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으로 가는 길-9
우리를 태운 차는 고향의 중턱을 단번에 휘어 돌지 못한다.
오르막은 급하고 모퉁이를 휘어 도는 도로는 뾰족하게 각을 세웠다. 연결되지 않았던 길을 생각해 보라고, 얼마나 반듯해졌냐고, 아무리 이해를 포개도, 과거를 지우고 편리에 익숙해진 우리는 그저 부족한 생각을 뒤적이며 아쉬움을 달랠 뿐이다.
웃서고지 오르는 길은 부도 앞바다에서도 훤히 보였다. 아버지 장례식을 마치고 우리가 다시 뭍으로 떠나기 위해 여객선을 기다리던 종선에서, 커다란 엄마의 설움을 유추할 수 있었던 건, 한쪽 팔을 돌담에 올린 채 엉거주춤한 자세로 꼼짝하지 않는 엄마 모습이었다. 그때 나는 툭 터진 슬픔을 애써 깨물며, 무슨 일이 있어도 우리 엄마는 우리가 지켜야 한다고 다짐했다.
울컥울컥 차오르는 그늘을 가두고 다른 길을 돌아볼 여지가 없다는 것은, 쉽게 이탈을 꿈꿀 통로가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무언가에 휩쓸려 떠내려갈까 봐 안절부절못하며 온 힘을 다해 서로를 끌어안고 있었다.
하얀 카라의 단아한 교복을 입고 이 길을 걸어 집으로 올라갈 때면 주변에서 밭일을 하고 계시던 동네 어른들은 “아이고, 이제 시집가도 되겠다.”라고 놀리곤 하셨다. 그때 내 키는 해가 바뀔 때마다 10cm씩 자라서, 먼저 커버린 친구들을 거의 따돌리고 있었다.
이쯤 어딘가에 엄마가 일구던 작은 밭이 있었다. 내가 밭에 가는 날은 심부름으로 오이나 가지를 따러 가는 날이었다. 하루는 가지 꽃이 하도 예뻐서 쪼그려 앉아 머뭇거리다가, 몇 개의 별이 갑자기 쏟아지는 엄청난 통증에 아득해져 풀썩 주저앉고 말았다. 고통의 영문도 모르고 죽었다 생각했는데 다시 살아나 발견한 것은 왼손을 다부지게 물고 있는 철망 상자였다. 얼굴이 하얗게 질린 채 돌아온 나에게 엄마는 “하다 하다 이제는 쥐덫에 물려오냐”라고 버럭 화를 내시고는, 너무도 간단하게 쥐덫의 주둥이를 벌려주셨다. 이래저래 서럽고 억울한 날이었다.
그래도 아버지는 억새풀을 하러 낭끄터리에 가는 날이면 나를 앞세우셨다. 그러고는 온 바다에 깔린 은빛 윤슬과 한 몸이 되어 출렁이는 억새꽃을 담아 오게 하셨다. 억새풀을 풀어놓고 뒷마당에 앉아 한가롭게 이영을 엮으시다가도, 내가 좋아하는 노래가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면, 급하게 목소리를 높여 나를 부르셨다.
아주 오래전
아버지를 따라
낭끄터리에 갔습니다
먼 소리도가 보이고
하늘 기둥 철탑 아래
사각사각사각
아버지 다리를 스치는
억새풀 소리였는지
내 다리를 스치는
바람 소리였는지
흥건히 젖어 우는 옥빛 파도는
지친 삶의 표상이었는지
끝없이 끝없이
춤만 추고 있었지요
아스라이 먼 옛날부터
바다는 그 자리에
또 그렇게 살아갈 텐데
한때는 바다도 노을도 모두
이별의 형상인 줄 알았습니다
지금도 그곳엔
은빛 융단이 깔리고
사각사각사각
아버지 다리를 스치던 억새꽃이
바람결 내 소식
기다림에 지쳐 있겠지요
*낭끄터리-낭떠러지(금오열도 방언)
*소리도 (금오열도에 속한 섬)
단편으로 읽으셔도 무리 없게 설정하였지만
프롤로그를 참고하시면 더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