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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 위에서 자연의 질서를 배우다

에머슨에게 배우는 치유농장의 길

by 지선

자연과 가장 가까이에서

그 이치를 몸으로 감각하고 이해하며 살아가는 인간 중 한 사람,


농업인.

흙과 바람, 빛과 물의 언어를 가장 가까이에서 듣는 사람이다.


새벽공기가 묽어질 때,

동풍이 불어올 때,

이슬이 맺힌 알곡이 햇살에 반짝일때

나는 경험의 지식을 넘어

감각의 깊이를 지나

자연이 건네는 언어에 스며든다.


자연은 들리지 않지만, 보이는 질서로 스스로를 말한다.

한알의 씨앗이 자라는 동안

흙은 뿌리를 품어 자리를 잡게 하고,

물은 그 틈으로 스며들며 모든 생명의 갈증을 해소한다.

바람은 잎사귀 사이를 지나 숨을 열어 흔든다.

빛은 방향을 알려주며 생장을 이끈다.

이렇게 자연은 각각의 성질이 부딪히며 스며들어

하나의 생명을 완성한다.

각자의 자리를 지키며, 서로를 살리고 자신을 이어간다.


그 안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질서가 있다.

나무에서 떨어진 낙엽은 땅 위에 쌓이고,

미생물은 그것을 분해해 다시 흙의 영양분으로 돌려보낸다.
그 흙은 새로운 뿌리를 품고,
그 뿌리는 다시 잎과 열매를 낸다.

죽은 가지 위에서도 새싹이 돋고,

메마른 땅에도 다시 풀잎이 돋는다.

자연은 멈추지 않는다.

스스로를 소모하며, 다시 살아난다.


우리 인간의 생명도 그 안에서 이어진다.

흙위에서 태어나, 흙으로 돌아가며,

그 사이에서 빛을 받고, 바람을 품고,

물에 씻기며 우리는 또 다른 생명을 남긴다.

이 순환이 바로 자연의 정신이다.

자연의 질서와 정신은 거창한 철학이 아니다.

누구나 흙을 밟고, 바람을 느끼며, 하늘의 빛과 물의 흐름을 바라보면 알수 있다.

모든 사물은 제대로 보면 다 말을 건다.


자연과 관련된 특수한 사실은 정신과 관련된 특수한 사실을 상징한다.

자연계에서 겉모습은 어느 것이나 모두 정신 상태에 대응한다.

그리고 그 정신 상태는 자연계에서 겉모습을 자기 그림으로 나타냄으로써
비로소 기술될수 있다.
몹시 화난 인간은 사자이고, 교활한 인간은 여우이다.
견고한 인간은 바위이고, (중략)
열은 사랑을 표현한다*.


우리는 특수한 뜻을 나타내는데 자연 속 사물의 도움을 받는다.*

그렇다. 도덕적 진리의 글이나 그림, 속담 등,

오래도록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은 말들은

모두 자연의 사실로 이루어져 있다*.


'물은 낮은 곳으로 흐른다.

나무는 뿌리는 뿌리를 버리지 않고, 사람은 근본을 잊지 않는다.

겨울이 있어야 봄이온다. 뿌린대로 거둔다.

가지많은 나무에 바람잘날 없다. 꽃은 비에 젖어야 향기로워진다.'


모두 자연의 사실에서 태어난 정신의 은유*다.

다시 말하면, 정신적 사실은 모두 자연계 상징으로써 표현된다*.

자연의 움직임과 인간의 마음이 같은 리듬으로 흐르기 때문이다.

바람이 불면 물결이 일고,
계절이 바뀌면 생명이 반응하듯,
인간의 감정 또한 그 질서 속에서 일어난다.


아스팔트에 핀 꽃 한송이에서 살아있으려는 뜻을 배우고

거대한 태풍앞에서 자연의 압도적 질서에 겸허해진다.

흙 한줌의 내음에서 존재의 근원적 안정을 느낀다.

자연에서 유추된 뜻에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자연의 현상과 마음의 움직임은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

산의 고요는 마음의 평온과 닮았고,
폭풍의 격렬함은 분노와 슬픔의 언어가 된다.
자연의 사실이 인간의 내면과 닮은 것은 우연이 아니라,
인간이 본래 그 질서 안에서 사고하고 느끼도록 지어진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신과 물질 사이에 존재하는 이 관계는

시인의 상상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고

신의 의지속에 존재*하는 하나의 법칙이다.


자연은 그 법칙을 눈으로 보이게 하고,

인간의 정신은 그 법칙을 깨닫는다.


우리가 자연과 교감하는 순간,
우리는 자연물 안에서 정신의 언어를 본다.
같은 원리가 흐르는 인간은
이미 신의 질서를 자신 안에 품고 있다.

자연의 모든 현상을 통해
우리는 본질과 우주의 질서를 배운다.

지금 내가 발 붙힌 땅 위에서 실천하는 삶의 방식으로 배운다.


그리고 그것을 가장 가가이서 경험하고, 손으로 증명할수 있는 자리가 농장이다.

나는 흙위에서 계절의 흐름속에서 매일의 노동으로 우주의 질서를 배운다.


흙을 만지는 동안,

자연은 인간의 마음을 갈아엎고 새로 심는다.

자연은 인간 바깥에 있는 풍경이 아니라,
인간 안에 다시 피어나는 질서다.
그리고 나는 그 질서를
오늘도 손끝으로, 숨으로,
나의 하루로 살아낸다.





주석표시*:

자기신뢰철학, 랄프왈도에머슨, 동서문화사, 2020


이글은

자기신뢰철학,자연에 대하여- 언어 편에서 시작된 사유를 농업인의 삶속에서 다시 쓴 사유의 기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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