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 같은 하루, 하고 싶은 거 다 해!
출근에 대한 부담이 사라지고 난 뒤부터 제일 먼저 알람을 껐다. 30년 넘게 알람에 맞춰 일어나 정해진 루틴대로 움직인 내게 쉼을 주고 싶었다. 내 몸 상태보다 그날 해내야 할 일에 초점 맞춰 움직였던 내 몸에게 주는 작은 보상이다.
부드러운 햇살이 창가를 비추어 내 몸이 깨어날 때 일어나서,
잠들고 싶을 때 잠드는 지극히 자연적인 습성에 따라 사는 것
쫓기지 않고 차리는 아침상, 따뜻한 차 한잔
해가 뜨고 짐에 따라 반복되는 집안일을 하는 소소한 하루
얼마나 바라던 일상인가.
그것만으로 행복이 충만하기를, 더 많은 욕망을 따라 내 삶이 허비되지 않기를 아침마다 기도했다.
느긋하게 아침 시간을 보내니 남편과 대화하는 시간이 자연적으로 늘었다. 남편과는 얘기를 자주 나누는 편이다. 내가 가진 갈등에 대해 얘기 꺼냈을 때 남편은 주로 들어주거나 자신이 바라보는 입장에서 참고할 만한 해결책을 제시해주기도 한다. 아이들 이야기나 개인적인 고민을 나누다 보니 어느새 남편은 내게 가장 오래되고 편안한 친구가 되었다.
내가 편안하게 내 이야기를 꺼내는 반면, 남편은 자신의 이야기를 잘하지 않는다. 주로 들어주거나 꺼내놓은 이야기에 관해서 자신의 의견을 제시할 뿐.
출근하지 않는 아침이 적응되지 않았을 때 우리는 자주 ‘퇴직’과 관련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동안 많은 이야기를 나누어 남편에 대해 잘 안다고 여겼던 나는 지극히 개인적이고 내면적인 사정을 퇴직 후 마주 앉은 식탁에서 알게 되었다.
30년 동안 자신의 결과 다른 일에 몸담고 있었다는 것,
자식으로서 가장으로서 책임을 다하기 위해 그 시간을 견뎠다는 것,
이제 남은 시간은 오롯이 자신이 원하는 삶으로 채우고 싶다는 것.
천직인 줄 알고 나름 신나게 직장생활을 한 나와 달리 남편은 자신의 기질과 다른 곳에서 시간을 보내야 했으니 얼마나 그 삶이 재미없고 견뎌야 해서 힘들었을까. 남편의 속내를 퇴직 후에야 마주하게 된 나의 무신경이 원망스럽다. 지금에라도 자신의 시간을 찾을 수 있게 되었으니 다행이지만.
남편과 이렇게 대화를 주고받을 때 나는 자주 이런 생각을 한다.
“님편이 신체기능을 관장하는 부위를 다치지 않고 인지기능을 담당하는 부위가 손상되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오늘이 며칠인지, 앞에 앉아 간절히 대화를 시도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아침마다 묻고 인지시키던 재활병동 맞은편 병상에 있던 환자의 보호자를 떠올린다.
매일 아침 묻고 인지시켜도 내일이면 며칠인지 대답하지 못하고, 보호자를 ‘마누라‘라고 했다가 ’ 우리 딸!‘이라고 했다가 가끔은 ’ 몰라 ‘라고 답하던 그분. 그분 맞은편 병상 옆의 환자는 서른을 갓 넘긴 머리숱이 새까만 청년이었다. 8살 인지기능으로 떨어져 매일 낱말과 문장을 쓰고 그분의 엄마로 보이는 보호자와 받아쓰기하는 것이 중요한 하루 일과였다.
다른 사람의 불행을 보고 내 불행을 가늠하는 것은 못할 짓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병상 침대 너머로 들려오는 환자와 보호자의 대화를 들으면서, 인지기능이 아니라 신체기능을 다쳐서 천만다행이라고 나를 위로하던 때가 있었다.
일상을 얻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희망을 가졌다가 절망에 빠지기를 반복했는지 안다. 공기처럼 당연하게 여겼던 일상, 일상 따위는 깃털처럼 가벼워 다른 삶을 넘겨보고 다른 곳을 떠나던 내가 아니었나. 그랬던 내가 일상 회복이 목표의 전부였던 재활 현장을 보고 더없이 '일상의 소중함'을 체감했다.
평온한 일상, 그것이 목표였던 지난 시간들을 떠올리면 지금 맞이하는 아침은 그때의 목표를 이룬 거나 마찬가지다. 평온한 일상이 가능하고, 비판하고 의견제시를 할 수 있는 사고기능이 얼마나 감사한가.
왼쪽 팔다리가 부자연스러워 거북걸음이 되었지만 나를 알아보고 자신의 의사를 표시하면서 대화를 주고받는 것만 해도 감사하다. 그것만으로 행복을 찾아가기에 충분하다. 나는 자꾸 되뇌었다.
‘선물 같은 하루, 이 감사를 잊지 말자!’
우리는 또 다른 목표를 위해 하루하루 조금씩 성장하는 시간을 보낼 것이다. 서두르지 않고 우리의 속도대로 나아간다면 거북이 도달했던 결승지점처럼 우리도 우리가 정한 행복에 도달할 수 있지 않을까?
내가 알람을 끄고 자유인의 대열에 합류했다면 남편은 수염을 깎지 않는 것으로 퇴직자임을 표시했다. 노화를 당겨 할아버지처럼 보인다 해도 자신의 시간을 갖겠다는데 뭐라 할 것인가. 하고 싶은 거 다 해. 조금이라도 그것이 마음의 위안을 준다면.
알람을 끄고 몸이 원하는 대로 며칠을 보냈는데 몇 년째 괴롭혔던 불면증이 사라졌다. 잘 자고 일어나는 것만으로도 건강해진 느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