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대 졸업생의 첫 사회생활

이 글은 법학과 졸업생의 첫 취업 경험

by 팀클 세라

그토록 원하던 교사의 길과는 달리, 나는 법학을 전공한 뒤 금융계에 취업했다.

참고로 내가 대학을 다닐 당시, 법학과 학생들의 대부분은 사법고시에 도전했다. 그러나 현실은 냉혹했다. 합격률은 말 그대로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는 것보다 어려운’ 수준이었다. 학교마다 차이는 있지만, 매년 사법시험에 합격하는 비율은 전체의 2~3%에도 못 미쳤다.


현재는 제도가 바뀌어, 대학에서 4년간 학사 과정을 마친 후, 로스쿨(법학전문대학원)에서 3년간의 석사 과정을 이수해야만 변호사 시험에 응시할 수 있다고 한다. 법조계 진출을 꿈꾼다면 이 점을 충분히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법학을 전공하고 학사 학위만으로 기업에 취업할 경우, 보통은 채권 관리, 법무팀, 또는 소송 관련 부서에서 일하게 된다.


나의 경우, 졸업 후 첫 직장으로 채권관리팀에 배치되어, 회사를 대표해 소송을 수행하는 업무를 맡았다.

소송 대리 업무는 생각보다 간단했다. 매일 오전과 오후, 정해진 소송 기일에 맞춰 서울 시내와 수도권의 법원에 출석했다. 대부분의 사건은 민사소송으로, 채권자인 회사의 입장에서 소송을 진행했기 때문에, 무난하게 승소 판결을 받는 경우가 많았다.


승소 판결이 나면, 그 판결문을 바탕으로 미리 압류해 두었던 채무자의 재산에 대해 집행 권한이 주어진다. 특수채권 부서에서는 장기 연체자의 부동산이나 유체동산을 경매에 부쳐, 끝까지 채권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한다.


소송 업무는 전반적으로 단조롭고 수월한 편이었지만, 피고 측에서 이의 신청서나 답변서를 제출하기 시작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그때부터는 온갖 증거 자료를 수집하고, 법적 근거를 토대로 준비서면을 작성해야 한다.


상대방의 주장이 허위임을 100% 서류로 입증해야 했기 때문에, 관련 법률 문서를 조목조목 작성하고, 각종 증빙 자료를 빠짐없이 첨부하며 반박 논리를 구성했다. 그 과정은 철저한 논리와 치밀함을 요구했고, 예상보다 많은 에너지를 소모했다.


그런데 생각보다 나는 이러한 법률적이고 논리적인 글쓰기를 꽤 잘 해냈다. 과장님과 부장님께 결재를 받으러 갈 때마다, 그분들은 흐뭇한 미소와 함께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다.

어려운 다툼 사건에서 판사로부터 승소 판결을 받을 때면 짜릿한 쾌감도 있었다. 문제는 법정 밖이었다.


50~60대쯤 되어 보이는 피고 측 사람들은 20대 초반의 나를 상대로 욕설을 퍼붓거나, 심지어 개인적으로 협박하는 일도 종종 있었다. 혹시라도 해를 입을까 두려워, 그들을 피해 숨어 다니는 날도 많았다.


그런 와중에도 나는 새벽마다 빠짐없이 영어학원에 나갔고, 퇴근 후에는 독서실에 들러 민법과 민사소송법을 공부하며 더 나은 준비서면과 답변서를 쓰기 위해 노력했다.

어느 순간 나는 서류로 끊임없이 상대와 싸우는 ‘싸움닭’이 되어 있었다. 누군가 “판사, 검사, 변호사 같은 직업은 평생 싸움만 보게 되고, 의사는 아픈 사람만 보기 때문에 그리 행복한 직업이 아닐 수도 있다”는 말을 했던 게 문득 떠올랐다.


나의 직업은 늘 ‘싸움’ 그 자체였다. 분쟁이 생기면 반드시 이겨야 했고, 내 능력을 인정받기 위해서라도 소송이 시작되면 어떤 사건이든 무조건 이기겠다는 냉정한 오기를 부리곤 했다.

그렇게 나는 점점 정서적으로 피폐해져 갔다. 그리고 마침내, 이 일을 그만두기로 결심하게 만든 사건이 있었다. 지금도 잊을 수 없는 마지막 소송이었다.


한 남성이 자신의 아버지 명의로 카드를 도용해 수천만 원을 사용한 사건이었다. 사실 이런 사건은 참 많다. 그때 시골 법정에 처음 출석한 연로한 아버지는 휠체어를 타고 나오셔서 “나는 그런 사실을 전혀 모른다”라고 진술하셨다. 물론 나도 알고 있었다. 아들이 아버지 명의로 카드를 발급받아 무분별하게 사용한 명백한 도용일 것이라는 것을. 피고 쪽의 할아버지는 빼짝 마른 체격에 병환이 짙어서 거동도 많이 힘들어 보이셨다. 회사는 그분 명의로 되어 있는 많지도 않은 전세자금을 이미 가압류해 놓은 상태였다.


하지만 카드회사의 소송대리인인 나는 피고인의 ‘묵시적 동의’라는 논리를 내세우며, 만약 명의 도용이 사실이라면 아버지가 아들을 사기죄로 형사 고소해야 한다고 강하게 밀어붙였다. 이건 사실 내가 많이 썼던 소송사건의 논리 중 하나였다.


대부분의 가족들은 혈연을 형사고소까지 하지는 못한다. 그래서 이런 경우, 법원은 원고 측의 주장을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았다. 나는 이 할아버지에게도 어쩔 수 없이 그 논리를 들이대야 했고, 결국 승소 판결을 받았다. 내가 받은 이 승소 판결문이 처음으로 부끄럽게 느껴졌다.


법정을 나와서 뭔지 모를 미안함과 죄책감에 그냥 한참을 울었다. 이제는 정말, 회사를 대신한 이런 비인간적인 일을 그만하고 싶다는 생각이 깊이 들었다.

사실 나는 이미 그 무렵, 이직준비를 조용히 해오고 있었다. 서류와 면접을 통과하며 외국계 회사로의 자리가 확정되자마자, 더는 미련 없이 사표를 제출했다.


법정을 나와 사표를 냈을 때, 나는 다시는 그 싸움의 세계로 돌아가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그리고 곧장 외국계 기업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 회사는 아이들에게 꿈과 상상력을 심어주는 일을 하는 따뜻한 브랜드였지만,
정작 나는 내 안의 꿈을 하나씩 지워가고 있었다.

언젠가 아이들 곁에서 이름을 불러주며, 하루를 함께 보내고 싶다는
그 오래된 꿈. '교사'라는 이름은 현실 속에서 점점 멀어졌다.

사실 나는 그때 이미, ‘현실적인 커리어’를 쌓는 데 익숙해졌고, ‘될 수 있는 일’에 집중하느라
‘되고 싶었던 사람’은 애써 외면하고 있었다. 꿈을 잊었다기보다는, 잊은 척하며 살았다.


그리고...


#법학과졸업 #소송업무 #민사소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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