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선택하는 삶
우리 부부는 정년퇴직이 아닌 동기들보다 6,7년 이른 명예퇴직을 했다. 알람을 끄고 느긋한 기상을 했지만 마음은 느긋해지지 못했다.
어떤 루틴이나 시나리오도 만들어두지 않은 상태에서 인생 2막이 시작된 거다. 퇴직 1년 차, 회사로 말하자면 신규다. 의욕만 충만하고 노하우 없이 이리저리 탐색만 하고 있는 중이었다.
아침상을 치우고 나면 ‘오늘 뭐 할래?’로 하루일과를 의논한다. 직장 물이 빠지지 않은 우리 둘은 식탁에서 커피를 두고 마주 앉은 모습이 흡사 업무 회의하는 동업자 같다. 노하우 없이 은퇴를 맞이한 우리는 출근해서 보냈던 하루 8시간만큼은 뭔가 의미 있는 일을 하자고 생각을 모았다.
남편에게 가장 중요한 우선순위는 일상회복을 위한 재활운동이었다. 편마비 상태로는 원하는 어떤 일도 할 수가 없었다. 손재주 많은 남편은 은퇴 후에 한옥 짓는 일도 하고 캠핑카도 제작하려는 꿈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모든 것이 꿈으로 남게 되었다.
그런 남편을 옆에서 6년 동안 지켜보았다. 건강을 잃고 나면 많은 것을 잃게 된다. 건강도 언제 잃을지 예측할 수 없다. 이전의 생활방식이나 유전자 지도에 따라 건강을 잃을 수 있는 나이가 되었다는 것이 나의 많은 것을 변화시켰다.
나의 우선순위는 하고 싶은 일을 해 보는 것이다. 이 말에 이해를 돕기 위해선 부모님 이야기를 잠깐 해야겠다.
나의 아버지는 가족이 살 집 설계도를 그려두고, 한 푼 두 푼 모아 재산을 늘리셨다. 그 시절 아버지들이 그랬던 것처럼 미래의 행복을 위해 오늘 인내하시고 개미처럼 일만 하셨다. 그러다가 집을 짓지 못하고 건강을 잃어 일찍 돌아가셨다. 엄마는 일찍 가신 아버지 대신 혼자서 팔 남매를 키우는 데만 평생을 보내시고, 노후생활 없이 고생 끝에 가셨다. 제대로 된 효도 한번 받지 못하고 말이다. 고생만 하시다 일찍 가신 부모님을 보고, 나는 죽기 전에 이런저런 일은 하고 가야 남겨진 가족에게 여한이 생기지 않는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남편까지 병원 신세를 지자 건강염려증도 생겼다. 가족력이 있는 나는 100세 시대란 말이 남 말 같았다. 갱년기에 접어들면서 장자 사상에 빠져들기도 했다. 은퇴 후에 무엇을 할 것인지 큰 그림만 그려두고 기회만 된다면 신이 만들어 놓은 세상을 탐색하고 즐기고 싶었다.
퇴직 이후에는 고정적인 무언가를 하기 위해 시간에 매이거나 규칙적으로 배우는 것은 뒷전이었다. 8시간에서 해방된 지가 얼마나 되었다고 다시 무언가에 매인단 말인가? 나는 자유롭게 훨, 훨, 지겨워서 더 이상 그럴 마음이 생기지 않을 때까지 어디론가 떠나고 싶었다. 역마살이 끼여도 단단히 끼인 게 분명했다.
둘이서 업무회의를 한 결과 장마가 오기 전, 비수기 평일에 강원도 여행을 가기로 했다. 속초 바다에서 평일 여유를 즐기고 설악산 등반과 곰배령 트래킹을 하면서 남편의 재활에 힘쓰는 것! 여행을 좋아하는 나의 니즈와 남편의 재활 운동이 합쳐진 결과다.
나는 생각만 해도 구름 위를 오르듯 설렜다. 다리에 힘이 빠지거나 퇴행성 관절염이 오기 전에 대청봉에 오르고 싶었기 때문이다. 지금 하지 않으면 언제 올라 본단 말인가? 많은 일들이 내일 죽을 것처럼 오늘 간절했다.
이런 나와 달리, 남편은 다른 이유로 밤잠을 설쳤다.
일반인도 오르기 힘든 험난한 산을 성치 않은 몸으로 대청봉까지 도달할 수 있을까? 목표를 세우고 도전하는 모습으로 자존감을 키워가야 하지 않을까?
자신의 한계가 어디까지인지 시험해보고 싶은 마음과 자신에 대한 불확실한 마음으로 갈등하는 모습이 불편해 보였다.
설악산 등반을 앞두고 우리는 아침마다 마을 뒷산에 올랐다. 몸을 단련하고 적응시키기 위해서였다.
날은 잡지 않아서 오지 않을 뿐, 잡은 날은 금방 다가왔다. 장마가 오기 전 6월 초순경에 우리는 여유로운 평일 비수기 여행을 즐겼다. 가는 곳마다 한산했고 날씨는 청명했다.
이러려고 퇴직하지 않았나. 일만 하다 가지 않는 생(生). 신이 준비하신 자연을 즐기고 누리는 것이 마땅한 삶.
신께서 공중의 새들이나 들에 핀 꽃들이 무엇을 먹을지 무엇을 입을지 다 마련하셨다고 하지 않나.
인생 2막에는 무엇을 먹을지 무엇을 입을지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삶이길 기도한다.
부디 먹고사는 일에만 전념하고 생을 마감하신 부모님들처럼 안타깝게 보내지 말고, 인생 2막에는 누리고 가는 삶이 별책부록처럼 보충되어 있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