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잡초 속에 핀 기억

치매 엄마와 중년 아들의 사랑과 요리 이야기

by 푸른 소금

여름날 텃밭을 일구는 것은 낭만적이지 않다.

집 뒤 30평 남짓한 텃밭을 가꾸기 시작한 지 벌써 3년째다.

엄마께서 건강하실 때는 잡초 하나 없이 잘 다듬어진 밭이었다.

그러나 엄마는 이제 농사를 지을 수 없다.

언제 무슨 씨앗을 뿌려야 하는지, 계절 감각을 잊어버리셨다.

밭을 일구는 건 이제 내 몫이다.

직장인 남자들의 로망이 퇴직 후에 텃밭을 가꾸는 것이라고 한다.

고추, 오이, 상추, 가지, 부추… 이름만 불러도 얼마나 싱그러운가.

하지만, 여름날 텃밭은 결코 낭만적이지만은 않다.

텃밭을 가꾸는 일은 생각만큼 호락호락하지 않다.

한여름 무더위와 맞서며 밭을 일구는 일은 땀으로 시작해 땀으로 끝난다.

아무리 썬 크림을 바르고 철통 같이 얼굴을 가려도 볕은

조그만 틈새도 허락하지 않고 피부를 빨갛게 태워 버린다.

몇 번의 호미질에 손이 부르트기 일쑤고, 온몸은 파스로 도배를 하곤 한다.



나에게 도전장을 던지는 잡초

잡초는 지독하다.

장마철이면 개선장군처럼 텃밭을 장악하고, 비웃기라도 하듯 매주 나를 기다린다.

한 주만 게으름을 피워도 잡초는 강한 생명력으로

한 여름의 더위를 피해 어둠 속에서 응큼하게 자란다.

제초제를 뿌리면 잡초를 제압할 수 있지만,

그 순간 건강한 땅의 숨결도 함께 사라질 것 같아 차마 손이 가지 않는다.

결국 이 싸움은 잡초와 나의 의지 싸움이다.


또 다른 복병, 고라니

잡초와의 싸움이 끝이 아니었다. 또 다른 복병은 바로 고라니이다.

밤이면 풀벌레 소리마저 속여가며 나의 텃밭을 침범한다.

녀석이 가장 좋아하는 품목은 시금치와 고구마 순.

엄마께서 구황작물을 좋아하셔서 2년 동안 고구마 농사를 지었다.

모종을 심고, 주중에도 일부러 물을 주러 다녔다. 뿌리를 내리고 잎이 무성해질 무렵,

“이제는 잘 살겠지?”라는 희망은 어느 날 아침 처참히 무너졌다.

고라니가 고구마 줄기만 앙상하게 남기고 잎을 모조리 먹어치워 버렸다.

밭 둘레에 그물을 쳐도 높이뛰기의 명수인 고라니를 이길 재간이 없었다.

결국 2년의 고구마 농사는 막을 내리고 이제는 사 먹는다.


비단 여기에 멈추지 않는다.

여린 고춧잎은 물론, 상추 뿌리까지 남김없이 먹고 간 흔적을 보노라면 허탈함과 분노가 동시에 치민다.

고라니에게 헌납당한 녀석들을 보면 더없이 안쓰럽다.

‘차라리 마트나 로컬푸드에서 사 먹는 게 훨씬 경제적이겠다’라는 생각이 스쳐 지나가지만,

그럼에도 나는 멈출 수가 없다.

바구니에 담긴 채소를 엄마께 보여드릴 때마다,

엄마는 마치 세상 가장 귀한 보물이라도 받은 듯 기쁨의 탄성을 지르시기 때문이다.


엄마의 기쁨, 나의 추억

“아이고, 가지 하고 호박이 이렇게도 곱고 예쁠까?”

“우리 아들이 고생해서 키웠네.”

“부지런해야 먹고살지. 게으르면 아무짝에도 못써.”

두 볼에 어린 소녀처럼 홍조를 띠시는 엄마를 보며, 나는 어린 시절로 돌아간다.

엄마는 매년 봄이면 사탕수수 씨앗을 뿌리셨고,

여름이 되면 내 키보다 더 큰 사탕수수는 맛없는 옥수수 수수깡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였다.

바람결에 따라 서걱거리며 밭두렁에 빼곡히 자란 사탕수수는 행복 그 자체였다.

한입 베어 물었을 때 입안에서 퍼지는 그 달콤한 맛.

여름날 8살 아이의 그 맛은 단순한 당분이 아니었다.

그것은 엄마의 사랑이었고, 삶의 가장 순수한 행복이었다.


잡초 속 부추

잡초 속에 핀 부추 꽃

잡초 사이에서 부추가 하얀 꽃을 피웠다.

하마터면 잡초와 함께 베어낼 뻔했다.

잡초를 이겨내고 앙증맞은 별처럼 꽃까지 피워준 것이 얼마나 반갑고 고맙던지.

여린 부추를 조심스레 베어, 양파·당근·풋호박을

넣고 마지막 화룡점정으로 땡고추를 섞어 부추전을

했다. 땡고추의 매콤함은 더위에 지친 엄마의 입맛

까지 살려내는 일등공신이 되었다.


잡초와 기억

잡초를 바라보며 나는 문득 엄마의 병을 떠올린다.

치매가 발병되면 기억은 잡초처럼 얽히고설켜 점점 본래의 자리를 잃어간다. 소중한 기억일수록

더 깊은 땅속에 묻혀버리고, 필요 없는 기억들만

덩굴처럼 뻗어 나오기도 한다.

뇌 속 작은 불빛들이 하나둘 꺼져가면

뇌과학적으로 치매 환자의 기억이 흐려지는 이유는 단순한 건망증이 아니다. 뇌 속 신경세포(뉴런)와 그 연결 통로인 시냅스(기억을 잇던 가느다란 실들이 조금씩 끊어져)가 점차 약해지고, 베타 아밀로이드·타우 단백질 같은 이상 단백질이 쌓여 신호 전달을 막기 때문이다.

기억은 마치 길과 같다. 길이 막히면 사람은 더 이상 걸어갈 수 없다. 잡초가 텃밭의 숨통을 조이듯, 병은 기억의 길을 가로막는다. 그래서 엄마는 익숙한 이름도, 사소한 추억도, 심지어 맛의 기억마저 점점 잊어가신다.


잡초와 엄마의 기억

잡초는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뽑아내도 다시 자란다.

엄마의 치매도 그렇다. 멈출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손을 놓을 수도 없다.

나는 오늘도 잡초를 뽑는다.

텃밭을 가꾸는 일은 엄마의 기억을 붙잡는 일과 닮아 있다.

비록 완전히 되돌릴 수는 없지만, 그 과정 속에서 나는 엄마와 함께 살아간다.

텃밭의 수확물을 보시며 지으신 그 미소 하나가, 나에겐 또 다른 사탕수수의 달콤함으로 남는다.

잡초 속에서도 자라나는 작은 생명처럼, 엄마의 기억도, 엄마의 사랑도 여전히 내 안에서 자라나고 있다.

20250907_171351.jpg 부추 전


keyword
이전 03화노각 콩국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