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연적 동병상련
왕가위 감독의 영화로 장만옥과 양조위가 주인공인"화양연화'를 떠올리면 불륜이 먼저 떠오른다.
아마도 일반적이지 않은 소재다 보니 영화를 보기도 전에 평가가 이루어지는 거 같다.
그러나 이 영화는 궁극적으로 그들을 섣불리 평가하지 말라고 당부한다. 불륜영화가 목적이
라면 네 사람이 앉아서 마작을 치는 장면이 들어가면 아주 쉽다. 박진감 넘치는 마작판 위, 그 마작판 아래의 움직임을 그려내면 되니까.
그런데 이 영화는 그런 점에 관심이 없다. 영화에 대한 외부적 잣대로 두 부부관계와 각 인물들을 평가하기보단 구조화된 관계 속 내면으로 보자면 개인이 겪는 이데올로기적 갈등을 겪는 상황에 초점을 맞춘 것이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영화 속 주모운(양조위)과 수리첸(장만옥)은 서로의 남편과 아내의 입장이 되어 연기를 한다. 그들이 어째서 사랑에 빠져게 되었을까를 알아
보고 싶은 이유에서이다. 여기서 중요한 두 가지를 깨닫게 된다. 주모운의 행동을 보고 수리첸은 '나의 남편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라고 하고, 반대로 수리
첸에게도 주모운은 자기 아내의 모습으로 교정을 한다.
하지만 이를 통해 알 수 있는 건, 각자 자기가 알고 있던 자기 결혼 상대의 이상형이 틀렸다는 것이다. 나의 결혼 상대가 원했던 모습은 지금 재연했던 나
의 모습이 아니었던 것이다. 심지어 무엇을 원하는
지 알 수가 없다. 그들이 해왔던, 혹은 상대가 좋아
할 거라 생각했던 모습들을 부정당한다. 이는 나의 결혼 상대에게 내가 최선의 모습이 아니었을 거라
는, 나아가 내 결혼 상대가 원하는 모습을 내가 모 르겠다는 것이다. 사랑에 빠졌다는 두 불륜 남녀의 심리에 대해서 어떠했을지 도무지 알아챌수가 없
다. 우리는 그들에게 사랑을 받을 수도, 그들의 사
랑을 알고 있지도 못했던 것이었다.
즉, 내가 상대에게 최선의 모습이 아니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물론 이것은 내 책임이나 잘못은 전혀 아 니다. 다만 어차피 불륜을 떠나서도 둘의 부부 관계
는 완벽하지 못할 거라는 깨달음이다. 이를 깨달음 과 동시에 또 다른 하나를 깨닫는다. 내 남편의 모
습, 내 아내의 모습을 지금 재연 중인 상대를 통해 비교를 하다 보니, 재연 중인 상대를 보게 된다.상 대의 모습, 상대의 매력을 발견하고, 그것을 자신의 결혼상대와 비교하는 중이다. 다르다는 지적을 하
지만 그것이 틀림을 말하진 않는다. 다른 사람의 다 른점을 발견하는 일은 신선한 자극이다. 그 둘은 서로를 통해 부부와 다른 모습을 발견했고 결국 서로를 한 사람으로 바라보게 된 것이다.
서로가 어떠한 경위로 불륜에 빠지게 되었는지를 알아보는 과정에서 그들의 감정을 상상하다 보니 그 감정에 감화되고, 눈앞에의 그 감정이 맞는지를 끊임없이 생각해 본다. 두 사람은 육체를 섞거나 본 능에 이끌려 서로를 탐하지 않고 결국 다른 결정을 하였다.
"난처한 순간이다. 여자는 수줍게 고개를 숙인 채 남자에게 다가올 기회를 주지만 남자는 다가설 용기가 없고 여자는 뒤돌아선 후 떠난다."
영화는 시작과 동시에 스포일러를 한다. 감정만을 좇다가 그 돌진하는 감정의 관성을 이겨내지 못하 고 튕겨 나가지 않도록 대비해 뒀다. 그들이 머뭇거 리고 망설이는 순간들을 당부해 둔다, 단순히 사회 적 시선에 대한 경계뿐 아니라 개인의 감정에 있어 서도 우유부단해지는 순간들이 있다. 그들이 사랑 하지 않는 이유를 불륜의 배우자와 같아질 수 없어 서라고 하지만 그것만이 이유는 아닐 것이다. 이미 사랑해 보았고, 상처받아 본 적도 많은 이들이,경 험 속에서 변화된 소극적인 자신의 감정을 눈치챌 것이다. 사랑만으로 모든 것을 이겨낼 수 없고, 그 사랑도 영원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어떠한 깨달음말이다.
" 그 시절은 지나갔다"
" 그 시절이 가진 모든 것은 이제 사라지고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