생에서 가장 피를 말리는 시간이었다. 학업의 스트레스뿐 아니라 끊임없는 진로 고민까지. 전문 통번역사로서의 스킬은 하루만 외국어 연습을 게을리해도 현장에서 바로 표출되기 때문에 해도 해도 끝이 없는 도전과 긴장감을 경험해야 했다.
하루하루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이 인텐시브 했던 통번역 대학원 2년을 마치고 졸업하니 이제 세상의 모든 일이 어려워 보이는 게 없었다ㅎ 남들이 힘들다고 하는 경험들이 통대 시절에 비하면 너무 쉽다고 느껴질 정도로 이미 많은 단련이 되었다고 할까? 그 후로도 어려운 일을 겪을때면 통대 시절을 떠올리면서 극복하곤 한다. 영국 변호사 시험 SQE 준비도 그렇게 무사히 넘길수 있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