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새 서늘해진 날씨에 딸아이의 간절기 옷을 사고 집으로 돌아오던 길이었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온 어느 프로그램의
오프닝 멘트가 귀를 붙잡았다.
‘그리고’와 ‘그런데’에 관한 이야기였다.
‘미안해, 그런데’라고 하면
상대가 과연 내 말을 들은 걸까 하는 의구심이 들게 되지만, 같은 의미라도 ‘그리고’라고 하면 관계가 조금 더 부드럽게 이어진다는 내용.
예전에 국어 공부를 할 때 들었던 말이 떠올랐다.
속독을 하려면 접속사를 잘 보라는 조언이었다.
‘그런데’나 ‘그러나’가 나오면 대체로 앞 문장보다 뒤 문장이 핵심이 되므로 빠르게 넘겨도 된다는 팁이었다.
반면 ‘그리고’는 앞의 말을 잇거나 덧붙이는 말이라 앞과 뒤를 함께 봐야 문장이 완성된다.
그래서 ‘그리고’가 나오면 앞뒤를 함께 읽어야 한다고 했다.
문법적으로는 전환이나 환기가 필요한 문장에서 ‘그런데’가 더 자연스러울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경험적으로
‘그런데’라는 말에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
문득 딸아이의 어린 시절 한 장면이 떠올랐다.
무언가 속상한 일이 있어 한참을 달래주고 있었는데,
충분히 위로했다고 생각한 순간에도 딸은 여전히 뾰로통했다.
그리고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런데~~?”
이미 그녀는 알고 있었다.
위로의 말 뒤에는 어김없이 ‘그런데’가 따라온다는 것을. 그래서 위로를 받으면서도 긴장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만약 위로의 순간 이후 내가 ‘그리고’로 말을 이어갔었다면 어땠을까.
“속상했지. 그리고 앞으로는 이렇게 해보자.”
조금 낯설지만, 어쩐지 덜 차갑다.
듣는 사람의 마음가짐에 따라 같은 말도 다르게 들린다.
자동적으로 마음의 빗장을 걸게 하는 말을 조금 더 경계해야 할 일인 듯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