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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직인 줄 알았던 직장을 나왔다.

 같은 퇴직, 다른 이유

by 예몽 Mar 18. 2025

“벌써 9월이야? 시간이 이렇게 빨리 흐르다니! 얼른 퇴직하고 내 시간을 가져야겠어.”     


남편은 자신 때문에 내가 퇴직하는 것이 부담스러워 마음이 무거워져 있는 차에 얼른 퇴직하고 내 시간을 가져야겠다고 말하는 내게 적잖이 놀랐다. 시간이 빨리 흐르니 금방 정년을 채우고 퇴직하겠다고 말할 줄 알았는데 말이다.       


퇴직을 해야겠다고 결론을 내린 후부터 퇴직할 이유를 찾고 있었다. 이유가 있어서 퇴직하는 게 아니고 퇴직을 결정해 놓고 이유를 찾는다는 게 웃기지만 그땐 그랬다. 퇴직할 100가지의 이유를 채우느라 사소한 것들까지 의미를 부여하며 메모까지 해 두었다. 출근할 때나 퇴근할 때나 잠자리에 들 때나.     

 

 퇴직하는 이유가 남편 때문이 아니라 내 필요에 의해 퇴직한다고 말할 수 있는 정당한 명분이 있어야 했다. 멈추고 돌아보니 많은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출근하고 일하고, 퇴근하고 일하고.. 를 반복하며 보낸 30년. 가정을 병행하는 많은 직장인들이 비슷한 생활을 하고 있고 당연하다고 여기며 지내온 시간들이다. 요즘에는 여러 직종에서 ‘평생직장’이라는 단어 자체가 어색한 시기가 되었지만, 라테는 한 직장에서 정년까지 근무하다 정년퇴직을 하는 경우가 자연스러웠기 때문에 30년 직장 생활을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덕분에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생활을 할 수 있었고, 직장에서나 사회적으로 얻는 직함의 만족도도 무시할 수 없을 만큼 감사한 일이었다.      


근데, 거기까지다. 

이상하게도 나는 늘 그 안에서 만족스럽지 못했고 내 삶에서 막연하게 해내야 할 숙제 같은 것이 남아 있는 기분을 떨치지 못했다.    

       

‘백세 시대’라며 은퇴 후 많은 시간이 남았다고 누군가는 말하지만 나는 두 번째 인생을 맞이하기 위해 다리에 힘도 남겨두고 감정과 느낌도 남겨두어야 했다. 에너지를 다 쓰고 두 번째 인생을 맞이한다면 빼곡히 적어놓은 버킷리스트를 실행할 수 없어 내게 미안한 마음이 들 거 같기 때문이다.      


푸석한 머릿결, 늘어진 목주름, 물렁해진 근육, 노화 속도가 눈에 띄게 늘어 내 시간이 줄고 있는 게 보이지 않나? 쏜살같이 시간이 흘러 금방이라도 시간이 남아 있지 않을 것처럼 조바심이 났다. 조바심이 생겨 직장에서의 업무가 무의미해지기 시작한다? 그럼 이제 나갈 때가 된 거다.      


가끔 이런 내 마음을 털어놨을 때 남편은 맞장구쳐 준다.     


“30년 넘게 직장 생활했으면 이제 그만 내어 줄 때도 됐다. 생계가 어려우면 몰라도 그렇지 않다면 이젠 진짜 하고 싶은 일을 해야지. 남은 일은 후배들이 알아서 잘할 거니 미련두지 않아도 돼.” 


머리카락이 벗겨지고 머지않아 흰머리 가득한 할아버지가 되어가는 남편을 내가 등한시하지 않는 이유다. 그는 내가 함께 퇴직하고 같은 일상을 보내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하는 오래된 친구다.      


“나 보다 두 살 어리니 내가 먼저 퇴직하고 당신은 2년 더 근무해야 공평한 거 아냐?”     

웃으며 농담 삼아 말한 적은 있어도 한 번도 남은 임기를 채우라고 강요한 적 없다. 


하고 싶은 게 많아서 퇴직하는 나와 달리 남편은 책임과 의무에서 벗어나 이제는 완전한 자유인이 되고 싶었나 보다.   

  

남편은 책임감과 의무감이 강한 사람이다. 아이들이 어릴 때 자신이 죽으면 처 자식이 어떻게 살아갈까 걱정되어 놀이기구도 마음대로 탈 수 없었다고 한다. 두 아들이 고등학생이 되었을 때쯤(최소한 아버지가 없어도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해서) 처음으로 티익스프레스(무서운 속도의 놀이기구)에 도전했다고 나중에야 털어놓았다. 


재활병원에서 더 치료를 해야 한다는 의사의 권유를 뿌리치고 출근했던 이유도 아직은 아버지로서 경제적 지원이 필요한 자식들에게 의무를 다해야 한다는 마음이었단다.    

  

뇌경색 후유증으로 인한 불편한 몸으로 남편은 6년 반을 직장에서 보냈다. 누구보다 강한 이미지를 갖고 자신감에 차 있던 남편이 어떤 마음으로 어떻게 그 시간을 보냈는지 나는 다 알지 못한다. 희망을 가졌다가 실망을 했다가, 도전했다가 우울감에 빠졌던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았을 뿐.   

   

퇴원 후 첫 출근하던 날, 온몸에 땀을 흘리며 한 손으로 넥타이 매던 일을 기억한다. 그때 비하면 남편의 몸은 6년 동안 호전되었다. 두 아들이 대학을 마치고 경제적 독립을 한 후, 아버지로서의 의무를 내려놓고 이제 자신을 위해 재활의 시간을 갖겠다고 퇴직을 생각했다. 

     

‘구성원들의 갈등을 해결하고 컴퓨터에 앉아 결재하는 이 시간에 나를 위해 재활 운동을 해야 한다. 더 늦어지면 남은 시간 평생 불편한 몸으로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   

  

재활 운동은 본인이 해야 하지만 직장에서의 역할은 자리에서 물러나면 후임자가 해도 되는 일이라는 판단을 한 것이다.     




참 신기하다. 천직인 줄 알고 30년 넘게 최선을 다해 직장생활을 했는데 퇴직을 해야겠다고 생각하니 직장의 많은 것들이 하루아침에 미련 없어졌다. 그 해를 마무리한 후 퇴직을 했다. 정년퇴직까지는 아니어도 적어도 이렇게 빠른 시점은 아니었는데. 그러나, 남편이 명퇴를 한다면 나도 그래야 했다.  남편의 보호자니까.   

  

남편은 남들이 아쉬워하는 안정적인 직장의 임기를 1년 반 남겨두고 퇴직을 했다. 의리 있는 나도 100가지는 못 채웠지만 퇴직의 명분을 만들어 직장에서 나왔다. 우리는 그렇게 일반인이 되었다.   




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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