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렘과 갈증이 만나 추억이 된 이야기
‘처음’은 설렘을 가져오고 ‘결핍’은 갈증을 부른다. 설렘과 갈증이 만나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무슨 뚱딴지같은 말이냐 싶지만 '설레임 아이스크림' 이야기가 아니라 '나와 내 친구의 웃지 못할 첫 해외여행' 이야기다. 친구와 둘이 처음으로 간 해외여행은 처음이 가져오는 '설렘'과 해 보지 못한 일들로 결핍된 우리들의 '갈증'이 빚은 해프닝이다. '설렘'과 '갈증'이 만나 '보석 같은 추억'을 만들었다.
젊은이들이 옆집 가듯 편안하고 쉽게 해외 자유여행을 가는 것이 부러웠던 나는 처음으로 해외자유여행을 가보자고 친구에게 제안한다. 직장 일로 지칠 대로 지친 친구는 능력껏 모든 일정을 조정하여 3박 4일의 시간을 확보했다. 나를 믿고 어렵게 시간을 확보한 친구에게 보답코자 나름대로 인터넷 검색해 가며 항공권과 숙소를 해결하고 블라디보스톡의 짧은 3박 4일 일정을 짰다.
특가로 항공권을 끊어 10kg 이내 기내용 캐리어만 가능하다는 사실을 몰랐던 내 친구는 3박 4일 동안 매일 다른 드레스 코드와 소품을 갖추기 위해 연예인 못지않은 짐을 챙겨 공항에 나타났다. 아뿔싸! 특가로 예매했다는 말을 하지 않은 나의 불찰이긴 하지만, 평소답지 않게 연예인 포스로 나타난 친구의 모습에 박장대소하며 뒷목을 잡았다. 10kg를 초과한 짐을 처리하느라 불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짐을 쓰레기통에 버린 것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쓰리다. 여행 초보자가 겪는 실수는 빼먹지 않고 겪었어도 첫 여행을 맞이한 우리의 설렘을 잠재우지 못했다.
걸어도 걸어도 구름 위를 걷듯 가볍기만 한 여행지 산책, 이곳에서 먹어봐야 하는 음식들, 모든 것이 신기했던 낯선 거리, 건물들, 우리를 향해 웃어주는 현지인들의 미소, 우리나라와 다른 날씨, 부드럽게 넘어가는 머릿결, 우리가 뿌린 블라디보스톡 거리의 웃음들...
우리의 첫 여행은 부족할지언정 국제미아 되지 않고 무사히 귀국한 것만으로도 성공이라고 우리끼리 결론지었다. 가장 행복했던 여행은 첫 여행'이 아닐까? 안정되지만 수동적이라 곧 잊게 되는 패키지여행이 아니라 우리가 계획한 초보 여행에서 일어나는 서툶과 당혹함을 능가하는 설렘이 있었으므로.
우리는 행복했고 첫사랑, 첫눈처럼 첫 여행이 갖는 꽉 찬 설렘으로 해외자유여행에 대한 행복한 기억과 자신감을 얻었다. 해외여행에 대한 자신감을 얻은 우리는 유치함과 쑥스러움이 극에 달할 지경이 되었다.
다름 아닌 셀프 웨딩 촬영을 위한 자유여행을 떠난 것!
리마인드 웨딩촬영을 남편에게 제안했다가 거절당한 나와 내 친구는(희한하게도 둘이 같이 제안했다가 비슷하게 거절당함) 보란 듯이 반란을 일으키고 말았다. 나도 내 친구도 90년대 초라한 결혼식을 치렀던 세대라 푸른 잔디 위에서 하얀 드레스를 입고 야외 촬영하는 신혼부부들이 그때는 몹시 부러웠다. 야외 촬영을 하자는 것도 아니고 가족끼리 실내 스튜디오에서 리마인드 웨딩 촬영을 하자고 제안했는데 가족들 모두 원하지 않았다. 우리 가족은 성향상 F:T = 1:3이어서 숫적으로도 불리했고, 내 기분을 이해해 주고 편 들어줄 딸이 없는 두 아들의 엄마인 나는 유치함과 쑥스러운 이벤트를 절대, 네버! 시도해보지 못한다. 언제나 다수결에서 내가 지기 때문이다.
지금은 낯 붉어서 그럴 생각이 없다. 예쁘게 보이는 드레스가 몸에 맞지도 않지만 그럴 에너지도 부족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때 못한 것은 지금도 아쉽다. 그것도 다 때가 있는데 말이다.
친구와 나는 인터넷으로 셀프 웨딩드레스를 구입하고 화관까지 준비해서 가오슝으로 2박 3일 자유여행을 떠났다. 우리를 알아보지 못하는 낯선 여행지에서 2박 3일간의 셀프 웨딩 촬영을 진행한 것은 '자유로움' 그 자체였다. 현지인들의 미소와 시선은 그저 관광객들이 그러려니 하는 정도였다.
우리는 얼마나 다른 사람의 시선에 갇혀, 하고 싶은 걸 못하고 사는가. 그때 우리는 알에서 깨어난 새가 된 기분이었다.
아는 사람이 없는 곳에서 누릴 수 있는 자유로움은 생각보다 우리를 과감하게 만들었다. 호텔에서는 스튜디오 촬영을, 가오슝 치진섬에서는 야외촬영을 하면서 호흡을 척척 맞추었다. 대만의 더운 날씨에 귀찮을 만도 한데 공원 화장실에서 여러 번 옷을 갈아입으면서 분위기와 배경에 따라 멋 내는 일을 서슴지 않았다. 남편과 왔으면 누려보지 못할 꿀잼을 친구와 맛보았다.
쑥스럽고 부끄러울 때마다 서로를 격려했다.
"오늘이 가장 젊은 날이다. 남에게 피해 주는 일도 아닌데 지금 안 해보면 60 넘어서할래?"
우리는 더욱 당당했고 쑥스러움에 단련되었다.
가오슝에서 돌아온 뒤 여행담을 듣고 어이없어 웃는 남편에게 배우자를 공감해 주지 않으면 이런 부작용이 생긴다며 호기롭게 말한 것이 기억난다.
그 에너지는 다 어디에서 왔을까. 이래서 한 살이라도 젊을 때 무엇이라도 해 봐야 하는 것이라고 한 건가. 한 살이라도 젊을 때 해보고 싶은 것이 겨우 셀프 웨딩촬영이라니. 지금 생각하면 웃음이 나기도 하지만, 그 당시 둘이서 가진 결핍으로 인한 갈증이 빚은 해프닝이 아니었을까 싶다.
유치하고 쑥스러운 기억이지만 설렘이 있었고 열정이 넘쳤던 우리의 젊은 날이었다. 푸른 빛깔의 젊은 청춘은 아니었지만 다시 오지 않을 소중한 날들임을 알기에 그날들이 내 생의 화양연화가 아닌가 싶다.
지나고 나면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할 작은 일들이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를 행복하게 해 주었다. 권력이나 명예를 좇는 일이 아닌 가슴속에서 우러나와 진심으로 해 보고 싶었던 아주 작은 이벤트가 내 생애 보석 같은 추억으로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