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 엄마와 중년 아들의 사랑과 요리 이야기
사회 초년생 시절, 가장 힘들었던 것은 ‘엄마의 손맛’이었다.
혼자 끼니를 때우며 배는 채워도 마음은 늘 허기졌다.
외롭고 지친 날이면, 그 허기는 더욱 깊어졌다.
엄마의 요리는 늘 단순했다.
굵은 멸치 한 줌, 으깬 마늘, 참기름 한 방울이 된장국의 전부였지만
고봉밥 한 그릇은 순식간에 비워졌다.
소풍날, 가마솥 밥 위에 올린 고춧가루 섞인 계란찜은
어린 나에게 그 어떤 놀이나 장난보다 즐거운 축제였다.
밭에서 막 따온 채소는 소박한 양념 두어 가지로 충분했다.
그 단출한 반찬으로도 우리 형제는 늘 배불리 먹었다.
그 안에는 어떤 양념보다 깊은 엄마의 정성과 사랑이 담겨 있었다.
엄마의 음식을 마지막으로 먹어본 것은 3년 전이다.
현재 엄마는 알츠하이머 치매를 앓고 있다.
기억을 서서히 잃어가면서 음식이 상한 줄도 모르고 드실 때가 있다.
아이스크림을 냉장실에 놓고 마시거나,
말라버린 밥을 남겨두고 드시는 일도 흔하다.
알츠하이머 치매는 단순한 기억력 저하가 아니라,
뇌의 미각·후각·전두엽·해마 연결망을 손상시킨다.
기억을 담당하는 해마,
해마가 손상되면 단기기억을 저장할 수 없으니,
“방금 먹었는데 또 먹는다” 혹은 “마른밥이 쉰 것도 모르고 먹는” 행동이 나타난다.
판단력과 계획을 담당하는 전두엽,
전두엽 기능이 약해지면 계획적 행동과 판단력이 떨어져
식재료 보관이나 조리 순서를 잊게 된다.
맛과 냄새를 느끼는 감각 영역까지 서서히 무너뜨린다.
이 때문에 엄마는 음식 상태를 판단하거나,
언제, 무엇을, 얼마나 먹어야 하는지를 기억하지 못한다.
그저 ‘깜빡깜빡한다’고 치부하기에는 훨씬 복잡한 신경학적 과정이다.
처음엔 발만 동동 굴렀다.
“어떡하지? 이러다 더 안 좋아지면 어떡하지?”
답 없는 고민만 가슴속을 맴돌았다.
그러다 결심했다.
“내가 요리를 해 볼까? 할 수 있을까?”
라는 두려움이 용기를 막아섰지만,
지금 하지 않으면 평생 후회할 거 같은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삶은 도전 아닌가.
그동안 마트에서 구입했던 간편식은 버렸다.
엄마의 기억이 더 멀어지기 전에,
내 손으로 음식을 만들어 붙잡아야겠다.
엄마가 지켜주던 밥상은 이제 내가 이어갈 차례다.
요리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서툴고 투박 하지만,
엄마의 기억 속에 남은 ‘아름답고 행복했던 추억’을 지켜내고 싶다.
그것이 엄마에게 드릴 수 있는 나의 작은 사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