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표가 필요할 때
요즘 나는 ‘빨간 머리 앤’에 이어 ‘알프스 소녀 하이디’를 정독 중이다.
마음이 헝클어져 사사로운 것에 흔들리거나 침울해질 때, 나에게서 빠져나가는 산소 방울이 혼탁할 때, 그럼에도 내가 지금 어떤 상태인지도 모르고 욕심을 낼 때, 가장 위험하다.
다양한 사회적 지위와 역할 속에서 자라난 역할 갈등을 잠재우는 데에는, 그 가지를 전지 하는 단순한 원리가 있다. 그걸 알면서도 방치하며 안으로 곪아가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은 없다.
“많은 세월을 당신의 그늘 속에서 편했는데, 이제 와서 손을 떼면 우리는 어떻게 합니까?”
“우리는 홀로 가지를 뻗을 줄 모르고, 그 일을 수행할 만한 나무도 없습니다.”
“참, 애 많이 쓰십니다. 그 오랜 세월, 나 같으면 절대로 푸르지 못하지요.”
하지만 숱한 고비를 넘기며 뿌리내린 나무는 당연한 권리로 행동하는 사소한 바람으로부터 흔들린다는 것까지는 감지하지 못한다. 누군가를 향한 진심 어린 다정이, 그 마음을 바라는 기대와 한 몸으로 접목될 때가 오면, 그래도 지근거리에서 가장 잘 알고 있는 자신이 도와주어야 한다.
벗어날 수 없다면 그 안에서 신선한 공기를 찾아야 한다. 당분간 나는 저 예쁜 동화를 읽으며 손 하나 까딱하고 싶지 않은 잎새에게 쉼표를 주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