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 <안드레아 셰니에>
" 아~ 왜 리허설에 절여져서 쭈글쭈글하게 출근하는 날은 하늘이 이렇게 맑고 예쁘냐고~ "
공연 2주 전, 극장의 모든 스태프 들은 Ten to Ten (오전 10시부터 저녁 10시까지)의 극악의 스케줄을 달리며 *테크리허설과 **드레스리허설을 거친다. 괜스레 길가의 돌들을 툭-툭 차며 극장으로 출근한다. 평소에는 마음에 드는 치마나 멋들어진 코트를 입고 출근하겠지만, 이 기간에는 다 사치다. 검은색 상의와 검은색 바지, 그리고 검은색 운동화를 신고 파랗게 맑은 하늘을 가르며 극장으로 향한다. 극장 앞 카페에서 빅사이즈 커피를 사는 건 필수 코스!
(카드를 찍고 문을 여는 소리) "안녕하세요~"
"아유 의상팀이 제일 먼저 오네~"
"ㅎㅎㅎ그렇죠 뭐~ 211호부터 219호까지 열쇠 주세요~" (장부에 이름을 적으며)
의상실에 도착하자마자 앞치마와 작업가방을 둘러매고 열쇠들을 한 움큼 챙겨 내 담당 파트인 여성무용수의 방으로 짤랑짤랑 가서 잠긴 문을 열고 불을 켠다.
이번에 하는 오페라 의상은 의상이라기엔 갑옷 같고-갑옷이라기엔 드레스 같은 게, 정말 독특했다.
일반적인 원단이 아닌 매우 단단하고 두꺼운 원단 위에 페인트로 거친 작화까지 되어있는 드레스인데, 시대고증은 제대로 되어있어서-상의는 가죽끈으로 연결되어 있는 코르셋 형태에다가 단단한 ***파니에로 골격이 잡혀있는, 앞뒤로는 볼륨이 없지만 좌우 가로길이가 180cm가 넘는 길이의 드레스 스커트. 거기에 화룡점정으로 모든 출연진은 얼굴과 노출되는 팔에 하얗디 하얀 분칠을 해야만 하는 메이크업 디자인까지. 나는 크루와 함께 치마를 복도에 넓게 펼치며 코르셋과 짝을 맞춰 놓고, 의상이 망가진 곳이 없는지 확인한다. 그 사이에 한 명씩 출근하는 무용수들과 반갑게 인사한다. 체크가 끝난 치마를 펄럭펄럭 정리하며 크루와 수다를 떤다.
"도대체 연출가는 무슨 생각이시래..?"
"그거 들었어? 이탈리아 연출가인데, 무대, 조명, 의상에 안무까지 혼자서 다 한대."
"헤에엑? 말도 안 돼요...! 그걸 혼자서 어떻게 해..????"
"그니까...! 그걸 다 해야 하는 거면 잠은 잘 수 있는 걸까...?"
"그러니까요...! 진짜 대단하다.... 아! 45분 전이다! 언니들~ 의상 입기 시작할게요~"
등장 45분 전. 8명의 무용수들은 한 명씩 각오를 다지며(?) 드레스를 입는다. 의상을 입은 후에 몸에 분까지 칠하고 나면, 화장실도 가지 못하고 의자에도 앉지 못한 채로 서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낑낑 거리며 치마를 입히고 코르셋을 열심히 당기고 있을 때, 시끌시끌한 목소리가 복도를 타고 울리다가 누군가 방문 앞에 우뚝 선다. 고개를 들어 바라보니-구불구불한 갈색 파마머리가 인상적인-아 저 사람... 연출가다. 싶은 생각이 바로 드는 아우라의 '스테파노 포다'가 모습을 드러낸다. 그는 손짓을 사용해 가며 열정적으로 무언가를 설명한다. 그의 옆에는 통역가가 서 있기는 하지만, 충분히 그가 원하는 게 뭔지 알 것 같다.
"MORE!!! MORE!!!"
코르셋을 더 조이라고? 미친놈인가?
'안 그래도 허리가 한 줌인데 지금 무용수 얼굴이 새파래지는 게 보이지도 않니?'라고 목 끝까지 올라왔지만, 나는 일개 크루인 걸... 연출가가 하라면 해야지....
"O... Okay...."
앞에 힘겹게 서있는 무용수의 귓가에 조용히 이야기한다.
"(조용히) 진짜 미안해요. 조금만 버텨요..!"
"으그그긁...!!!"
힘껏 가죽끈을 당기면서 무용수의 어깨너머로 포다의 눈치를 슬쩍 본다. 며칠 째 가죽 끈을 당기다 보니 손가락이 모두 까져 밴드를 칭칭 감은 탓에 미끌거리는 내 손은 가죽끈을 빙빙 돌려 감아 더 꽉 쥐어 본다. '이러다 내가 허리를 두 동강 내버릴 수 있을 것 같아'라고 생각하며 거의 울상이 될 때 즈음, 그는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GREAT!"이라며 따봉을 날려주고는 다음 방으로 넘어간다.
"(억지 미소 지으며) Bye...^^....(눈치를 살피며) 갔지..? 완벽하게 갔지..? 다시 안 오겠지...?
그레잇은 개뿔 그레잇이야!!! 어유 미안해요 언니 잘 버텼어...!! 저 사람 진짜 개또라이 아니야?!?!!??"
"(숨을 헐떡이며) 나... 진짜..... 죽을 뻔했어..!!!"
후다닥 끈을 풀어서 코르셋을 늘려주고, 무용수는 휘청거리면서 눈물을 글썽거린다. 새하얘진 얼굴에 조금 핏기가 돈다. 그렇게 차례대로 화이팅을 외치며 의상을 입히는 게 끝을 보일 즈음, 페이징이 울려 퍼진다.
"ACTOR, DANCER, STANDBY PLEASE." (연기자, 무용수, 등장 준비 해주세요)
무용수들은 조심조심 뒤뚱뒤뚱 게걸음 스텝으로 문을 통과해 무대로 향한다. 치마폭이 어찌나 넓으면 복도마저도 종종걸음으로 한 줄로 이동한다. 그 모습이 귀엽고 우스워 다 같이 꺄르르 웃으면서 사진을 찰칵찰칵 찍어본다.
그렇게 간신히 무대로 이동하여 스탠바이를 하고, 무용수들 주변을 돌며 한번 더 상의 코르셋이 조여서 불편하거나 너무 느슨한 지 않은 지 확인한다. 그리고 드디어 시작되는 첫 번째 전체 리허설. 문득 무대의 모습이 궁금해 소대 ****다리막 사이로 보이는 무대를 바라보았다.
거대한 광장을 옮겨놓은 듯한 거대한 흰색 계단이 펼쳐진 무대 위에 합창단과 연기자, 그리고 무용수들까지 자리를 잡은 뒤 조명이 환하게 밝아지고 함께 춤추기 시작하는 순간, 아, 말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이건, 진짜... 예술이다.'라는 감탄이,
'예술가들은 소시오패스가 맞네'라는 확신이,
이 예술을 실현한 스테파노 포다에 대한 존경심이,
뒤이어 뱃속 깊은 곳에서 질투심이 솟아올라와 속이 울렁거리고 따끔거렸다.
*테크리허설 : 무대 위 기술 요소(음향·조명·무대 전환)와 배우 동선을 함께 점검하는 기술 총연습
**드레스리허설 : 실제 공연과 똑같이 진행되는 최종 연습
***파니에 :
[프랑스어]paniers à coudes
1720년대 후반 프랑스에서 사용한, 옆으로 넓고 앞뒤가 좁은 스커트 속 지지대. 여기에 팔꿈치를 걸치는 데서 유래한 이름이다. (네이버 국어사전)
**** 다리막 : 무대 옆면을 가리기 위하여 수직으로 내려뜨린 막 (국립국어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