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 엄마와 중년 아들의 사랑과 요리 이야기
일찍 출근하는 것이 몸에 배어 있어서 그날도 어김없이 6시 40분에 출근했다. 남들은 “왜 그렇게 일찍 출근하냐” 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나는 아침형 인간이다. 남들이 출근하기 전, 맑은 정신으로 일을 시작하면 마음이 한결 여유로워진다. 하루를 알차게 보낼 수 있고, 시간부자가 된 느낌이랄까.
그런 덕분에 많은 자격증을 땄고, 독서라는 지적유희와 사랑에 빠졌다.
몇해 전 일이다. 아침인사차 전화를 드렸지만, 몇시간째 전화를 받질 않는 엄마. “혹시 무슨 일이?”
온갖 생각에 일이 손에 잡히질 않았다. 결국 외출을 신청하고 집에 와보니, 엄마는 평온하게 집에 계신 적이 있었다. 그래서 생각한 게 개인용 CCTV를 설치하는 것이었고, 엄마집에서 잠을 자지 않는 날은 엄마의 상황을 24시간 확인할 수 있어서 안심이 되었다.
그날도 어김없이 출근하자마자 휴대폰으로 CCTV를 켜놓고 차 한잔을 준비 중이었다.
엄마는 새벽 6시면 어김없이 일어나 청소를 시작하신다. 80년 넘게 이어온 루틴이었다.
치매를 앓고 계시지만, 아침 루틴은 기계처럼 정확하셨다.
그런데 뭔가 낌새가 이상하다. 7시가 넘어도 인기척이 없으시다.
CCTV 사각지대에 계시나?라는 생각에 CCTV 볼륨을 최대한 올려 온 신경을 집중했다. 그러나 전혀 인기척이 없으시다. 방안은 엄마의 프라이버시를 위해 주무시는 것만 확인할 수 있도록 제한 범위를 두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한마디의 손톱만큼 간신히 열려있는 엄마의 방.
침대에 있던 이불이 방바닥에 떨어져 있고, 인기척은 없다? 평소에도 이불이 떨어져 있는 경우가 있기에 대수롭지 않게 지켜보고 있었지만, 오늘은 불길한 느낌이 온몸을 타고 흐른다.
“설마 별일 없겠지”라며 숨을 죽이고 지켜보고 있는데, 이불 아래에서 발가락 끝이 움직였다.
“엄마...”
사무실문을 박차고 뛰어나왔다. 조금의 정보라도 찾기 위해 계속 CCTV를 확인했다. 운전대가 땀으로 미끄럽다. 마음이 조급하다 보니 오늘따라 차가 막히는 느낌마저 든다. 평소 40분 거리를 20분 만에 달려 집에 도착했다.
문을 열고 뛰어 들어간 순간, “헉”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상황이 눈앞에서 벌어졌다.
너무나도 처참한 광경이었다.
알몸 상태로 이불과 함께 배설물이 뒤섞여 있으셨다. 축 처진 몸, 초점 없는 동공.
“엄마 왜 이래...”
울부짖으며 계속 “엄마 눈떠요”라며 소리를 질렀다. 그러다 보니 희미하게 눈을 뜨신다. 의식은 있으시지만
나 마저 알아보지는 못하신다.
“119죠? 여기 할머니께서 쓰러 지셨는데 빨리 좀 와 주세요”
일단 구급요청을 하고 엄마를 일으켜 세우려 했지만, 일어서지 못하셨다.
오랜 공직생활을 하면서 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구했고, 숱한 상황과 맞닥 뜨리면서 늘 이성이 지배를 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막상 나에게 이런 유사 상황이 닥치고 보니, 당혹스러움이 온 정신을 흔든다.
일단 엄마를 안고 욕실로 갔다.
언제나 단정하고 깔끔한 분이 셨지만, 지금 내 앞에 계시는 분은 한없이 연약한 엄마였다. 이를 악물고 “엄마 정신 차려요”,“엄마...”정신이 드시길 바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계속 엄마를 부르며 몸을 씻겨 드렸다.
어떻게 시간이 흘렀는지 모를 정도로 지나갔고, 옷을 입혀서 소파에 앉혀 드렸을 때야 겨우 눈을 뜨시더니.
“아들 왔구나”,“아무래도 나 죽을 거 같다”라는 말씀을 힘겹게 하신다.
“엄마가 죽기는 왜 죽어,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요”눈물이 하염없이 흐른다.
한 없이 가냘픈 엄마의 모습을 보니, 가슴이 터질 거 같다.
도착한 119구 구급요원이 가까운 종합병원으로 모셔 갔다. 응급실에서 MRI실로 멀어져 가는 엄마를 보니
혹시 이제는 못 보지 않을까라는 불길한 생각이 들었다. 가슴이 미어터질 거 같아 뒤돌아서서 눈물을 훔쳤다.
다행히 골절의심은 없다는 의사의 말과 함께,“골든타임을 놓치지 않았습니다.”라는 의사의 말에 온몸에 힘이 빠졌다.
뇌경색은 발생 후 3~4시간 내에 치료해야 뇌 손상을 최소화할 수 있다고 했다. 엄마가 쓰러지신 시간이 새벽 5시 30분, 내가 발견한 시간이 오전 7시 30분, 병원 도착시간이 8시 10분.
만약 평범하게 9시에 출근했더라면? 만약 CCTV를 확인하지 않았다면? 오늘은 별일 없으시겠지?라고 생각하고 그냥 넘어갔더라면... 온 몸에 소름이 돋는다.
“약물을 투여했으니 곧 의식이 돌아오실 겁니다. 다행입니다.”라는 의사의 말에 그제서야 안도가 되었다.
출근시간이 유난히 빠른 나에게 동료들이 “뭘 그렇게 열심히 사냐”“대충 여유롭게 살아라”라는
말을 자주 들었다.
하지만, 남들이 아침잠에 취해있을 때, 나는 깨어 있었고 분명한 사실은 엄마를 구했다는 것.
“시간이 엄마를 구했구나”
엄마가 안정을 취하시는 동안 시골집으로 돌아왔다.
병원에 한짝만 있었던 엄마의 또다른 슬리퍼 한짝이 현관에 덩그러니 남아 있는걸 보니, 심난해진다. 여기저기 긴박했던 흔적이 남아 있다. 안도감보다는 또다른 아픔으로 다가온다. 방안에는 엄마의 처절한 몸부림 흔적이 배설물과 함께 말라있다. 꽉 찬 냄새는 역겨운 냄새가 아니라, 꽤 친숙한 냄새로 다가온다.
어릴적 생각을 하면 눈물이 난다. 보일러도 없는 시절, 한겨울 얼음물로 똥오줌 기저귀를 갈아주신 엄마.
3시간에 걸쳐 청소를 하고 이불이며, 옷가지 등을 세탁했다.
그렇게, 마치 아무 일이 없었다는 듯이 집안 물건들을 원상복귀하여 시간을 거슬러 놓았다.
다음 날 엄마는 중환자실로 옮기게 되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어떻게 있었는지 궁금해서 그날의 CCTV를 돌려 보았다.
새벽 5시 30경 엄마는 침대에서 한 뼘의 침대 끝까지 30분 정도를 버둥거리시다, 그대로 이불과 함께 바닥으로 떨어지셨다. 의사는 소 뇌 쪽(뒤통수) 뇌경색이라고 했다.
소뇌 쪽은 운동을 담당하는 부위다. 이제야 실체를 알 거 같다. 주무시다가 새벽에 화장실을 가려고 몸을 움직였지만, 뇌경색으로 몸이 말을 듣질 않으셨을 것이다. 그러다가 침대에서 발버둥을 치시다 바닥으로 떨어지셨고, 배설물과 함께 몇 시간을 버둥거리셨던 것이다.
알몸으로 계신 걸 보면 본능적으로 배설에 대한 부끄러움을 인식하시고, 속옷을 벗어 닦으셨을 것이라는 추정을 해본다.
화면 속 장면을 볼 때마다 현실을 부정하고 싶어 진다.
그 긴 시간 동안 죽음의 공포 속에서 얼마나 무서웠을까?
내가 오기만을 얼마나 기다리셨을까?
중환자실에서 의식은 돌아왔지만, 헛소리를 하셨다. 링거를 꼽아놓은 주삿바늘을 뽑아버리셔서 “아무래도 팔을 묶어놔야겠다”라고 간호사가 동의서에 서명하라고 했다. 막무가내로 욕을 하시며, 다른 환자에게 피해를 주고 계신다는 것이댜.
“나 나갈 란다. 제발 나가게 해 주라”며 엄마는 울부짖으셨다.
깨어보니 가족은 아무도 없고, 낯선 곳에 주사가 바늘에 꼽혀 있어서 아마, 극심한 공포와 두려움을 겪으신 거 같다. 엄마에게 중환자실은 공포의 장소였다. 엄마는 지금 요양원으로 생각을 하시고 계신 거 같다. 엄마가 생각하시는 요양원은 임종직전 가시는 곳으로 인식하고 계신다. 가족이 엄마를 강제 입원 시킨 걸로 착각하고 계시기 때문이다.
(이어서 2편을 연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