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뒤의 별을 노래하는 마음

by 쏭쏭

2024년 1월 1일, 전남 영암군 영암초에서 20년 전 제자들과 담임교사가 다시 만났다. 졸업식 때 20년 후 만나자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모인 것이었다. 재회하는 영상은 화제가 됐다. 많은 이들이 훈훈함과 감동을 느꼈다. 내게 그 감동이 덜했던 건 이미 6개월 전, 10년 만에 제자를 만났다는 선배의 전화를 받았기 때문이었다. 2023년 6월 2일 밤이었다.


“방금 옛 제자를 만나고 왔어요. 6학년 2반 담임이었는데 졸업하면서 10년 후인 2023년 6월 2일 저녁 6시 2분, 학교 앞에서 만나자고 했었거든요. 근데 그때 딱 한 번 말한 것 뿐이었는데... 저기 멀리서... 한 명이... 나타나는 거예요...”


떨림과 벅차오름이 전화기 너머로 전해졌다. 선배는 만나기로 한 시각에 아무도 보이지 않았지만 왠지 한 명이라도 올 것 같은 느낌에 30분을 더 기다렸다고 했다. 이제는 안 오겠지 싶어 떠나려는 찰나, 갑자기 저 멀리서 제자가 걸어오는 것이었다. “선생님?”하고 부르는 소리에 눈물이 쏟아졌고, 군복무 중인 제자가 일부러 휴가를 내 와 준 것에 가슴이 벅차올랐다고 했다.


“이제 저녁 먹고 가는 길이에요. 이 이야기를 누군가와 나누고 싶었는데 송이가 떠올랐어요. 감격스러운 순간을 함께 해주어 고마워요.”


선배는 5년 전, 새로 옮긴 학교에서 만났다. 운동장에서 동료들과 다소 터프하게 인사를 나누던 모습이 선배를 기억하는 첫 장면이다. 선배는 업무적인 면에서 이성적이고 직설적으로 말하는 편이라 동료들에게 대문자 T로 여겨졌다. 그런 선배와 2021년, 내가 학교폭력과 안전 업무를 총괄하는 생활안전부장이 되고부터 부장단을 함께하며 인연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해 나는 고학년 담임도 하고 있었기에 날아드는 공문과 학급일을 동시에 처리하느라 5분도 눈 돌릴 틈이 없었다. 단정했던 머리는 점점 산발이 돼 갔다. 여전히 업무에 허덕이고 있던 어느 가을, 선배가 교실문을 두드렸다.


“우리 마치고 한강 가서 저녁 시켜 먹을까요?”


우리는 그날 학교에서 한강까지 시원한 맞바람을 맞으며 자전거를 탔다. 맛있는 타코를 먹으며 붉게 물들어 가는 노을을 봤다. 현실감이 옅어지는 것 같았다. 갑자기 이런 여유라니. 행복과 여유는 만들자고 하면 만들어지기도 하는 것이었다. 선배는 열심히 노력하는 법만 알았지 쉴 줄 몰랐던 내게 잠시 멈추어 보는 순간들을 선사했다. 업무를 하다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응원의 문구를 남기고 가기도 하고 내게 어울린다며 화병에 꽂은 꽃을 교실로 보내기도 했다.학교 앞에 줄을 서야만 살 수 있는 붕어빵을 한아름 사와 맛보여주는가 하면 맛있는 차가 있는 티타임에 초대하기도 했다. 체력이 다해 조퇴하던 어느 날은 꼭 택시를 타고 편하게 가라며 택시비를 보내줬다.


그러던 2023년, 계속된 교직 생활로 몸이 지쳤는지 일곱 달 동안 하혈을 했다. 종양도 커졌다. 몸이 더 이상 버티지 못할 때쯤 병가를 냈다. 3개월 쉬고 복직하려던 때, 선배의 도움으로 이어서 병휴직을 했다. 집 앞 마트에만 다녀와도 누워있어야 체력이 회복되는 여름을 보내며, 쉬지 않았더라면 어쩔 뻔했나 아찔했다. 선배 덕분에 인생에서 처음으로 몸도 마음도 쉬는 시간을 가졌다. 얼마 전, 휴직을 마무리하며 1년 만에 선배를 다시 만났다.


“부장님, 지난 1년간 달마다 부장님이 카톡으로 보내주는 <월간 김경은>이 정말 재미있었어요. 부장님의 활기찬 생활 모습이 제게 생기를 줬어요”


그리고 선배에게 오랫동안 궁금했던 질문을 했다.


“부장님 카톡 알림말에 있는 ‘별을 노래하는 마음’은 어떤 마음인가요? 지난 5년간 바뀌지 않는 말이라 부장님께 중요한 가치 같았어요.”


“아, 맞아요. 윤동주 시 ‘서시’에 나오는 문구인데 사실은 그 다음 부분이 더 중요해요.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그렇게 살고 싶은 마음이에요.”


선배는 이어서 한 장의 사진을 보여주었다. 1990년 보이저 1호가 64억km 밖에서 찍은 지구별 사진 ‘창백한 푸른 점’. 지구는 광활한 우주공간 속 외로운 티끌 하나라는 칼 세이건의 말을 떠올리며 화가 날 때도 별을 노래하는 마음을 가져보려 한다고 했다. 커다란 우주 속 작은 공간에서 찻잔을 사이에 두고 선배는 내게 새 출발을 의미하는 노란 프리지아와 나를 닮아서 사지 않을 수 없었다는 분홍 작약장미를 건넸다. 나는 달력과 책, 차와 편지를 전했다.



지난 5년간 부장님은 제게, 한강에서 함께 바라보았던 노을이고, 자전거를 타며 맞았던 바람이고, 2021년 선물해 주셨던 초코 케이크에서 맛보았던 달콤함이고, 학교 앞 트럭에서 사 온 붕어빵 속의 알찬 팥이예요. 그리고 저의 자랑이에요. “여기 이곳에 이토록 능력 있는 교사가 있다. 오랜 세월, 교사라는 꿈을 간직하고 진실되게 달려온 한 사람이 있다. 후배에게 너는 귀하고 아름다운 사람이라고 말해주는 다정한 선배가 있다.”고 자랑하고 싶어져요.


부장님이 택배를 가져다 주며 붙여 놓았던 포스트잇, 업무에 허덕이는 저를 응원하기 위해 남겨놓고 간 웃긴 피피티, 뒷장을 뒤집었더니 ‘혹시 뒷장을 보았다면, 이렇게 예상치 못한 기쁨도 숨겨져 있는 하루를 더 기대해 봅시다’라고 써 놓았던 A4용지 메모 등도 원본 또는 사진으로 모두 간직하고 있어요.


마지막 문장을 쓰기 위해 서론이 길었어요. “경은 부장님, 제게 미쓰 선샤인이 되어 주어 고마워요. 부장님은 제게 빛과 소금이 되어 주었어요. 참말로 고맙습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을 응원하는 송이 드림-



헤어진 밤, 편지를 읽은 선배가 카톡을 보냈다. ‘나 너무 벅차고 소중하고 행복해서 편지를 프로필 사진으로 하고 싶은데, 허락을 구할 수 있나요?’ 대문자 T로 오해받고 있으나 실은 지극히 F인 선배. 떨림이 그대로 느껴지는 전화를 받았던 2023년 6월 2일, 우리는 10년 뒤인 2033년 6월 2일 함께했던 학교 앞에서 다시 만나기로 했다. 그때 선배는 여전히 별을 노래하는 마음을, 나는 아름다움을 노래하는 마음을 지니고 있을까? 그래서 서로의 노래를 들려주게 될까? 다시 마주할 선배에게 햇빛 속을 떠도는 작은 먼지와 같은 지구별에서 목격한 수많은 아름다움이 가득한 편지를 건네고 싶다.


2025. 作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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