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uerkraut
남의 집 냉장고 안이 궁금했던 적, 있지 않나요?
잼은 뭘 쓰는지, 케첩은 꼭 하인즈인지, 혹시 김치가 자리하고 있는지... 저는 이상할 만큼 그런 게 궁금합니다.
우리 집 냉장고를 소개하자면, 전형적인 유럽 가정처럼 작고 아담한 사이즈이지만 그 안에도 나름의 규칙이 있습니다. 유독 신맛이 도는 절임류만 모아 둔 맨 윗칸엔 투명한 병들 속 생강초절임, 피클, 매운 고추, 미니 양파, 그리고 언제나 빠지지 않는 자우어크라우트까지. 병들 사이사이 색이 다채로워, 그 칸을 열 때마다 기분이 묘하게 좋아지는 구간이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병 밑바닥이 보이면 불안해지는 단골이 하나 있는대 그건 바로 Sauerkraut, 독일과 중부 유럽의 발효 양배추입니다. 시큼하고 쿰쿰한 향이 매력인 이 재료는, 기름진 고기 요리 곁에서 맛의 균형을 잡아주는 조용한 조연입니다. 직접 담그기보다는, 저는 마트에서 사 온 제품을 사과주스와 매운 고추를 더해 조리해서 먹습니다. 이게 훨씬 간편하고, 다양한 제품을 시험해 보는 재미도 쏠쏠하거든요. 때로는 김치가 없는 날 혹은 수출용 김치가 너무 달게 느껴질 때, 이 시큼한 절임이 잠시 자리를 대신해 주곤 합니다. 이 자우어크라우트가 묘하게 한국 음식의 밑맛을 채워주는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처음 자우어크라우트를 맛본 건 뮌헨의 호프브로이하우스(Hofbräuhaus München)에서였습니다. 옆 테이블의 맥주잔이 쨍 부딪히던 소리와 함께, 학센 아래 깔린 자우어크라우트를 한입 먹었는데 기름진 고기와 시큼한 채소의 조화가 이상하게 마음에 들었습니다. 입안의 밸런스를 맞춰주는 그 조용한 조연이, 이후 내내 제 냉장고 속에서 자리를 지키게 된 거죠.
저는 주로 돼지고기나 독일 소시지와 자우어크라우트를 함께 볶다가 고춧가루를 넣고, 시큼한 맛을 잡기 위해 설탕을 추가해 끓여 페이크 김치찌개를 먹거나 (이것도 꽤 재밌는 이야기이기에 다음 기회에 글을 써 보록 하겠습니다.), 사과주스를 조금 넣고 볶은 자우어크라우트를 라클렛 치즈와 함께 먹는 그릴 샌드위치로도 먹곤 합니다. 또한 저는 사과주스를 살짝 넣어 볶은 자우어크라우트를 김밥 재료로 활용하는데, 단무지보단 약하긴 하지만, 피클의 역할을 그럴듯하게 해 주기도 합니다. 그중에서 제가 즐겨 먹는 것은 자우어크라우트 볶음밥입니다.
신맛이 강한 음식을 좋아하는 저는 이 메뉴를 일주일에 두세 번 해먹을 정도로 좋아합니다. 그러나 이 시큼한 조연 재료를 한입 먹어보면, 시큼함이 대부분이고, 씹으면 느낄 수 있는 아주 조금의 달큼함, 쿰쿰한 김치냄새는 나지만 김치의 깊은 맛은 없는 그런 맛입니다. 그래서 저는 자우어크라우트의 부족한 깊은 맛을 채우기 위해 Speck Würfel(소금에 절인 베이컨을 작은 네모 조각으로 자른 것), 간장, 파마산 치즈, 버터를 이용합니다.
가공육과 버터로 볶아낸 그 위에 자우어크라우틀 넣고 고춧가루로 약간의 얼큰함을 더하고, 설탕으로 시큼한 맛을 살짝 눌러주고, 간장으로 간을 더한 뒤 찬밥을 넣어 볶은 그 위에 버터, 파마산 치즈까지 넣으면 그 고소하고 시큼한 맛의 밸런스가 완벽한 볶음밥이 완성됩니다. 이게 끝입니다. 글로 휘리릭 써버릴 수 있을 정도로 쉬운 이 볶음밥은 해외에 살아가는 저를 나타낸다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이런 자우어크라우트와 같이 저만의 한식을 위한 유럽식 재료 활용법을 얘기할 때마다 저는 그것이 단순히 음식을 넘어서, 저와 같은 이방인에게는 문화적인 의미가 있지 않나 싶습니다. 그 발효된 맛이 이국적인 재료를 다루는 동안에도, 그 안에 나만의 정체성을 찾을 수 있는 경험이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이방인으로서 살아가며 현실과 어느 정도 타협하며 살아가는 맛. 나만의 방식으로 섞어버려 익숙하지 않지만 나를 안심시키는 맛.
“볶음밥 한 그릇에 무슨 거창한 의미를 담느냐”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릇 위에 자기만의 삶과 기억, 정체성을 담아낸다고 저는 믿습니다. 그래서 이런 이야기를 계속 써나가 보려 합니다.
가벼운 듯 깊고, 소박한 듯 진지한 음식의 기록들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