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년의 등불아래

고향으로 가는 길-11

by 애린 이종희


무덤 주변에는 과숙으로 패버린 삐비*가 지천이다. 아쉬운 마음에 두리번거리는데, 덜컥 여물지 않은 삐비가 걸린다. 하나의 삐비가 눈에 익으니 싱싱한 삐비들이 여기저기 보인다. 보이는 대로 뽑고 있는 나를 지켜보던 사촌오빠는 먹지도 않을 거면서 뭐 하려고 힘들게 뽑느냐며 웃으신다. "안 먹어도 맛있고, 뽑기만 해도 배부른 게 바로 삐비"라는 말이 하마터면 세상 밖으로 튀어나올 뻔했다.


아버지 산소 가는 길 중에 가장 힘든 구간은 지금부터다. 선두에 있는 오빠가 들풀을 밟고 잡목 가지를 쳐내며 전진해도, 5월 넝쿨들의 영역 다툼은 끝이 없다. 설상가상 수풀 속에 숨어 있는 크고 작은 돌멩이들은 밟기만 하면 금방이라도 우리를 넘어뜨릴 듯 위태롭다. 그 속에 파충류가 꿈틀거린다 해도 눈치채지 못할 만큼 사방은 완연한 초록이다. 그 틈에 희디흰 살결을 드러낸 찔레꽃이 환하다. 나도 모르게 속도를 늦추자, 한눈팔지 말라는 오빠의 목소리가 날아온다.


인적이 끊기자마자 인적을 지워버린 초록들은 자신의 본능을 믿으며 묵묵히 종족 번식에 몰입했을 것이다. 작은 사잇길을 두고 층층이 놓여 있던 밭들은 모두 어디로 물러선 것일까. 그 밭을 떠받치던 돌담 축대는 어느 안쪽을 지탱하고 있기에 또렷했던 경계선이 허물어진 것일까. 익숙했던 길들이 통째로 사라진 옛길의 실마리가 어렴풋이 풀리기만 해도 반갑고 고마워서 나는 금세 아는 척하며 두리번거린다.


어느 보름날이었는지, 얼큰하게 취해 집으로 돌아오신 아버지를 따라 이 길까지 걸어온 적이 있다. 아버지는 한사코 달을 향해 바로 서게 하고는 묻는 것이었다.


"저 달 속에 뭐가 보이냐?"

"아무것도 안 보여요!"

"자세히 봐야지, 토끼가 두 마리나 있는데?"


텅 빈 달 속에서 토끼를 두 마리나 찾아내시다니, 참으로 놀라운 일이었다. 나는 그때 어른이 되면 달 속의 토끼가 보일 거라고 확신했다. 아버지는 없는 사실을 함부로 말한 적 없으셨으니까. 우리만 보면 좋아서 연신 입꼬리를 올리시던 아버지는 키에 비해 너무 사뿐히 걸어서, 멋모르고 밟힌 개미마저도 무사할 것 같은 생각이 들 때가 있었다. 시간이 날 때마다 안겨주신 부정의 힘 속에는 위태롭던 길을 반듯하게 펴게 하고,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게 하는 마법이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곤 했다.




유년의 등불 아래 (2018)


달님이 음습한 공기를 덮고 잠들던 밤,

오빠가 산 너머 마을에서 돌아오지 못하면서

마중을 가라는 아버지의 명이 떨어졌다.


가지 않겠다는 두 동생을 겨우 달래 가며

돌계단을 지나 으슥한 산길에 접어들자

무덤가에 장승처럼 서 있던 소나무가

어둠의 늪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산속을 떠도는 슬픈 애장의 흔적들이

금방이라도 튀어나올 것만 같은 두려움에

나는 빈 가지를 흔들며 지나는 바람처럼

온갖 구실로 만든 못생긴 언어를 소환해

오빠를 원망하고 있었다.


어느덧 마을 불빛마저

암막 커튼에 가려 흔적이 없는데

한 시절 끔찍한 폭격에 이슬이 된 넋들이

비 오는 밤이면 부활한다는 포구를 지척에 두고

새까만 물체가 방방 뛰어오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아무리 의식의 촉수를 뾰족하게 세워도

감당할 수 없는 공포가 절정에 이르렀을 때

손전등 빛으로 빨려 들어온 것은 오빠였다.

순간, 등 뒤에서 낯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허허, 그렇게 무섭더냐.”

줄곧 우리 뒤를 밟고 있던 아버지셨다.


나는 지금도 그늘진 생각이

더 스산한 길을 만들어 세상 미아로 느껴질 때면

바람과 바람이 유영하는 하늘빛 시간을 걸어

그곳에 가고 싶다.



*삐비/삘기의 방언


단편으로 읽으셔도 무리 없게 설정하였지만

프롤로그를 참고하시면 더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