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서고지 오르는 길

고향으로 가는 길-10

by 애린 이종희

어제의 노을이 오늘의 자리에 없음을 일깨우던 내 유년의 높다란 새랍이 보인다. 바로 그 높이에서 왼쪽 담을 꺾어 나오면 윗샘으로 이어지던 비탈길은 곧장 직진하는 대나무의 습성에 온전히 침식되었고, 돌담을 따라 안도로 오르던 길은 잡목들의 자리다툼에 영토를 잃었다.


틈만 나면 돌담을 키우시던 할아버지가 새랍에 있는 돌의자에 앉아, 세상에서 제일 재미없는 가락(시조)을 느슨하게 흥얼거리던 풍경은 꿈에서 본 것일까. 그 모든 것을 지우는 것은 결국 세월이라고 할아버지는 이미 의식하고 계셨던 것일까.


도로 끝에 하차한 우리는 우비 매무새를 고치고 장화를 신었다. 바로 건너편에 동백낭무숲이 보인다. 아니, 그보다 먼저 인위적으로 도려진 아치 터널이 보인다. 대대로 울창했던 동백나무숲이 움푹 패이는 동안, 힐끔 쳐다보고 가볍게 스쳤으면 그만이라는 핀잔이 여기저기에서 터져 나온다. 거대한 기류는 무엇에 쫓겨 두고두고 치유할 수 없는 생채기를 저리도 또렷하게 남긴 것일까. 새로운 구도가 너무 낯설어, 그곳에서 꿈을 키우며 무럭무럭 자라던 우리의 추억을 찾을 수 없다.


제멋대로 뻗어버린 생각의 잔가지를 밀치며 아치 터널을 빠져나간다. 제초기가 들풀을 스친 자국들이 가지런히 도열된 길을 따라 오른다. 불쑥 고개를 내민 삐비꽃이 보이고, 지난해 돌아가신 큰아버지 무덤이 보인다. 그리고 흠뻑 젖은 채로 무덤가에 철조망을 치고 계신 사촌오빠가 보인다.


“형님, 우리 막둥이 두고 갈까요?”

“아이고, 됐네. 내가 오히려 그 막둥이 치다꺼리할 걸세.”


오빠들의 대화에 어리둥절하던 우리 막내, 뒤늦게 벙근다.






웃서고지 오르는 길 (2008.1)


서녘을 향해 있는 우리 섬 ‘서고지’는 아랫동네 평지 주변을 빼곤 모두 웃서고지라고 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웃서고지보다 아랫서고지를 더 많이 알아주는 것 같았고, 더 많은 영역을 차지하는 것 같았다. 아마도 그건 평지와 다름없는 바다가 바로 앞에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웃서고지를 오르기 위한 첫 관문은 계단인데, 그 계단이 그렇게 가파르고 높다는 것을 어른이 된 후에야 알았다.


늙은 짜밤(잣밤)나무가 그늘을 만들어준 으슥한 길을 따라 오르다 보면 약간 가파른 곳에 웃서고지 첫 샘이 있었다. 어릴 적엔 그곳에서 귀신이 나타난다는 전설이 있어서 밤이 되면 그 길을 따라 오르는 것이 여간 두려운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정작 그곳에서 귀신을 만났다거나 보았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 샘을 지나면 동백나무 울타리를 앞에 두고 양철지붕이 있는 내 친구 집 돌담이 있다. 그 친구 엄마는 돌담 위에 색색의 채송화를 키우시는데, 그 집 담을 스치는 사람들의 눈길은 항상 거기에 머물다 가곤 했다. 이른 아침 친구네 채송화를 보고 있노라면 그늘은 아예 없었던 것처럼 밝아진다.


그리고 그 집 돌담을 휘어 돌아 다시 돌계단을 따라 오르다 보면 또 다른 친구네 집으로 향하는 작은 샛길이 있고, 그 샛길이 끝나는 곳엔 키 큰 돌배나무가 있었다. 듬성듬성 피었던 하얀 배꽃이 봄바람에 날리면 배추흰나비의 가녀린 날갯짓을 보는 것처럼 가슴이 아렸다.


그 친구네 집 돌담은 어느 성벽같이 길어 그 길이 아니더라도 곧장 돌계단만 따라 올라가면 푸른 담쟁이에 가린 돌담을 만날 수 있었다. 그 계단의 끝 무렵엔 수양버들이 늘어진 울 엄마의 아담한 텃밭이 있다. 그 텃밭에 있던 집이 허물어지기 전, 나는 엄마랑 단둘이서 그 집에서 살고 싶었다. 그 집은 더 이상 계단을 오르지 않아도 보이는 것이 참 많았다. 내 작은 소망이 이루어졌더라면 나는 엄마의 급한 성격이 싫어서 자주 외로웠을 것이고, 엄마는 내 고집이 미워서 자주 답답하셨을 것이다.


두 해 전, 엄마는 그 밭에서 뽑은 콩대를 엄마네 옥상으로 옮겨 와 알곡들이 튀어나갈까 조심스레 털어내고 있었다. 그런데 하필 소낙비가 때마침 부는 바람과 합세해 엄마의 옥상으로 들이닥친 것이다. 엄마는 허둥지둥 콩대 위에 비닐을 씌우며 알곡들이 비에 젖을까 몹시도 허둥거리셨다. 그때서야 나는 한 알의 콩에게도 돈으로 살 수 없는 귀한 가치가 있다는 것을 알았고, 지금은 엄마의 알토랑 같은 사랑의 알곡을 만날 수 없음에 아파하고 있다.


우리 텃밭이 끝나는 자리에 이르면 돌계단도 끝이 난다. 그리고 그 섬의 중간을 관통하는 오솔길과 그 길을 앞에 두고 아름다운 마삭줄이 가득 뻗은 돌담을 만날 수 있다. 그 넝쿨의 성장 속도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빨랐던 것 같다. 그 집주인이 아무리 잘라내도 마삭줄은 자주 담을 넘나들며 이탈을 꿈꾸었다 지금도 가면 유난히 붉은 잎이 꽃인 양 섞여 있는 마삭줄이 세상을 향해 늘어져 있을 것이다.


그 담을 지나 다시 오솔길을 걸으면 작은 솔밭을 만난다. 그곳에 서서 망산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나도 모르는 아련한 그리움이 밀려오곤 했다. 내 사춘기 시절, 사촌 언니의 아홉 살박이 둘째 딸애가 그곳에서 달려오면 나는 ‘캔디’라는 만화를 연상하기도 했다. 그 애가 뛰어오는 모습이나 웃는 모습은 정말 캔디같이 슬프면서도 맑아 나도 모르게 가슴이 떨렸다.


그 길을 따라 걷다가 이윽고 강 씨네 집에 이르면 어느새 길은 할미꽃처럼 허리를 굽는다. 그 길처럼 나도 허리를 굽으면 볼 수 있는 풀꽃들이 참 많았다. 남색 달개비며 하얀 별꽃이며…그 어디쯤 자줏빛 칡꽃에서 나는 향기는 알맞게 가미한 가을바람에 더욱 싱그러운 맛을 우려내곤 했다.


그런 내 서정을 지나 다시 언덕길을 오르면 개구리울음 낭자하던 칠공주네 다랑논이 있고, 그 언덕 위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울 할머니 남새밭이 있다. 그리고 그 밭을 내려다보며 걷다 보면 웃서고지의 마지막 샘이 나온다.


어린 날, 나와 오빠를 할머니 집에 남겨 두고 뭍으로 떠나신 엄마가 잠시 우리를 만나러 오셨는데 그 샘가에서 엄마께 한참 동안 여쭈던 말을 다시 여쭈며 때마침 앞섬으로 지고 있던 붉은 노을을 보았다.


“엄마, 이제는 언제 와?”

“내일, 모레, 꼬패(글피)….”

“그때 꼭 오는 거지?”

“그럼, 오고말고….”


아직도 생생한 기억의 질문에는 ‘내일, 모레, 꼬패’가 있고, 그 꼬패(글피)라는 날은 내 가까이 올 것 같지 않은 노을처럼 내가 찾으면 슬퍼지고, 내가 외면하면 떠나버릴 것 같은 형상으로 내 가슴을 자주 무너뜨리곤 했다. 어린 내가 그때 했던 말이나 모습이 엄마의 가슴에 슬픈 별이 된 줄을 먼 훗날에서야 나는 비로소 알았다.


넓은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언제나 할머니 집 새랍을 통해 들어와 황토마당과 친구네 집 감나무가 내려다보는 뒤란으로 통했다. 그 바람은 햇볕 받아 빛나는 남쪽 언덕의 풀잎들을 찰랑찰랑 흔들며 지나가곤 했다.


나는 할머니 집 마루에 앉아 꿈결처럼 몽롱한 눈길로 그것들을 바라보는 것을 좋아했다. 내가 지금 내 어린 날 보았던 그리운 풍경들을 다시 만나고 싶고, 그것들을 좋아하는 어느 맑은 영혼을 그리워하는 것처럼.




*새랍/대문(금오열도방언) *웃서고지(금오렬도 속해있는 지명)


단편으로 읽으셔도 무리 없게 설정하였지만

프롤로그를 참고하시면 더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