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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꽁초의 쓸모

1958

by 사일영 Mar 14. 2025

우리 할아버지는 소백산 아래 작은 산촌마을에서 태어나 지금까지 살고 계신다. 물좋고 공기 좋기로 소문난 이 지역은 지금은 많은 사람들이 자연과 레저를 즐기러 가는 곳이지만 할아버지가 젊은 시절엔 그렇게 여유로운 사회분위기는 아니었다.

그 시절엔 한국의 어디든 안 그랬냐만은.


우리 할아버지는 1958년, 전쟁이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아 만 20세에 입대를 하게 되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굶주리고 전쟁 직후의 폐허가 된 땅에서 억지로 살던 때였다.


전쟁이 끝나 죄다 가난하고 배고픈 때였지만 그래도 군대는 먹는 사정이 민간보다는 나았다. 아직은 완전한 평화가 이루어지지 않은 때라 군대에 대한 지원은 나쁘지 않았던 덕분이었다. 군대에 가면 보리가 섞인 쌀밥이 매끼니 나왔고, 소가 목욕하고 지나간 수준이었지만 그래도 고깃국이 나오기도 했다.


그 당시 군대에서는 보름에 한번 한보루씩 담배를 보급해주었다. 민간에서는 구하기 힘든 담배를 군대에서는 보급품으로 분류해 병사들에게 나누어주었던 것이다.


할아버지는 비흡연자라 담배를 피우지 않았지만 그때 대부분의 병사들은 담배를 즐겨피웠다. 담배가 보급되면, 병사들은 풍족한 담배사정에 흥청망청 담배를 피워제꼈다.


병사들은 담배를 보급받은 첫 며칠동안은 부자가 된 기분으로 마구 피우다가 아깝지도 않은 지 길게 남은 장초를 버리는 것이 다반사였다. 할아버지는 병사들이 그렇게 하는 걸 가만히 지켜보다가 어느 날부터는 병사들이 피우다 땅에 버린 장초들 위주로 담배꽁초들을 주워모아 숨겨두었다.


일주일쯤 지나면 병사들의 담배 사정이 급격하게 나빠졌다. 두둑한 담배양 덕에 아껴피우지 않고 막 피우고 얼마 피우지도 않고 막 버리고 한 탓이었다.


그렇게 담배 받은 지 한참 지나가는 날 중 하루는, 할아버지의 친한 동기가 옆에서 담배 고프다며 투덜거리고 있었다. 할아버지는 슬쩍 눈치를 보다 그에게 자기가 가지고 있던 길쭉한 꽁초 하나를 내밀었다. 동기는 이미 담배가 다 떨어진 상태였기 때문에 깜짝 놀라 허겁지겁 받아들어 피우기 시작했다.


가끔씩 친한 인물들에게 담배꽁초들을 선심쓰며 할아버지가 한 말은 하나였다.


-나한테 받았다고 하지마라.


신신당부를 했지만 그래도 꼴초들은 담배냄새를 기가막히게 맡는 법이었다. 그게 진짜 담배냄새가 아닌 그냥 누군가가 담배를 가지고 있다는 소문의 냄새일지라도.


분명히 본인에게 받았다고 말하지 말라고 했는데 어떻게 알았는지 할아버지에게 몰래 찾아와 담배꽁초 좀 달라며 사정사정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이제 작업나가야되는데 담배가 필요하다며 부탁을 해왔다.


없다고 말해도 이놈들은 기가 막히게 담배냄새를 맡고 달라고 떼를 썼다. 할아버지는 처음엔 본인 대신 청소를 시키고 그 대가로 담배 꽁초를 선심쓰듯 하나씩 줬다.


그러면 또 어찌나 열심히 청소를 하던지. 할아버지는 바닥이 광이 나도록 청소하는 꼴초에게 그렇게까지 안해도 된다고 만류했다. 하지만 그는 번쩍번쩍한 바닥으로 그의 충성심을 보이곤 했다. 앞으로도 본인을 자주 이용해달라는 의미였다.



나중엔 돈까지 주면서 담배를 팔아달라고 사정하는 사람들까지 나왔다. 다시 담배를 보급되기 전날과 전전날에는 그게 아주 심했다.


그러면 할아버지는 못 이기는 척 담배꽁초를 팔았다. 푼돈에 팔긴 했지만 군대에서 그렇게나마 돈 벌 일이 뭐가 있을까. 할아버지는 그걸로 용돈벌이를 했다.


할아버지는 담배를 피우지 않았기 때문에 본인이 받은 담배는 고스란히 쟁여두었다가 휴가나갈때 민간인들에게 팔곤 했다. 워낙 어려웠던 시기라 군대에서 배급나오는 담배도 시중에서는 구하기 힘들었던 탓에, 그렇게 판 돈이 꽤 짭짤했다.


그리고 효도한답시고 흡연자셨던 외증조부에게 얼마 갖다드리면 아주 흡족해하시며 아들이 드리는 담배를 받아들이셨다.


하지만 그 시기 군대에는 그렇게 짬짬이 용돈벌이를 하는 할아버지와 담배꽁초 하나만 달라며 애원하는 가난한 군인들만 있었던 건 아니었다. 그렇게 힘들게 지내던 시기에도 부자는 있었다. 부자는 군대에 와서도 부자였다. 보급받은 담배를 흥청망청 피워제끼고 담배가 모자르면 싸제로 담배를 사다가 피우는 사람도 소수지만 있었다.


그래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난하던 시기였다. 물자도 없고, 가져본 적도 없는 사람들이었다. 군대에서는 보름에 한번 담배를 보급해주었지만, 군인들은 처음의 그 많은 양에 정신을 못차리고 계획성없이 담배를 소비했다.


지금 당장 가진 것들을 써버리지 않으면 불시에 잃을 수도 있다는 불안감을 가지고 있었던 탓일까?






길었던 군생활이 끝나갈 무렵, 어느날 밤 할아버지는 본인이 덮고 있던 모직담요를 만지작거렸다.


진초록의 국방부 담요는 A급으로 두툼하고 톡톡한 원단으로 만들어진 제품이었다. 수십년이 지나도 쓸 수 있을 것처럼 튼튼했다. 50년대 군대에서는 입대할 때 받은 전투복과 신발 담요를 비롯한 물품들을 죄다 반납해야했다. 매서운 눈을 한 담당관이 전역하는 군인의 반납 상황을 하나하나 다 확인하고 있다는 건 이미 알고 있었다.


집에 가면 멀쩡한 이불하나 없이 다들 구멍난 이불에 가진 옷들을 껴입고 자는데……. 할아버지는 모직담요를 당겨서 덮으며 생각에 잠겼다.



말년휴가를 나가게 된 할아버지는, 집에 가기 전 원주시장에 들렀다.


할아버지는 오래되고 낡은 물건들을 쌓아놓고 파는 난전 바닥을 샅샅이 뒤졌다. 진초록의 낡고 지저분하고 얇게 닳은 담요를 찾아냈다. 다시 쓰지 못할 정도로 낡은 담요는 헐값에 구입할 수 있었다.


집에서 휴가를 보낸 할아버지는 낡은 진초록색의 싸제담요를 잊지 않고 꼭꼭 챙겨서 복귀했다.


그리고 제대하는 날, 마지막으로 군에서 받은 보급품들을 모두 들고 담당관에게로 갔다. 담당관은 서류를 들고 할아버지에게 고갯짓을 했다.


전투복 상하의, 전투화, 전투모… 담요 하나.


매서운 눈으로 목록과 물품들을 확인한 담당관은 별다른 제지없이 할아버지를 보내주었다.


할아버지는 군대를 나와 단양역으로 가는 기차를 탔다. 품 안에는 질좋고 두툼한 국방색 담요가 납작하게 끼워져있었다.


그 국방부 담요는 내 외갓집에서 수십년동안 알차게 쓰다가 마지막에는 화투판으로 사용되었고 내가 태어나고도 몇년이 더 흐른 뒤에 장렬히 전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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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기 4291년 12월 8일에 찍힌 할아버지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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