곧 파라과이로 떠나는 SY에 관하여

by 쏭쏭

SY는 만 5년 전 가을, 잠실역 스타벅스 2층에서 처음 만났다. 친구 SH가 기존에 하고 있던 독서모임이 파토가 나 새로운 멤버 한 명을 더 충원하는데 그게 나였으면 좋겠다고 했다. 제안을 수락하고 첫 만남에 나섰다. 잠실역에는 스타벅스가 2개 있었고 처음 찾아간 곳이 약속 장소가 아니었어서 다시 찾아간다고 마음이 분주한 상태였다. 도착한 곳에는 SY가 도도한 모습을 하고 테이블 앞에 앉아 있었다.


그렇다. SY의 첫 인상은 '차가운 도시 여자' = '차도녀'였다. 보브컷에 목 폴라티를 입고 은색 링귀걸이를 하고 있었다. 굉장히 도회적인 이미지였다. 지방에서 서울로 와 다양한 사람을 만나 보고 싶은 욕구를 거의 다 채우고 쉬고 있었던 때라 새로운 만남에 긴장이 됐다. '저 차도녀가 어떤 사람일까, 친해질 수 있을까' 궁금증이 일었다.


알고보니 그녀도 초등교사였다. 스스로도 초등교사 이미지에 대한 편견이 있었기에 SY를 보고 '아니, 저런 차도녀의 이미지를 지닌 사람이 초등교사를 하고 있구나' 싶었다. 나중에서야 알게 된 점이지만 그녀도 사회에서 '초등교사에 대해 가지는 이미지'를 거부하고 있었다. 그녀와 대구 여행을 한 적이 있는데 서문시장으로 향하는 택시 안에서 기사님이 우리를 보자마자 "교육계에 계시지요?" 라고 했고, 둘 다 눈을 크게 뜨며 "아니에요."라고 했다. 그리고는 기사님께 되물었다.


"그런데... 어떤 점 때문에 그렇게 생각하셨어요?"

"내가 지금 기사 생활이 몇 년인데, 딱 보면 압니데이"

"아니, 저는 그렇다 치고 얘(SY)는 그런 이미지가 전혀 아닌데요?"

"허허... 굉장히 도회적인 이미지이기는 하네예"


기사님의 말을 듣고 나보다 더 눈을 휘둥그레 떴던 SY의 모습이 떠오른다.


"언니... 저 좀 더 막 살까봐요.... 너무 교사처럼 보였나봐요... 용납할 수 없어요."

ㅋㅋㅋㅋㅋ


SY가 저 말을 하는 배경은 십분 이해가 됐다. 사회에서 바라보는 직업 이미지와 상관없이 개개인은 개성을 가질 수 있는데 내가 바라본 SY의 이미지는 '자족가', '자유인', '예술인' 이었다.


일상에서 성취를 중요하게 생각하던 내게


"언니, 저는 하루동안 아무 고난이 일어나지 않고 지나가면 거기에 만족해요. 학교에 가서도 할 일을 다하고 와서 저녁에 수영하고, 운동하고 와서 가끔 한 잔씩 하면 그것으로 만족해요. 언니는 가르치고 나서 아이들 성적이 좋지 않으면 죄책감이 든다고 했는데 우리는 교사로서 제 할 일을 한 거잖아요. 그 밖의 결과는 내 탓이 아닌 거예요." 라고 말해 준 것도 SY였다.


지난 5년 동안 SY와 강원도 평창 육백마지기, 제주도, 여수와 순천, 무주, 속초, 양양, 강릉, 정선, 서래마을, 대구, 청송 등 많은 곳을 여행다녔는데 여행을 다니며 그녀가 찍어 보내주는 사진들은 언제나 감성이 넘쳤다. 같은 장소에서 같은 장면을 보면서도 어찌 저리 갬성샷을 찍어낼 수 있을까 감탄했다. 그것은 그녀 안에 '세상을 바라보는 아름다운 안목', '예술성'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여행의 동행자로서 갬성 넘치는 여행 사진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은 그녀와 함께하여 얻을 수 있는 영광 중 하나였다.


딱 1년 전 겨울, 그녀와 단둘이 강릉 여행을 다녀왔는데 여행을 다녀오고 나서 나는 주변인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내가 태어나서 했던 모든 여행 중에 제일 좋았어!"


그런 말을 할 수 있었던 까닭을 스스로 되짚어 보았는데 아무래도 그것은 'SY와 함께여서'인 것 같았다. 그녀와 바닷가 근처 까페들과 테라로사에서 간간이 대화를 하며 큰 창을 응시하는 시간을 가졌는데 그때 나는 마치 SY가 되어 시간을 유영하는 법을 배우게 된 것만 같았다. 열심히 노력할 줄만 알지 쉴 줄 몰랐던 내게 쉬는 법을 가르쳐 주는 것만 같았다. 바다 풍경과 하늘의 모습, 노을의 모습에 감탄하면서 '매일 하늘의 모습을 사진으로 담는 일로도 살아갈 수 있을 것 같다'는 SY의 말에 '살아가는 힘은 성취에서만 오는 것이 아니구나', '세상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는 방식은 다양하구나' 를 깨달았다.


낮의 여행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와 맥주잔을 기울이며 서로의 가치관, 일상, 생각을 나누는 그 시간, SY가 건넨 따뜻한 응답들도 내게 무척 큰 힘이 되었다. SY는 매해 반복되는 나의 진로고민을 언제나 처음처럼 들어주고 자신의 가치관을 들려준 사람이었다.


대구 여행에서도 생각치 못한 곳에서 배려를 느끼게 했던 때가 있었는데 내가 다녔던 교대 근처 최애 까페에 친구들을 데리고 간 때 였다. 좋아하는 사람들만 데리고 가는 곳인데 대학을 다니며 지녔던 젊은 날의 고민들, 좌절이 한꺼번에 묻어나는 곳이었다. 함께 간 이들에게 맛있는 음료를 사주고 싶어 카드를 꺼냈는데 장소에 대한 나의 추억을 알고 있었던 SY가 갑자기 카드를 꺼내며 자기가 계산하겠다고 했다.


"언니가 힘들었던 기억으로 가득한 이곳이 우리와 있었던 좋은 기억으로 덮여졌으면 좋겠어요."


나는 조금이라도 눈에 힘을 주면 눈물이 흘러내릴 것 같았다. '마음 깊이 느껴지는 고마움'이라는 표현은 이럴 때 쓰는 것이었다. 그날 밤도 숙소로 돌아와 음료와 케잌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었고 그 시간 속에서 평온함을 느꼈다.


SY라는 사람 자체에 대해 조금 더 묘사를 하자면, SY는 굉장히 똑똑하다. 내가 그녀에게 붙여준 별명으로는 '홍gpt', '홍MD' 등이 있다. 그녀에게 뭔가 질문하면 거의 모든 주제에 대해 알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또 여러 선택지 중에 무언가 선택할 때도 다양한 근거를 제시하여 최선의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선택의 대상은 물건에서부터, 이사 여부 등 인생에서의 큰 결정도 포함된다. 내가 현재 살고 있는 주거지 또한 SY가 찾아준 곳이다. 여행 계획을 세울 때에도 숙소, 비행편 목록들을 쭉 보내와 선택하기만 하면 되도록 한다. 그러고는 한 마디를 덧붙인다. "제가 좋아해서 한 일이예요.(찡긋)" ㅋㅋ


(며칠 전, 만난 지 5년 만에 확인한 사실이지만 SY는 서울의 유명한 외고를 졸업한 공부분야 똑똑이기도 했다.)


또, SY는 이성에 기반하여 선택을 내리는 'T'이기도 하면서 굉장히 사회화된 'T'라고 할 수 있다. 첫인상만 보면 차갑지만 알고 보면 직장에서 서로 동학년을 하고 싶어하는 재원이며 학부모님과 통화를 할 때는 목소리톤이 바뀐다. ㅋㅋ 친구 사이에 서도 한 명도 소외되지 않도록 챙기는 것이 바로 SY다.


쓰고 보니 SY에 대해 한 쪽면만 쓴 것 같다. 자고로 여러 면이 존재하는 인간이 매력적이므로 SY의 분노에 대해서도 써 보고자 한다. SY가 분노하는 장면을 목도한 것이 떠오르는데, 장소는 명동역 명동교자, 비오는 날 이었다. 여전히 손님이 많았고 종업원은 빈 자리가 훤하니 있는데도 손님들을 줄 세워 놓고 자리를 내어 주지 않았다. 우리는 손님 알기를 똥으로 아는 명동교자를 박차고 나왔고 나오면서 SY는 식당에 대고 외쳤다.


"이건 아닌 것 같아요!!!!!!!"


나는 SY가 그토록 앙칼진 목소리를 높게 낼 수 있다는 것을 그때 처음 알았다. 그러면서도 그 모습을 볼 수 있음이 기쁘기도 했다. '우와~ 분노하는 모습을 본 사이가 되었다~~' 하고. ㅋㅋ


언젠가 우리들끼리 친구 사이에서 견디기 어려워하는 지점에 대해서 이야기 나눈 적이 있는데 SY는 시간 약속을 지키지 않는 것이라고 했었다. 나는 모임에 자주 지각을 하였는데, SY는 한 번도 분노를 내비친 적이 없었다. 이자리를 빌려 사과의 말을 전한다.


'자족가', '자유인', '예술인'인 SY가 곧 파라과이로 떠난다. 그곳에서 3년의 세월을 보내고 돌아올 것이다. (돌아오겠지?) 작년 중순 쯤, 남미 쪽 나라 파견에 지원할 생각이 있다고 말해 주었었는데 우리 똑똑한 홍gpt님께서 3대1의 경쟁률을 뚫고 파견자로 선정되었다.


올해 초 함께한 제주도 여행에서 파라과이라는 새로운 장소에서 앞으로 일어날 일을 설명할 때 SY 목소리는 내가 그동안 들어본 어떤 목소리보다 상기되어 있었다. 눈에서도 빛이 났다. 나는 그때 생각했다.


'SY가 자신이 원하는 길을 선택했구나. SY가 지금 행복하구나'


앞으로 펼쳐질 미래에 대한 두려움과 걱정이 섞여있었지만 SY는 분명 기뻐하고 있었다. 나는 피곤하여 먼저 방에 들어가서 잠들었는데 그동안 보아왔던 얼굴 중 가장 행복한 얼굴을 하고 있는 SY의 표정이 자꾸만 떠올라 행복했다.


이제, 설명을 마무리하고 떠나는 SY에게 편지를 건네볼까 한다.



SY에게


저렇게 훌륭한 아이가 내 친구라면 나도 훌륭한 사람이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게한 SY야, 여행을 다녀오면 감성 넘치는 샷을 공유해 주어 우리가 보낸 시간이 이렇게 예쁜 시간들이었나를 깨닫게 해주는 SY야!


진실로, 너와 함께 한 모든 순간이 좋았다. 너의 벗이어서 행복했어. 앞으로도 평생 생로병사의 '로병사'를 함께 겪으며 살아가고 싶다. 벌써부터 네가 파라과이에서 만날 '곤잘레스'와 네가 기를 '이구아나'를 떠올려. 내가 상상한 너의 미래를 들으며 우리는 한바탕 배를 잡았지만, 너와 어울릴만한 미래를 그릴 수 있어 행복한 시간이었어. 그만큼 네가 너와 어울리는 미래를 선택했기 때문일거야. (까페에서 글을 쓰고 있는데 왜 이렇게 눈물이 나니.)


이번 제주 여행에서 식당, 까페에 앉을 때마다 내가 자신의 대각선에 앉는다며 신기해했던 SY야!


파라과이에 가서도 지구 대각선 방향에는 언제나 송*언니가 있다는 것을 떠올려줘. 우리 아빠는 나를 서울로 보내며 '물가에 내어 놓은 어린아이'같다고 하였지만 나는 너를 보내며 '물가를 씹어 먹을 어른'이라는 믿음을 가져봐. 그곳에서도 힘든 일이 왜 없겠니. 그치만 지구 반대편에 있을 우리 H, SH, DK를 떠올려줘. 우리가 언젠가 보았던 육백마지기의 별처럼 빛나고 있을게. 별은 바라보는 자에게 빛을 보여준다고 하더라.


내게 늘 자랑스러운 SY. 때로는 언니처럼, 때로는 현자처럼 지혜롭고 따뜻한 말을 건네 주었던 SY.


난 이미 6개월 전부터 남미에 가 있을 너를 상상했기에 파라과이에 정말 가게 되었다라는 소식을 접했을 때 놀라지 않았지만 문득 떠날 너를 생각하며 베겟잎을 적시게 되긴 했어. 앞으로도 내 베겟잎은 갑작스레 묻어나는 눈물들에 당황스러워 할테지만 거기에는 슬픔이 30%, 기쁨이 70%로 기쁨의 지분이 더 클거야. 널 언제나 응원해.


마지막은 응원의 마음을 담은 시로 마무리할께. 행복해 SY야.




사랑을 보낸다

나태주


그래 좋아

거기서 너 좋아라

좋은 바람과 놀고

좋은 햇빛과 놀고

나무가 있다면 그 또한

좋은 나무 그늘 아래

너도 좋은 나무 되어

나무처럼 푸르게 싱싱하게

숨 쉬며 살아라

네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어울려

예쁘게 살아라

그게 내 사랑이란다.



2024.1. 作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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