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퇴직, 빛나는 일상을 꿈꾸며
갑자기 퇴직하게 되었다. ‘갑자기’라는 말이 맞다. 나는 그동안 이 직장이 천직인 줄 알았고 정년까지는 아니어도 남들만큼 근무하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젊을 때부터 나는 '건강'의 아이콘이었고, 매일 하는 출퇴근이 당연하게 여겨졌기 때문이다.
남편이 어느 날 갑자기 퇴직을 얘기했기에 퇴직을 생각해 보았고, 해도 괜찮겠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앞만 보고 달려왔던 시간에서 멈추고 지나온 길을 되돌아보았다.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얘기를 꺼낸 이듬해, 남편이 퇴직하는 바람에 나도 같이 직장을 나왔다. 겉으로 보면 남편도 갑작스러운 퇴직이다. 주변에서 정년퇴직까지는 아니어도 맡은 임기를 다 채우리라 예상했는데 일 년 반이나 남겨두고 퇴직했기 때문이다. 제일 먼저 두 아들에게 이해를 구했는데 경제적으로 독립한 두 아들이 다행히 수긍해 주었고, 고맙게도 조금은 가벼운 마음으로 직장을 정리할 수 있었다.
몸이 건강했다면 동기들처럼 임기를 채우고 퇴직을 앞당기지 않았겠지만 남편은 그러지 못했다. 7년 전에 예상하지 못한 뇌졸중이 남편에게 왔고 그 이후 힘든 시간을 보냈으며, 우리의 삶은 뇌졸중 걸리기 전과 후로 나누어졌다.
죽을 수도 있었던 그 순간에 병원에서 겪었던 경험으로 우리는 매일 맞이하는 하루가 어제와 같은 오늘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동안 삶과 죽음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보지 않은 나는 당장 내일 죽을 수도 있고, 우리에게 그런 일이 생기지 말라는 보장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급기야 나는 어떤 일이 생길지 모른다는 막연한 불안을 갖게 되었다. 무탈한 것이 당연했었던 일상에 대한 믿음은 사라지고 더 큰 불행이 닥칠까 전전긍긍했으며 하루하루가 소중하고 가는 시간이 아까웠다.
30년 넘게 몸 담아 온 직장이 의미 없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퇴직을 생각하니 하루에도 몇 번씩 퇴직해야 할 이유를 생각했다. 출근하면서, 퇴근하면서, 잠자리에 들면서. 정년퇴직 후의 시간은 기다릴 수 없는 너무 먼 미래였다. 내일 지구가 멸망할 거 같아 오늘 하고 싶은 일을 다 해야 했으니까.
이 글은 동기들보다 6, 7년 앞서 퇴직을 하고 난 후 내일 죽을 것처럼 간절하게 오늘을 보낸 우리 부부의 퇴직 후 1년간의 기록이다. 두 발과 두 손으로 어떤 한계도 갖지 않고 자유롭게 생활하던 사람이 한쪽 팔과 다리로 자신의 한계를 조금씩 확장해 가며 장애를 극복하는 도전과 성장의 이야기다.
뇌졸중 후유증을 갖고 있는 사람이 자신의 한계를 어떻게 극복하며 퇴직 후의 시간을 보냈는지 공유하는 것은 이와 비슷한 장애를 가진 사람들에게 유의미한 일이 되지 않을까 싶어 용기 내어 본다. 지금도 진행 중인 남편의 도전을 응원하며 그의 도전에 조금이나마 힘을 보태고 싶은 나의 작은 몸짓이기도 하다.
누군가 이 글을 읽고 무너진 일상을 얻기 위해 용기를 낸다면, 도전을 멈추지 말고 끝까지 힘을 내달라고 응원하는 내 몸짓을 남편이 알아준다면 이보다 더한 행복은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