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가능성'은 저항권의 정당화 요건인가
읽기에 앞서
이 글은 수년 전 철학과 졸업 논문으로 제출한 내용을 옮겨온 것입니다. 당시에는 오류가 없다고 생각하고 썼는데, 졸업논문 담당 철학과 교수님이 아마도 게임이론을 잘 모르셨을 것이기 때문에 피드백이 전혀 없었어서 오류가 있는데도 제가 모르고 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지금 다시 꼼꼼히 검토하기에는 게임이론 수업 내용을 대부분 잊어버려서 그렇게 하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조만간 수업 자료를 다시 둘러보면서 생각을 정리하고 글을 쓸 계획이 있지만, 어쨌든 지금 이 글은 '오류가 있을 수 있음'을 유념하고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목차
1. 서론
2. 순수 조정 게임(Coordination Game)과 내쉬 균형(Nash equilibrium)
3. 독재 사회의 민주화 모델
4. ‘성공가능성’은 저항권의 정당화 요건인가
5. 결론
1. 서론
저항권은 시민이 ‘불법적’ 국가권력에 의해 자유와 권리의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당할 때 이를 회복하기 위하여 최후의 수단으로서 실력으로 체제 전복을 시도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이러한 저항권은 자연권으로 보는 설이 유력한데, 이에 관한 구체적인 규범적 정당화는 다른 연구들에 의해 활발히 이뤄져왔다. 철학적·법리적 차원에서 이루어진 저항권의 정당화 요건은 명백성, 최후수단성 그리고 성공가능성 등이 있다. 명백성은 심각하고 현저한 기본권 침해가 누가보아도 객관적으로 현재 벌어지고 있어야 함을 의미하고, 최후수단성은 다른 구제 수단이 존재하지 않는 경우에 한하여 저항이 허용됨을 뜻한다. 성공가능성 요건은 저항권을 행사할 때에는 성공의 가능성과 손익을 고려해야 함을 의미힌다. 만약 체제 전복 시도가 실패하여 저항권 행사로 인해 벌어질 손해가 이익보다 더 큰 경우에는 저항권은 정당화될 수 없다. 저항권과 관련된 시민불복종 논의에서 롤즈 또한 성공가능성이 전략적 관점에서 중요한 요건이 될 수 있음을 지적한 바 있다.1)
그러나 저항권에 대한 이러한 규범적인 접근은 한계가 분명하다. 저항권은 단지 이론적인 개념으로만 온존될 것이 아니라 현실에서 실현가능해야지만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저항권을 실제로 실현될 수 있는 것으로 여기기 위해서는 저항권이 현실에서 성립하기 위한 요건을 검토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에 대한 접근은 규범적인 방법이 아니라 순수하게 연역적인 방향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저항권이 현실에서 실현되기 위해 갖춰야 할 최소 요건을 이론적 소여(所與)로 삼은 다음에 그 위에서 규범학적 논의가 오가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본 논문에서는 경제학 연구에서 널리 이용되는 인간 본성에 관한 최소한의 가정을 토대로 시민들의 저항권 행사를 보수행렬(payoff matrix)로 표현하여 제시한 뒤 다양한 균형을 도출하고 그 함의를 따져볼 것이다.
1) Rawls, John, A Theory Of Justice, Cambridge, Massachusetts: Harvard University Press, 1971, p. 376.
2. 순수 조정 게임(Coordination Game)과 내쉬 균형(Nash equilibrium)
문제는 특정한 경우에서 내쉬 균형이 복수로 존재할 수 있다는 점이다. 다음은 순수 조정 게임(Coordination Game)의 전형적인 사례이다.
위의 사례에서 운전자 1과 운전자 2는 모두 좌측통행을 하거나 모두 우측통행을 할 때 각자의 보수를 최대화할 수 있다. 따라서 운전자 1이 L를 플레이할 경우 운전자 2의 최선 대응은 L이 된다. 운전자 1이 R을 플레이할 경우 운전자 2의 최선 대응은 R이 된다. 운전자 2가 L을 플레이할 경우 운전자 1의 최선 대응은 L이 되고, 운전자 2가 R을 플레이할 경우 운전자 1의 최선 대응은 R이 된다. 따라서 내쉬 균형은 (L, L)과 (R, R)이 된다. 이러한 순수 조정 게임에서는 내쉬 균형에 따르면 (L, L)과 (R, R) 중 반드시 하나가 플레이된다.
유의할 점은 운전자 1이 L을 플레이하고 운전자 2가 R을 플레이하는 경우도 각자에게는 합리적인 선택일 수 있다는 점이다. 다만 이때는 각자가 상대방에 대한 예측이 틀려서 보수를 최대화하는 데 실패한 경우이다. 따라서 각자가 자신이 취할 보수를 최대화하려고 한다는 합리성 가정 한 가지만으로는 내쉬 균형이 실행될 것이라고 말할 수 없다. 각자는 상대방의 행동에 대한 정확한 믿음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이때 정확한 믿음은 비슷한 유형의 상호작용이 반복되는 상황에서 도달할 수도 있지만 내쉬 균형은 균형에 어떻게 도달할 것인가에 대한 이론은 아니다.
3. 독재 사회의 민주화 모델
독재 사회가 민주 사회로 이행할 조건을 보수행렬로 나타낼 때 필요한 가정은 다음과 같다. 먼저 모델을 단순화하기 위해 이 독재 사회에는 두 명의 플레이어만 있다고 가정된다. 이것은 무리한 가정이 아닌데, 각 플레이어를 실제로는 사회의 과반수라고 간주하거나, 민주 사회로 이행하기에 충분한 최소 n명의 시민 집합으로 간주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각 플레이어는 두 개의 전략적 선택지를 가지게 된다. 하나는 ‘방관’이고 또 다른 하나는 ‘저항’이다. 따라서 위의 전략 프로파일은 아래와 같이 2명의 플레이어와 2개의 전략으로 표시된 2*2의 행렬로 표현할 수 있다.
이때 각 시민에게 주어질 보수는 다음과 같이 가정할 수 있다.
모든 시민이 독재 정권을 방관한다면, 자유와 권리가 침해되는 상태가 지속되므로 각자는 -1의 보수를 얻는다. 두 시민 중 한 시민만 저항한다면 저항은 성공하지 못하며, 저항에 참가한 시민은 독재 정권의 보복을 받게 되어 보수가 -2로 설정된다. 시민들의 저항이 성공하는 경우는 모든 시민이 저항에 참여하는 경우인데, 이때는 사회가 민주 사회로 이행하게 되어 각자는 +1의 보수를 받게 된다. 각 보수는 단지 상대적인 크기만 중요할 뿐 실제로 받게 될 쾌고의 양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즉 기수적 의미는 갖지 않는다.
이러한 보수행렬의 내쉬 균형을 분석해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시민 2가 방관할 경우 시민 1의 최선 대응은 방관이 된다. 시민 2가 저항할 경우 시민 1의 최선 대응은 함께 저항하는 것이다. 시민 1이 방관할 경우 시민 2의 최선 대응은 방관이 된다. 시민 1이 저항할 경우 시민 2의 최선 대응은 함께 저항하는 것이다. 즉 앞서 살펴본 순수 조정 게임과 같이 독재 사회의 민주화 모델에서 내쉬 균형은 (방관, 방관)과 (저항, 저항)으로 복수가 된다.
이 점으로부터 얻어낼 수 있는 함의는 다음과 같다. 일단 (방관, 방관)의 전략이 균형으로 플레이되고 있는 한 독재 정권은 시민들의 저항을 탄압하지 않아도 독재 체제를 유지할 수 있다. 가령 다음과 같은 보수행렬에서도 내쉬 균형은 변하지 않는다.
여전히 시민 1과 시민 2는 상대방의 전략에 대해 최선 대응을 했을 때 (방관, 방관)과 (저항, 저항)이 도출됨을 알 수 있다.
또 마찬가지로 (방관, 방관)의 전략이 균형으로 플레이되고 있는 한 독재 정권은 시민들을 더 고통스럽게 통치해도 독재 체제를 유지할 수 있다. 가령 다음과 같은 보수행렬에서도 내쉬 균형은 변하지 않는다.
비슷한 원리로 시민들이 민주화를 더욱 절실하게 원하여 자신들의 보수를 다음과 같이 수정하여 간주하여도 결과는 변하지 않는다.
여전히 내쉬 균형은 (방관, 방관)과 (저항, 저항)이며 변함이 없음을 알 수 있다. 이것은 각 보수가 기수적 의미를 갖지 않는다는 말과 의미가 같다.
한편 모형에 따르면 독재 사회가 민주화될 수 있는 경우는 다음과 같다. 먼저 시민 중 최소 한 명이 방관하는 것보다 저항하는 것에 더 높은 보수를 받을 때 독재 체제는 무너지게 된다.
가령 위와 같은 경우 시민 1은 시민 2의 행동과 상관없이 저항하는 전략을 선택한다. 이 경우에 시민 2는 시민 1과 함께 저항하는 것이 더 이득이다.
또 각 시민이 상대방이 저항하리라는 것을 알 때에도 독재 체제는 무너지게 된다. 이 경우 <그림 3>을 기준으로 생각해보자. 시민 1은 시민 2가 저항할 것임을 알 때 자신의 보수를 최대화 하는 전략은 저항하는 것이다. 반대로 시민 2도 시민 1이 저항할 것임을 알 때 자신의 보수를 최대화 하는 전략은 저항하는 것이다. 즉 두 시민 사이에 공유지식(common knowledge)이 성립할 때 독재 사회는 민주화되게 된다. 이때 공유지식이란 두 시민이 서로가 저항하리라는 것을 알고 있음에 대한 무한한 깊이의 메타지식이다.
4. ‘성공가능성’은 저항권의 정당화 요건인가
저항권이 심각하게 기본권을 유린하는 불법적 체제를 실력을 행사하여 전복시킬 수 있는 권리라고 할 때, 이것은 체제 전복이 원시적 불능 상태가 아니여야 실질적으로 의미가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저항권의 성립 요건은 저항권이 실질적으로 의미있게 되는 조건을 밝힌 후에 확정될 수 있다. 여기서 ‘의미있게 된다’는 것의 의미란 앞선 모형에 따르면 ‘두 시민이 모두 저항하는 전략을 선택할 때’를 말한다. 결국 모형에서 두 시민이 모두 저항하는 전략을 선택하는 조건에서만 저항권은 유의미하게 성립할 수 있다.
앞서 살펴본 바에 따르면 두 시민이 모두 저항하는 전략을 선택하는 경우란 첫째, 한 시민이 다른 시민의 전략 선택과 상관없이 항상 저항하는 전략을 선택하는 경우, 둘째, 두 시민 사이에 서로가 저항할 것이라는 공유지식이 성립하는 경우이다. 이 두 가지가 가능한 경우에 한해서 저항권은 성립하는 것으로 각 조건을 보다 면밀하게 살펴볼 이유가 있다.
첫째, 한 시민이 다른 시민의 전략 선택과 상관없이 항상 저항을 선택한다는 의미는 저항하는 시민은 상대방 시민이 설령 방관함으로써 저항이 실패할지라도 여전히 저항한다는 것을 뜻한다. 즉 이때 저항하는 시민은 저항의 성공가능성 여부는 고려하지 않고 무조건적인 저항을 전략으로 플레이한다. 만약 성공가능성이 저항권의 정당화 요건이라면 이때 저항하는 시민의 행동은 정당성이 없는 것으로 간주되게 된다.
둘째, 두 시민 사이에 서로가 저항할 것이라는 공유지식이 성립한다는 의미는 그런 공유지식이 성립하게 되는 계기가 있음을 의미한다. 우발적인 사건이 계기가 될 수도 있지만, 저항권과 관련이 있는 논점은 그것이 아니다. 일단 두 시민이 서로가 저항할 것임을 아는 공유지식을 성립시키기 위한 노력은 그것이 성공한다면 결과적으로 저항을 촉발할 것이고 사회를 민주 사회로 이행시킬 수 있을 것이므로 저항권 행사의 일종으로 볼 수 있다. 그럴 때 공유지식을 형성하려는 시민은 자신의 저항권 행사가 최종적으로 성공할 전망과 상관없이 노력하여야 한다. 공유지식이 형성되기 이전에는 어떤 시점에서든 항상 저항 전략은 실패하게 되기 때문이다. 즉 이 경우에도 성공가능성이 저항권의 정당화 요건이라면 공유지식을 형성하려는 시민의 행동은 정당성이 없는 것으로 간주되게 된다.
결국 독재 사회가 민주 사회로 이행할 수 있기 위한 실질적 최소 요건은 자신의 저항 행동을 성공가능성과 상관없이 지속하는 행위자의 존재이다. 즉 저항권은 설령 성공가능성이 없더라도 저항 행동을 하는 행위자가 반드시 있을 것을 요구한다. 따라서 성공하지 못할 저항권 행사가 정당성이 없다는 주장은 공허한 것이 되며, 이상의 이유를 따져보았을 때 성공가능성은 저항권의 정당화 요건이 될 수 없다.
5. 결론
저항권의 요건으로 규범적 차원에서 최소 요건인 것처럼 보이는 것들을 나열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기존의 저항권 논의는 그러한 차원에 머물렀으므로 저항권의 정당화 요건을 제대로 검토하기 위해서는 다각적인 접근이 필요했다. 본 논문에서는 기초적인 게임이론을 통해 저항권의 정당화 요건으로 성공가능성이 주장될 수 없음을 연역적으로 밝혔다.
이는 비단 저항권에만 해당되는 내용은 아니다. 많은 철학적 개념과 주장들은 여전히 규범학적 세계에서만 박제되어 온존되고 있다. 그것이 실제로 유의미한지, 가능한지 등은 제대로 검토된 적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독일의 법철학자 라드부르흐는 ‘이념의 소재규정성(Stoffbestimmtheit der Idee)’이라는 개념을 소개한다. 예술가가 자신의 이념을 구리에 실현할지 대리석에 실현할 지에 따라 다른 조건을 검토하게 되는 것처럼 철학자도 자신의 이념이 처음부터 소재에 부합해야 할 운명을 타고났음을 자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맥락에서 저항권은 현실 세계에서의 행위자들의 상호작용이라는 소재를 타고났다. 저항권이 실제로 성립할 수 있어야 유의미해지는 한, 저항권은 스스로를 정당화할 요건으로 성공가능성을 둘 수 없었다. 이처럼 많은 철학적 개념들과 주장들은 그 자신이 소재에 맞게 이론화되고 있는지를 끊임없이 점검받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철학자들은 다양한 사회과학적 방법론을 적극적으로 도입해야 할 필요가 있다. 설령 규범적 주장일지라도 과학적으로 가능한 반경 내에서 전개될 때 더욱 설득력을 높일 수 있다. 많은 법철학자들과 정치철학자들은 이러한 측면에서 저항권에 대한 다양한 주장들이 주어진 소재에 제대로 부합할 수 있는지 따져 보는 것을 게을리했다.
하지만 본 연구에도 분명히 한계는 존재한다. 모든 모형은 현실 세계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부분만 간추린 것으로 일정한 왜곡의 가능성이 존재한다. 좀더 복잡한 모형을 다룬다면 이런 문제도 다소 해소될 수 있지만 본 연구에서는 독재 사회의 민주화에 관한 가장 간단한 모형만을 다루었다. 가령 시민이 2명 이상인 경우나 시민에게 주어진 선택지가 3개 이상인 경우와 같은 것은 고려하지 않았다. 때문에 좀더 복잡한 모형을 다룬다면 또 다른 중요한 함의를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제 그것은 후속 연구에 맡겨질 몫이다.
나가며
브런치는 왜 표, 수식 입력이 불가능한가요? 하다 못해 수식을 사진으로 캡쳐해서 올리는 것도 안 됩니다. 경제학 글도 쓸 예정이었는데 이러면 불가능하지 않나요. 개선이 시급해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