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으로 가는 길-12
밀림을 헤치고 간신히 빠져나온 우리는 드디어 묵직한 그늘이 드리워진 숲으로 들어선다. 날로 울창해지는 숲은 아직 볕을 안으로 끌어들일 수 없어 잡목이나 넝쿨이 쉽게 번질 수 없다. 그 볕을 차단한 일등공신은 칡넝쿨이다. 나무의 바깥을 붙잡고 끝없이 위로 올라간 칡넝쿨 잎은 바람에 팔랑일 수 있을 만큼 가벼운 까닭에, 나무는 간신히 볕을 들이키며 성장 속도를 이어갈 수 있었을 것이다.
동네에서 가장 높은 자리에 터를 잡은 마을로 내려가는 길이 보인다. 너무 짙은 그늘을 오래 가두어서 그런지, 낮은 돌담의 낯빛이 창백하고 부석 하다. 저 사잇길을 걸어 등교하던 사계절이 나에겐 있었다. 한 곳에 정착하면 안 되는 내 유년의 완고한 운명이 열어준 꿈같은 길이었다.
윗집이라 불리던 내 친구네 집은, 새랍으로 올라가는 돌계단부터가 가지런히 정돈된 안락함이 있었다. 잘 가꾸어진 정원 안쪽으로 아래채가 누워 있고, 위채는 몇 개의 계단을 오른 높이에 있었다. 위채에서 정면을 보면 성벽 같은 높다란 돌담이 있었고, 뒤로는 촘촘한 대나무 숲이 있었다. 그리고 오른쪽으로 층계를 이룬 정원을 휘어 돌면 새랍이 있었다. 그 곁에 서 있던 돌배나무의 꽃이 하늘하늘 날리던 봄날은 너무 어지러운 흘림체로 고여 있어, 지금도 그 집을 생각하면 황홀한 멀미가 난다.
윗집을 빠져나와 한참 동안 계단을 내려가면 우리가 살던 아랫집이 있었다. 아랫집 돌담 허리에 길이 있고, 길 아래 축대는 너무 견고해서 건너편에 자리 잡은 동백숲이 가지를 길게 늘여도 돌담에 드리운 햇살을 쉽게 거두지 못했다. 적막한 숲 속에 앞다투어 피어나던 꽃들과 돌담에 기대어 넝쿨지던 포도 줄기, 그리고 막다른 길에 흘러넘치던 샘물과 길이 끊긴 언덕에 연분홍으로 흐드러지던 복사꽃의 만개... 대대로 가꾸어오던 유서 깊은 그곳을 다시는 볼 수 없다는 것은, 너무 소중한 사람을 잃어버린 것만큼이나 애석하고 안타까운 일이다.
내가 탄 배가 떠나가는지, 육지가 떠나는 건지 내 눈으론 구분할 수 없었던 겨울날이었다. 우리 식구가 탄 배는 또 얼마 큼의 시간을 바다에서 보냈는지 모른 채, 우리는 드디어 우리 섬에 도착했다. 우리 식구들이 오랜 객지 생활의 종지부를 찍던 날이었다.
그리 많지 않던 세간살이 중에는 엄마가 귀하게 여기시던 삼단 자주색 자개화장대가 있었지만, 그것은 어른들의 몫이었고, 우리 남매도 부모님을 도와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의 짐을 들고 엄마 뒤를 따랐다. 그런데 엄마는 가도 가도 끝이 없을 것 같은 길을 따라 한없이 올라가셨다.
이윽고 웃서고지 할머니 집 새랍이 보이는데도 앞선 엄마는 곧장 동백숲 모퉁이를 돌아 작은 오솔길로 접어들고 계셨다. 그 순간 불길한 예감이 엄습해 오긴 했어도, 내가 든 세간살이 무게를 앞서지는 못했다.
마침내 좁은 오솔길과 아치를 이루는 동백 터널을 지나자 잠시 숲이 비켜간 하늘 아래 낮은 무덤 하나가 있었다. 그리고 그 길을 휘어 돌아 곧장 가리키는 방향에 높다란 돌담이 막다른 숲 사이에 아슬하게 걸쳐 있었다.
그렇게 우리는 중학교로 진학해야 하는 오빠만 남겨진 여수에서 너무 멀리 떠나온 것이다. 처음 고향으로 간다고 했을 때의 설렘이 하늘을 빼곡히 가린 동백숲에 그늘져 빛을 잃는다 해도, 내 찬란한 유년의 숲 생활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우리 동네에서 제일 높은 동네였던 숲 속에는 윗집과 아랫집이 있었는데, 우리는 아랫집 아래채에 세 들어 살게 되었다. 내 정든 할머니 집으로 들어가게 되기까지 1년 남짓한 시간을 그 숲 속의 작은 아래채에서 살게 되었는데, 나는 먼 훗날 몽고메리의 빨간 머리 앤을 읽으면서도, 베트남 고무나무 군락지를 스칠 때도 그 숲 속을 생각했다. 혹시라도 내 안에 서정의 물줄기가 흐른다면, 그것은 바로 그 숲에서 나는 샘물의 흐름일 테고, 그 푸른 물은 속절없이 말라가는 내 마음을 자주 적셔주었다.
숲 속 아랫집 돌담에는 포도나무가 끝없이 넝쿨지어 오르고, 뒤란 양지바른 언덕에는 앵두꽃이 눈부셨다. 그리고 앞마당 화단가에는 수국이 넓은 땅을 품으며 몸집을 늘리는데, 수국이 지기까지 오묘한 색의 조화가 흐른다는 것을 그때 처음 알게 되었다. 새랍을 빠져나와 오른쪽 돌담 모퉁이를 휘어 돌면 동백나무 밑둥치에 작은 샘이 있었는데, 그 샘물 빛깔도 그러했지만, 그 샘가의 아름드리 동백나무에서 들리던 동박새 소리야말로 청아한 바람소리를 닮아 숲 속의 적막한 기운을 자주 밀쳐내주곤 했다.
샘을 뒤로하고 좁은 풀길을 따라 곧장 걸어가다 보면 마당널이라 불리는 넓은 평지가 있었다. 그 주위에는 잘 정돈된 윤 씨 집안 묘지가 있었는데, 그곳에 푸른 잔디가 고운 빛을 발하면 동네 사람들은 음식을 들고 그곳으로 소풍을 가기도 했다. 햇살에 목욕한 나뭇잎이 산들바람에 찰랑거리는 숲 속 잔디밭에 온 동네 사람들이 왁자지껄 둘러앉아 점심을 먹던 풍경을 회상할 때면, 그것은 어쩌면 꿈에서 본 풍경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뻐꾹새 울음소리 따라 마당널에 누렇게 보리가 익어갈 때면, 넓은 보리밭에 숨은 암꿩이 느닷없이 날아가곤 했었다. 꿩이 비상을 시작하는 그곳으로 일제히 깡충거리며 달려가보면, 그곳엔 어김없이 꿩알들이 따끈하게 데워져 있었다.
그 광경을 같이 보았던 내 친구는 바로 윗집에 살았는데, 그 집은 정말 대가족이 함께 사는 종갓집답게 넓은 마당과 높다란 장독대, 아름다운 정원이 있었다. 푸른 정원 속에 집을 짓고도 그 안에 작은 연못과 어우러진 예쁜 정원을 가꾸며 살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키 큰 돌배나무가 서 있는 친구네 새랍을 빠져나와 돌계단을 따라 걷다 보면 여전히 그곳은 어두운 숲이었고, 그 숲과 이어진 들길을 따라 걷다 보면 곧장 안도로 향하는 푸른 솔밭길이 나왔다. 그 길에서 여린 산자고꽃이 거친 바람에 떨고 있는 모습을 처음 보았을 땐, 그 꽃이 그곳에 피면 안 될 것 같은 생각에 한참을 들여다보곤 했다.
마당널 짜밤나무는 여전히 건재한지, 그 숲 속 샘가에 피었던 개복숭아꽃은 지난봄에도 눈부신 꽃비를 내렸는지. 그곳의 안부가 궁금할 때면 나는 곧장 달려가 확인하고 싶어진다. 그러나 정말 그것은 환영이었을까 싶게, 그 숲 속에는 아무도 살지 않고 우리가 걷던 작은 길들도 흔적이 없다.
그래도 내 아름다운 귀향의 꿈은 유통기한이 없다.
그리운 동산에 찬란한 내 유년의 숲이 숨어 있고,
내 간절한 마음이 그곳에 닿는 동안에는...
*새랍/대문 방언 *짜밤/잣밤
*마당널/서고지에 있는 지명
단편으로 읽으셔도 무리 없게 설정하였지만
프롤로그를 참고하시면 더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