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3.26
이치코상에게
안녕. 많은 사람이 오고 갔어. 아마 이게 첫 편지는 아닐 거야.
주말에는 배를 타며 에이미 만의 노래를 들어. 시티로 나가는 지하철이 주말에는 운행을 안 하거든. 헌터스포인트부터 맨해튼 이스트 34가까지는 배로 4분밖에 안 걸려. 4분에 4달러. 에이미 만의 보컬은 뉴욕 그 자체야. 건조한데 축축하고, 로맨틱한데 서글퍼. 장식 없이 마음을 식탁 위에 올려둔 헤어진 연인 같아. 특히 항구에서 보이는 경치는 갈색의 뉴욕인데, 그 풍경과 목소리가 조화로워. 맨해튼의 건물들은 파란색과 갈색으로 나뉘어. 파란색은 우리가 아는, 그 창문 많은 모던 빌딩. 갈색은 좀 더 옛날에 지어져 아직 자리를 지키고 있는 벽돌로 지어진 건물들. 나는 후자를 좀 더 좋아해. 영화 <시네도키,뉴욕> 포스터가 떠오르거든. 쓸쓸하고 아기자기한.
어떤 장소에서 그곳과 딱 알맞은 노래를 들었을 때의 쾌감은… 정말 좋아. 내 표현이 생각보다 심플했다면, 그건 아마 내가 요즘 노력하고 있는 게 있어서일 거야. 가득했다 등의 양 늘리기 표현 금지. 한동안은 정확한 숫자대로만 쓰기. 셀 수 없었다 말고 세어보지 않았다. 일기에 써놓은 내 다짐이야. 있는 그대로 말하기. 뭐든지 가만히 앉아서 열심히 세어보면 셀 수 있어. 입버릇처럼 일상을 과장하고 살아왔어. 제일 중요한 것은 하나뿐인데 거기까지 가는 데 너무 오래 걸려. 딱 한 개만큼의 표현만 하고 살래.
미술관에서 토마토수프를 먹었어. 빵 두 조각이 함께 나와서 수프에 찍어 먹었는데 정말 맛있었어. 휘트니 미술관에 온다면 꼭 1층 카페에서 토마토수프를 먹어봐. 이치코상이 방울토마토를 좋아했던 걸 기억해. 늘 캔맥주와 방울토마토를 함께 먹었지. 그때 이치코상이 한 말이 정말 웃겼는데, “난 입술에 남는 캔 맛이 싫어서 맥주를 꼭 컵에 따라 마시는데, 맥주랑 방울토마토를 함께 먹으면 입 안 전체에 캔 맛이 느껴져.” 그런데도 왜 그렇게 먹는 거야? 그때도 지금도 나는 도통 이해할 수가 없어.
미술관에서 본 찌그러진 복숭아 그림이 계속 맴돌아. 이치코상이 보기엔 어때? 복숭아가 맞는 것 같아? 나는 한참을 그림 앞에 앉아 있었어. 크기가 큰 그림이 예술적 가치가 더 크다는 말을 드디어 이해해. 압도당하는 느낌이 좀 있어. 어쩌면 우리는 모두 거인이 되고 싶어 하는 것일지도 몰라. 더 큰 사람, 더 커다란 세상. <친절한 금자씨>에서 그런 대사 있잖아. 예뻐야 해. 뭐든지 예쁜 게 좋아. ‘예쁘다’가 ‘커다랗다’로 치환될 수 있을 것 같아. 커야 해. 뭐든지 큰 게 더 좋아. 나는 내가 너무 조그마해서 슬퍼. 그래도 이치코상은 나보다 좀 더 큰 것 같아. 과즙이 터지는 저런 붓 터치는 강인해 보여. 무서운 마음을 조그맣게 만들고 두려운 마음도 사이즈를 줄인 다음, 더 커다랗고 넓은 동작으로 몸부림쳐. 한결 씩씩해진 기분이 들어. 우린 계속해서 우리의 세상을 크게 만들려고 노력하며 살 수밖에 없어.
원인을 알 수 없는 두통이 계속돼. 거기는 좀 어때? 이치코상은 늘 편히 자고 싶어 했잖아. 요즘은 좀 잘자?
계속 쓸게. 매일 밤 잘 자길 바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