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화장실 가고 싶어!!
장엄하고 웅장한 1막 마지막 노래가 끝나면, 안내방송과 함께 자리에서 일어나 뻐근한 무릎과 허리를 젖히며 '으그극' 일어나서 1막의 좋았던 부분을 다시 떠올리거나 감상을 나눌 것이다.
"그 장면 뭐냐고!! 와 미쳤다 진짜."
" 아 그때 00 봤어? 와 몸 개 잘 써. 노래도...(이마를 짚으며) 와 찢었다. 진짜."
<미쳤다/ 찢었다/ 진짜> 로 가득한 문장들은 무대에서 불태운 배우들을 표현하기엔 부족하지만, 다른 말이 안 떠오르는걸....? 나도 무대 뒤에서 일하는 사람이지만, 객석에서 보는 건 정말 즐거운 일이다. 티켓 값이 비싸서 그렇지. 쳇...
그-런-데-! 그렇게 한숨 돌리며 물도 마시고, 화장실도 다녀오는 꿀 같은 20분의 인터미션 동안, 무대 뒤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날까? 그야말로 전쟁이다.
인터미션이 시작되면 거의 모든 배우들이 2막 의상으로 갈아입는다. 그중 1막에 입었던 의상을 다시 입어야 하는 경우도 있는데, 무대 위에서 혼신의 힘을 다해 뛰고 구르고 하는 동안 의상이 곱게 있을 리 만무하다.
"(다급하게 달려오며) 선생님 선생님!!!! 저 여기 여기..!! 이거 묻었어요!!ㅠㅠㅠ"
"히에에ㅔㅇ에엑 이게 뭐예요?!?!!?"
"(여자주인공 이름) 립스틱...."
"거의 가슴팍에 얼굴이 있는데 이 정도면..? 일단 벗어보고.. 가서 2막 의상 입고 있어요."
"(훌렁 셔츠를 벗으며) 감사합니당..!"
복도에서 상의를 모두 벗어버리는 건 익숙한 일상이다. (바지도 훌렁훌렁 벗어버리는걸...)
재빨리 받아 든 셔츠의 상태를 확인한다. 상대 배우를 격하게 껴안아서 어깨나 가슴팍에 파우더와 립스틱이 왕창 찍혀버린 대참사에 머리가 지끈지끈 거리지만, 나에겐 시간이 없다. 셔츠는 1장뿐이라고!! 다시 입어야 하는 타이밍을 생각해서 어느 정도의 여유가 있는지 머릿속으로 빠르게 계산을 때려본다.
의상 전체를 적셔버리면 돌이킬 수 없으니 물티슈에 빨랫비누를 살짝 묻혀 빛의 속도로 비벼 닦아내거나 부분빨래만 하고, 흐르는 물에 조물조물 주물러 비눗물을 헹구고 수건으로 물기를 두드려 없앤 뒤에, 다시 입기까지 시간 여유가 있다면 간이 건조기에 넣어두지만, 여의치 않은 경우에는 드라이기로 말리거나 뜨거운 판다리미로 지져서 수분을 날려버린다.
이런 세탁과 건조의 전쟁이 있는 반면, 바느질의 전쟁이 일어나기도 한다.
2막을 여는 멋진 아이보리색 수트 였는데, 여러 명의 배우가 하나의 의상을 공유하는 '셰어(Share) 의상'이었다. 배우마다 바지 기장이 차이가 있기 때문에 매일매일 캐스트를 확인하고 손바느질로 바지 밑단 길이 조절을 해야 하는 고난도(?) 바지였다. 그런데 문제는 그날, 낮-저녁 캐스트가 다르다는 걸 인터미션이 끝나갈 때쯤 깨달았다는 것.
"잠깐만.... 우리 낮-저녁 캐스트 다르잖아?!?!?!?!??! 바지 밑단 조절 안 했지?!?!?"
"헐 맞아요!!!!! 아 망했다!!!!"
바느질을 안 하고 그냥 입히기엔 배우의 다리가 짧아서...(미안해요)
긴 밑단이 쭈글거리는 바지를 입히는 건 두고 볼 수 없었던 나와 동료 언니는 바닥에 주저앉아 바지 다리 한쪽씩을 붙잡고 쪽가위로 뜯은 뒤에 손바느질을 하기 시작했다. 맞춰야 하는 기장은 눈에 띄는 색깔의 실로 아주 작게 표시를 해 놓았기 때문에 바로 찾을 수 있다.
"몇 분 남았니??!!"
"언니 3분 남았어요!! 할 수 있어!!!"
"(흔들리는 목소리로) 선생님들...? 저 바지 입을 수 있어요....?"
"(동시에 같이) 있어요!!! 할 수 있어!!!!!!"
<<공연시작 2분 전입니다>>
"(동시에) 으아아아아!!!!!!ㅠㅠㅠㅠㅠ"
다행히도 배우는 무사히 예쁜 기장의 바지를 입고 2막을 나갈 수 있었다.
<< (2막) 공연 시작합니다, 공연 시작합니다 >>
하.... 화장실 가고 싶다..... 근데 2막 큐 하러 가야 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