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 난 뭐야?
“넌 대체 뭐 하는 새끼야?”
“너 지금 뭐 하자는 거야?”
“얘 뭐야 대체?”
살다 보면 타인에게 들어 볼 법한 말이다.
가끔은 스스로에게도 묻는다.
‘난 대체 뭐 하는 놈이지? ’
‘지금 내가 뭘 하려는 거지? ‘
‘난 뭐야 대체? ’
무의식 속에서 나조차 스스로에게 계속해서 묻는다.
이러니 타인들도 나를 궁금해 할 수밖에.
어제도, 오늘도, 아마 내일도 계속해서 물을 것이다.
애석하게도 우리의 두 눈은 물체가 반사한 빛만을 인식한다.
그 외에 것은 보지 못한다.
우리는 소리를 눈으로 보지 못한다.
감정을 눈으로 보지 못한다.
우리는 충동을 눈으로 보지 못한다.
그래서 귀가 있다.
코가 있고, 피가 있다.
“너 뭐 하는 새끼야? ”
잔뜩 일그러진 표정으로 묻는 타인의 얼굴을 본다.
그리고 그의 음성을 듣는다.
그 후 뇌가 판단하여 피를 움직인다.
피의 온도를 느끼고, 불안함에 의해 분노를 느낀다.
혹은 수치심을 느낀다.
아니면 또 다른 어떤 감정을 느낀다.
우리 한 번 타인의 저 날카로운 질문으로 인해 미안함을 느낀다고 가정해 보자.
미안함을 느껴 표정이 굳는다.
말문이 막혀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우물쭈물 대다 보니 식은땀이 흐른다.
우리의 깊은 곳에서 우러나온 미안한 마음이 짧은 시간임에도 자연스럽게 신체로 표현이 된다.
저 말 뒤에 따라오는 타인의 질문.
“왜, 기분 나쁘냐? “
이거 참 억울할 따름이다.
난 미안해서 어쩔 줄을 몰라한 건데, 그걸 보고 상대는 내가 기분이 나빠 말이 없는 줄 아니까 말이다.
그럼 어느새 미안한 마음은 사라지고, 내 마음을 알지도 못하면서 막말을 해대는 상대에게 반발심이 들 것이다.
그럼 이제부터 나와 상대는 긴 싸움을 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이쯤에서 생각해 보자.
정말 미안하기만 했을까?
그 안에 억울함이나 기분 나쁨이 섞여 있진 않았을까?
상대와 나는 서로 볼 수 있는 게 다르다.
상대는 내 표정을 볼 수 있고, 자세와 제스처를 본다.
난 내 감정을 인식하고, 내 생각을 볼 수 있다.
그럼 상대가 본 나와 내가 본 나 중 무엇이 ‘진실된 나’에 가까울까?
난 50:50으로 본다.
상대가 본 나도 진실된 나.
내가 본 나도 진실된 나.
그러면 ‘100에 진실된 나’는 너와 나의 시선이 더해졌을 때 완성된다.
작년 겨울 아침 일찍 따뜻한 햇살을 받으며,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회의에 갔다.
정말 기분 좋은 하루였다.
조금 늦게 일어나서 모자를 눌러쓰고 면도를 하지 않은 채로 갔지만, 정말 상쾌한 컨디션으로 약속 장소에 도착했다.
약속 장소에 도착하고, 이어폰을 빼며 가방을 내려놓았다.
그러자 내 모습을 본 팀원이 말했다.
”오늘 기분이 별로 안 좋구나. “
당시에는 평소에도 내 눈치를 자주 보는 팀원이기도 하고, 별로 신경이 쓰이는 말이 아니어서 기분이 좋다고 하고 넘어갔다.
그날 일정을 마치고, 침대에 누우며 생각했다.
‘내일 또 가야 되네. ’
그때 생각했다.
그 회의 장소는 어두 컴컴하고, 다소 폐쇄된 공간이어서 항상 문을 열기 전 살짝 마음이 불편했다.
예민한 감수성을 지닌 그 팀원은 나의 그 점을 캐치해 준 거다.
참 고마운 일이다.
난 그날 상쾌한 마음에 기분이 좋았지만, 내 기분과는 상반된 공간에 들어가는 것이 다소 부정적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날 해결해야 할 작은 문제들에 대한 우려가 섞였을 것이다.
상대가 나를 바라보는 시선과 내가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더해졌을 때 비로소 100의 진실에 가까운 나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만약 우리가 무인도에 떨어져 오로지 생존만을 위해 살아간다면, 사실 타인이 나를 어떻게 보는지는 상관없다.
하지만 나는 어디에 살고 있는가?
난 어떤 가정에서 어떤 사람들과 자라왔는가?
난 어떤 국가에서 어떤 사회 구성원들과 함께 성장하고 있는가?
내가 타인과 함께 살아가는 한 나의 행동 상당수는 타인에 의해 발현될 것이다.
그리고 나의 생각, 이념, 철학, 정의, 가치관 등은 모두 타인과 엎치락뒤치락하며 자연스럽게 발전되었을 것이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대체 어떤 사람인가?
그것을 알고 싶다면, 타인의 눈을 믿어야 한다.
그리고 나를 보는 나의 눈을 믿어야 한다.
아마 삶은 그렇게 반복되는 과정 속에서 끝없이 나를 찾아가는 여행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