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 준비를 할 때 가장 괴로웠던 건 자기소개서를 쓰는 일이었다. 특히, 힘들었던 일을 극복한 경험에 대한 질문이 가장 곤란했다. 특별히 고난이 없었기 때문이다. 무릇 자기소개서라 하면 '이렇게 대단한 경험을 한 나를 뽑지 않으면 삼대가 땅을 치고 후회하리'와 같은 기개를 담아야 할 것만 같았는데 내 인생은 이리 보나 저리 보나 무난하고 심심했다. 그렇다고 소설을 써낼 정도로 뻔뻔하지도 못했다. 모래를 체에 거르고 걸러 고작 금 부스러기 몇 톨을 건지듯, 인생을 통째로 참빗 빗듯이 빗어보고 나서야 겨우 몇 가지 조그만 에피소드를 발굴해 낼 수 있었다. 그 작은 경험들을 최대한 있어 보이는 말로 포장했다.
다른 사람들은 IMF 때 집안이 망하거나, 여름에 바다에 빠져 죽을 뻔하거나, 오토바이를 타다가 크게 교통사고가 나서 얼굴을 전부 갈아엎는 등의 경험을 잘도 하던데, 이 모든 일을 다 겪은 내 남편 같은 사람도 있던데, 나는 지금까지 살면서 드라마틱한 역경이나 고난이 없었다. 복 많은 삶이었다. 다섯 식구가 서로 사이가 나쁘지 않았고, 물질적으로도 크게 부족하지 않았다. 아버지 직업 덕분에 어린 시절의 대부분은 해외에서 보냈다. 크게 보면 누구나 부러워할 만한 경험이었지만 실제 하루하루는 집과 학교만 시계추처럼 오갔고, 할 만한 이야기가 별로 없었다. 별일 없이 흘러간 평탄한 삶이 때로는 아쉽기도 했다. 배부른 소리인 건 알지만, 이야기가 빈약한 스스로가 재미없는 사람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물론 내게도 자잘하게는 힘든 경험들이 있었다. 어려서는 국제 이사를 여러 번 다녀, 적응할 만하면 전학이었다. 낯을 가리는 탓에 쉽지는 않았을 텐데, 너무 어렸을 때라 기억은 잘 나지 않는다. 학창 시절에도 좀 겉돌았다. 잘나가는 아이들과 어울렸지만, 무리 중 진짜 속내를 나눌 수 있는 친구는 몇 없었다. 나를 뺀 나머지 애들끼리는 밤새 전화로 수다를 떨기도 한다는 걸 알고 상처받았던 적도 있다. 그런가 하면 고등학교 3학년 때는 약 1년 정도 집착이 심한 남자 친구를 만나 괴로웠다. 지나고 보니 데이트 폭력이었고 가스라이팅이었던 그 관계를 벗어난 후에도 5년쯤 연애를 못 했다. 나름 상처가 깊었지만, 그 후 다른 사람을 만나면서 점차 괜찮아졌다. 고난이라고 해봐야 이 정도의 것들이었다. 시간이 해결해 주는 종류의 것들. 내 고통은 남들에 비해 크지도 않고, 이야깃거리도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자기소개서를 쓰는 과정이 유독 힘들었다. 해놓은 것도 없고 내세울 이야기도 없는 내 인생이 너무 사소하고 초라해 보였다. 기업에서 나를 어떻게 평가할지 생각하며 내 과거를 샅샅이 파헤칠수록, 흔히 말하는 "객관적인 평가의 잣대"를 들이댈수록 우울해졌고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만 같은 두려움이 커졌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수업에서 교수님의 말씀을 듣고 학교 상담센터를 찾아갔다. 전에는 그런 곳이 있는지도 몰랐었다. 전문적인 상담을 받으면 막연하게 힘든 마음에 도움이 될 것 같았다. 정작 정해진 네 번의 세션을 하는 동안 나는 우느라고 단 한 번도 내 얘기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 마지막 상담 날, 상담 선생님은 말을 해야 돕죠, 라며 지친 표정으로 학교와 연계된 정신과를 추천해 주었다. 힘들면 가서 처방을 받아 보라고 했다.
그 정신과에 가지는 않았다. 조금 무서웠고, 귀찮았고, 돈도 없었다. 늘 그랬듯 내 아픔을 모른 척하고 시간이 해결해 주길 기다렸다. 다행스럽게 얼마 지나지 않아 취업에 성공했고, 그 즈음 연애도 다시 시작했다. 스스로를 부정하고 혐오하던 시기를 그렇게 천천히 흘려보냈다.
이제 와 생각해 보니, 어쩌면 역경이 없다고 굳게 믿었던 게 내 인생의 가장 집요한 역경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살면서 어려움을 마주할 때마다 나는 '상대적으로, 넓게 보면, 길게 보면 지금 이 일은 별거 아냐', 하는 식으로 넘어가곤 했었다. 그렇게 묻고 지나가는 게 어른스럽게 잘 극복하는 방법이라고 믿었다. 실은 내 마음에 계속해서 종이에 베이는 것 같은 미세한 생채기를 내고 있었다는걸, 이제야 어렴풋이 깨닫는다. 역경이란 폭발적인 사건이 아니라, 상처 입은 감정의 퇴적일 수도 있다는 것을. 나의 힘듦을 별것 아닌 것으로 치부하고 깎아내리는 습관은 여전히 남아 있다. 그래도 이제는, 내게 그런 습관이 있다는 걸 안다. 앞으로는 내 감정을 조금 더 솔직하게 바라보고 인정하려 한다. 힘들면 충분히 힘들어해도 괜찮다고, 그렇게 스스로에게 허락하는 연습을 천천히 해나가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