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 엄마와 중년 아들의 사랑과 요리 이야기
어제보다는 추위가 한결 누그러진 오후였다.
마당에 나가 계시던 엄마께서는 뒤꼍을 멍하니 바라보고 계신다.
하지만, 그 시선 속에는 말할 수 없는 애틋함이 담겨 있었다.
“엄마 뭘 그렇게 보고 계세요” “추운데 방에 들어가요”라는 물음에 고개를 떨구시고는
“밭에 고구마를 캐야 하는데 언제 캐냐, 지심(잡초)도 많이 나서 밭을 매야 할 텐데 누가 맨다냐”라며
애처로운 표정으로 말씀을 하신다. 지금은 1월이고, 땅은 꽁꽁 얼어있다. 아마 기억 속에 잊고 있었던 ‘밭에 대한 걱정과 함께 그리움이 불현듯 생각나셨나’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표정에는 알 듯 모를 듯한 쓸쓸함이 묻어 있었다.
치매가 찾아온 후, 엄마에게는 금단의 영역이 생겼다.
집 뒤꼍,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야만 닿을 수 있는 그곳에는
엄마의 텃밭이 있다. 그곳은 본래 대나무 숲이었는데 엄마가 괭이로 1년을 메어 만들었다.
지금은 내가 주말마다 가꾸는 텃밭이다.
하지만, 작은 문을 만들어 열쇠로 잠가야 했다.
몇 년 전 다발성 골절로 오랜 병원생활을 하셨기 때문이다.
혹시,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시다 또 그런 일이 일어날까 봐, 걱정이 앞섰기 때문이다.
엄마가 밭을 볼 수 있는 시간은 1주일에 한 번뿐이다.
내가 주말에 문을 열어 텃밭에서 일하는 시간에 옥상에서 밭을 볼 수 있는 게 전부다.
텃밭일에 서툰 나를 향해 지팡이로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라며, 업무지시를 내리시곤 하셨다.
그러다 힘이 들면 하염없이 밭을 쳐다보고 계시다가 내려가곤 하셨다.
치매가 깊어지면서 엄마의 하루는 점점 더 단조로워졌다.
엄마는 평생 흙과 함께 살아오셨지만, 치매와 함께 졸업을 하셨다.
밭에 나가는 것도 위험하고, 인지력이 떨어지셔서 뜨거운 볕에 오래 계시는 것도 걱정스러웠다.
엄마에게 밭은 많은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위험한 곳이 되어 버렸다.
주간보호센터에서 돌아오시면 엄마의 가나 긴 하루는 그렇게 끝이 났다.
마치 하숙집 마냥, 일요일을 제외하고 매일 똑같은 일상의 반복.
평생을 흙을 만지시며 농작물을 기르셨는데, 그 무료함이 얼마나 크실까?
문뜩 떠오르는 생각 하나?
평생 업으로 하셨던 농사일이 어떤 기억으로 자리 잡고 있을까?
마음이 복잡해졌다. 엄마를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대부분의 생각이 내 위주로 돌아갔었다.
죄를 지은 거 같은 생각이 물밀듯이 몰려온다.
그렇다면,
‘마당에 텃밭을 만들어 드리면 어떨까?’
하지만, 선뜻 용기가 나지 않았다. 벽돌 몇 장으로 밭을 만들 수는 없지 않은가.
가로 ×세로, 높이는 얼마로 해야 하나?
벽은 어떻게 뭘로 해야 하나?
바닥층은 어떻게? 돌, 자갈, 흙은... 어디서, 어떻게?
머릿속이 복잡해지기 시작했지만, 포기할 수 없었다.
흙은 엄마의 삶이었기 때문이다.
어설프게나마 도면을 그렸다.
그리고 동네 철물점과 인터넷을 뒤져가며, 자재를 주문했다.
많은 고민들이 마음을 더 조급하게 만들었다.
한 번도 이런 일을 해 본 적이 없을뿐더러, 혼자서 당장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우리 아들 힘든데 왜 그런 걸 만드냐”라고 걱정하실 거 같아 엄마가 안 계시는 시간대에 자재를 날랐다.
어느 일요일, 드디어 들키고 말았다.
“왜 돼지우리를 짓냐?”라는 엄마의 한마디에, 한바탕 웃고 말았다.
더 이상 속일 수 없어서 “엄마 밭을 만들어 드리는 거예요”
내심 좋아하시지만, 기쁨과 걱정이 동시에 스쳐 지나가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 아들 힘든데 뭐 하러 밭을 만들어?”
“에구 이제 나는 쓸모가 없는가 봐” “기억도 안 나고 바보 멍청이가 되어 버렸어, 살아서 뭐 하겠어 죽어야지” “에휴”
며칠 전 소파에 앉아 자책하시던 모습에 가슴이 아렸다.
혼자서도 할 수 있는 일이지만, 일부러 엄마의 도움을 요청했다.
“엄마 거기 좀 잡아줘요.” “아이고 엄마가 잡아 주니까 일이 쉽네” 엄마는 여전히 누군가에게 꼭 필요 한 분이란 걸 느끼게 하고 싶었다. 또한 밭에 대한 엄마의 지분이 당당하게 있음을 알려 드린 것이다.
그렇게 돌 1톤, 자갈 1톤. 흙 3톤을 넣고 드디어 2개월 만에 3평의 작은 밭이 완성되었다.
완성된 밭. “엄마 이 밭은 엄마 전용 밭여요”
“이거 평당 가격이 얼마인 줄 알아요”라는 나의 물음에 한치의 머뭇거림도 없이 “천만금 이제”라며,
해맑은 미소를 지으신다.
순간 눈물이 핑 돈다. 흙을 만지고 싶은 마음이 얼마나 간절하셨을까?
천만금은 엄마가 생각하시는 이 세상 최고의 단위였다.
“이 밭은 천만금 밭 맞아요”이제 엄마가 뿌리고 싶은 씨앗을 뿌리고, 지심(김)도 메고 하세요.”
“오메 우리 아들이 밭을 선물해서 좋네.”
빛나는 엄마의 눈. 손에 쥐어준 호미를 들고 어디서 기운이 나셨는지 힘차게 호미질을 하신다.
“엄마 이 씨앗을 뿌려봐요” 무, 배추, 상추씨앗을 손에 올려드리자 시원하게 뿌리신다.
텃밭을 만들면서 몸 여기저기가 상처 투성인 내 몸이지만, 그것은 천만금짜리 흔적이었다.
2019년 미국 뉴욕 대학교와 영국 킹스 칼리지 런던이 함께 진행한 연구를 보면, 65세 이상 노인들이 원예
활동에 참여했을 때 우울지수가 평균 30% 감소했다는 것이다. 다분히 기분이 좋아지는 것을 넘어, 인지능력까지 향상되고 삶의 만족도가 현저히 높아지는 결과였다.
더 놀라운 건 2020년 일본 도쿄대학교에의 치매환자대상 연구에서 주 3회 30분씩 씨앗 뿌리기와 간단한
식물 돌봄을 한 치매환자에게 큰 변화가 나타났다.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 수치가 23% 감소하고, 행복호르몬인 세로토닌 분비량이 18% 증가했다.
불안감과 초조함이 현저히 줄어들었다.
이 모든 게 우연히 아니었다.
예전에 ‘원예치유’에 대해 책 속에서 읽었던 기억이, 엄마에게 텃밭을 만들어 드려야 되겠다는 확신이 섰던
것이다.
일종의 확신의 씨앗이 잉태한 셈이다.
뇌 과학으로 보면 더욱 신비롭다.
흙을 만지고 씨앗을 뿌리는 행위는 우리 뇌의 감각피질을 부드럽게 자극한다. 특히 손끝의 섬세한 촉감은
체성감각을 깨워 도파민과 세로토닌 분비를 자연스럽게 촉진시킨다.
하지만, 무엇보다 소중한 건‘성취감이었다.’ 씨앗을 심고, 싹이 트고, 자라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은 뇌의 보상시스템을 활성화시킨다.
식물을 기르는 일은 스스로가 무언가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되찾게 해 준다.
식물을 기르는 행위는 단순한 취미가 아니었다. 그것은 ‘생명에 대한 일종의 책임감’‘자신의 존재에 대한
증거’가 되어 주었다.
3평 엄마의 밭.
이곳에서 엄마는 다시 농부가 되신다.
예전에 1천 평이 넘는 드넓은 밭을 일구셨던 엄마.
해뜨기 전부터 해 질 녘까지, 그 드넓은 땅을 호미질로 일구며, 우리 형제들을 키우셨다. 관절염으로 굽은
엄마의 손은 땅 그 자체였다.
그런 엄마가 ‘한 뼘의 밭도 일 굴 수 없다’는 자괴감.
그 사실이 엄마를 얼마나 힘들게 했을까?를 생각하니 가슴이 먹먹해진다.
1천 평을 누비던 발걸음이 이제는 3평 안에서 여물어지고 있다.
비록 1천 평의 밭은 이제 가 꿀 수 없지만, 3평 안에서 알차고 소박하게 치매라는 병에게 빼앗긴 것들을 조금씩 돼 찾으실 것이다.
작은 씨앗 하나가 엄마의 마법 같은 손을 거쳐 흙과 연결되고, 새싹하나가 엄마의 기억을 키워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