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th March
사실 이 숙제는 받은 지 꽤 됐다.
귀찮다 바쁘다 핑계로 오래 미뤄왔던 엄마가 정리하지 못한 필름 사진 정리이다.
엄마 아빠의 어린 시절 그리고 학창 시절, 결혼사진, 기타 개인적인 사진들, 오빠와 나의 어린 시절 그리고 기억나지 않는 아마 당시 친구들부터 일가친척들 사진이 쌓여있다.
엄마가 이 숙제를 왜 하필 나에게 줬는지 알 수는 있지만 의문을 가진다. 정말 나한테 이러기 있어!?
어린 시절 종종 필름 사진들을 들춰보던 나였지만 이번엔 달랐다. 엄마는 쿠팡에서 사진 앨범들을 주문해 나에게 보냈고 분류할 것, 그리고 전달할 것이란 무거운 짐을 나에게 실었다. 엄마가 어디 아픈 줄 알고 걱정하는 수준이었다.
가깝게 지내는 친척 언니 오빠들도 가족 역사(?)에 관한 질문을 나에게 많이 물어봤었다. 엄마와 소통이 잦고 이상하리만치 여기저기서 들은 게 많았고 어쩐지 모두 그걸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주로 가족들 중 관련 지병이라던지 과거 사건사고 라던지 그러면 나는 엄마 아빠와 나눴던 대화를 더듬어 기억해 소통했었다. 우리 집에만 잔뜩 쌓여있는 사진으로 증명하는 엄마의 어떠한 매니악한 면모는 이모들 사이에서도 하나의 이슈일까 궁금하다.
오늘 사진들을 보며 오빠와 내가 그래도 사랑을 잘 받고 자랐다 느낀다. 사진에서 느껴지는 표정과 포옹 모든 것이 너무나 따듯하다.
나에게 옛날 사진을 묻던 친척 오빠는 집에 사진이 전혀 없다며 너에게 있으면 보내달라 카톡이 온 적이 있었는데 종종 사진 정리 중 발견하는 그의 누나 이모, 어린 그의 사진 등을 찍어 보내주곤 했었다. 이런 사진이 있구나! 라며 놀라워했었다.
내성적이고 친가 외가의 만년 막내라 평생 깍두기로만 살아왔는데 이런 것들을 물으니 흥미롭다.
열심히 사진들을 보다 지쳐서 옆으로 밀어두었다. 내가 미성숙하게 엄마에게 의존하는 만큼 엄마도 나에게 의존 중이라 느껴진다.
천하대장군 지하여장군!
부산 여행 후 돌아오는 길 안동 하회마을도 갔었는데 이런 사진이 있었는지 알았다면 이번엔 지하여장군 앞에서 만세하고 사진을 남겨왔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