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A 투어에서는 언제쯤
골프 종주국 출신 토미 플리트우드는 어느덧 프로 15년 차에 접어든 베테랑이다. 데뷔 초부터 지금까지, 그의 볼 스트라이킹 능력은 항상 최상위권으로 주목을 받아왔다. 짧은 팔로스루는 높은 정확성과 일관성 있는 스윙을 보여준다. 절제된 스윙 동작 때문에 비거리는 투어 선수들 평균에 살짝 못 미치지만, 페어웨이 안착률과 그린 적중률에서 꾸준히 높은 지표를 보여줬다. 특히 그린 주변에서 보여주는 숏게임과 퍼팅 능력은 오랜 기간 동안 세계 랭킹 최상위권을 놓치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게다가 남자 선수 중에선 보기 드물게 긴 머리를 고수하고 있고, 다소 밋밋할 수 있는 골프 복장을 다양한 코디와 색감으로 표현하며 스타일리시함까지 겸비했다.
아마추어 시절부터 두각을 나타낸 플리트우드는, 2010년 체코 오픈을 통해 당시 유러피언 투어 무대 데뷔전을 가졌다. 이듬해까지는 주로 2부 리그인 챌린지 투어에서 경험을 쌓았다. 그해 9월에 열린 카자흐스탄 오픈에서 데뷔한 지 약 1년 만에 첫 우승 트로피를 품에 안았다. 이후 2012년부터 본격적으로 유러피언 투어 멤버로 활동하게 된다.
1부 리그는 그렇게 호락호락한 무대가 아니었다. 1년 동안 치른 대회에서 절반은 컷 탈락이었다. 나머지 대회에선 컷 탈락을 간신히 면했지만 상위권에는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마침내 2013년 8월 스코틀랜드에서 열린 조니 워커 챔피언십에서 두 명의 선수와 연장승부 끝에 1부 리그 첫 정상에 올랐다. 입회한 지 65번째 경기 만에 거둔 승리이자, 데뷔 3년 차가 되던 시기였다.
이 우승 덕분에 생애 처음으로 WGC(World Golf Championships) 무대에 설 수 있었다. 같은 해 가을, 중국 상하이에서 열린 WGC-HSBC 챔피언스에 초청받아 출전하며 세계 최정상 선수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PGA 투어 톱 랭커들과 맞붙는 이 대회는 플리트우드가 더 넓은 무대로 나아갈 수 있는 첫 관문이었다.
그리고 2014년, 마침내 첫 메이저 대회 출전이라는 목표를 이룬다. 유러피언 투어 시즌 랭킹 상위권 성적으로 디 오픈 챔피언십 출전권을 확보했다. 아쉽게도 컷 탈락이라는 결과를 받아들여야 했지만, 고향인 사우스포트에서 불과 몇 마일 떨어진 로열 리버풀 골프클럽에서 맞이한 데뷔전은 의미가 남달랐다.
2015년과 2016년은 마치 성장통을 겪는 듯한 부진을 보여준 시기였다. 2015년 5월에 열린 BMW PGA 챔피언십에서 홀인원 보다도 하기 힘들다는 알바트로스를 기록한다. 이 진귀한 기록이 저주가 된 것인지, 1년이 넘는 기간 동안 꽤나 고된 시간을 보낸다. 이 시기에 숏 게임을 교정하고자 그레이엄 워커와 함께 훈련을 시작했다. 당시 인터뷰에선 경쟁에 대한 두려움까지 느낄 정도였다고 털어놨다. 다행히도 이 슬럼프는 추진력을 얻기 위한 잠깐의 정체기였다.
2017년 첫 대회인 아부다비 HSBC 챔피언십에서 정상에 오르고, 멕시코와 중국에서 열린 국제 대회에서도 준우승을 기록한다. 2년 전, 공동 27위로 마감한 U.S 오픈에서의 아쉬움을 단독 4위라는 성적으로 채웠다. 세계 랭킹도 시즌 초반 99위로 시작해서 14위까지 올라섰다. 주말라운드에 자주 나서지 못했던 지난 대회들과는 다르게 단 6번의 컷 탈락만을 기록했다. 약 170만 달러의 상금과 함께 성공적인 한 해를 보냈다.
본격적인 PGA 투어 활동을 시작한 2018년부터 유럽과 미국을 오가며 많은 대회를 소화했다. 그 해 6월, 시네콕 힐스에서 열린 118회 U.S. 오픈 파이널 라운드에서 진기록이 나왔다. 파 70으로 세팅된 이 코스에서 무려 63타를 기록, 당시 대회 코스레코드를 갈아치웠다. 마지막 홀 버디 퍼트가 살짝 빗나가며 메이저 대회 역사상 첫 62타 달성은 아쉽게 무산되었다. 하지만 전년도 챔피언인 브룩스 켑카를 턱밑까지 추격하며 한 타차 승부까지 가져간 모습은 많은 미국 팬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2019년은 진정한 월드클래스로 도약한 해였다. PGA 투어와 유러피언 투어를 넘나드는 빡빡한 일정 속에서도 단 한 번의 컷 탈락 없이 모든 대회를 치르며 안정감을 증명했다. 디 오픈 준우승을 포함해 TOP5에만 무려 8차례 이름을 올리며, 매 대회마다 우승권을 위협하는 존재감을 드러냈다.
개인적으로 가장 아쉬운 준우승 기록을 꼽자면 2023년 캐나다 토론토에서 열린 RBC Canadian 오픈이 떠오른다. 상대는 캐나다 출신의 닉 테일러. 챔피언 조로 출발한 플리트우드는 마지막 홀에서 파를 기록하며 연장전에 접어든다. 파 5의 4번째 홀에서 상대 닉 테일러가 투 온에 성공했다. 반면 플리트우드는 티 샷이 벙커에 빠지는 바람에 쓰리 온 하며 버디 버트를 기다리고 있었다. 테일러는 약 22미터 거리의 긴 이글 퍼트를 정확하게 밀어 넣으며 대회장은 69년 만에 자국 대회에서 우승한 역사적인 날을 기념했다.
인터뷰에서 밝히길, "내 시간이 아닌, 닉의 시간이었다."
플리트우드는 통산 8승에 빛나는 명실상부 최정상급 골퍼다. 유러피언 투어에서는 이미 거듭된 우승과 꾸준한 성적으로 입지를 다졌고, 라이더컵에선 유럽의 심장을 뛰게 만드는 선수로 활약해 왔다.
하지만 여전히 아메리칸 대륙에서 정상에 오르지 못했다는 점은 본인과 많은 팬들에게 아쉬움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 이젠 수많은 톱 10과 준우승 속에서 PGA 투어 선수들 가운데 무관으로 약 3,000만 달러의 상금을 벌어들인 선수로 소개되고 있다.
하지만 그의 여정과 커리어는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 유럽리그에서 맛본 우승의 달콤함을 미국에서도 느낄 수 있을까? 그의 시간은 반드시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