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고 지내던 소중한 순간들
브루노 마스, 제이슨 므라즈 같은 싱어송라이터들의 노래도 좋았고, 콜드플레이, 마룬파이브, 라디오헤드 같은 밴드들도 정말 좋아했다.
하지만 당시 음악을 듣는 건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핸드폰이 있다고 해서 마음껏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시대는 아니었고, 부모님은 공부와 관련 없는 물건은 잘 사주시지 않았다.
나는 용돈을 어쩌다 적게 받으면 2천 원, 많게는 5천 원 정도 받으며 살았기에, 이어폰 하나 갖는 것도 어려웠다.
어쩌다 얻은 이어폰은 금방 고장이 났다.
귀에 전기가 오르거나, 선을 이리저리 흔들어야 지직거리는 소리로 간신히 음악이 들리곤 했다.
운이 좋으면 상태 괜찮은 이어폰을 구할 수 있었지만,
당시엔 음악 플랫폼 구독료를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에, 결국 핸드폰으로 음악을 듣는 건 거의 불가능했다.
그래서 내가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컴퓨터에 헤드셋을 꽂고 인터넷 서핑을 하며 듣는 것이었다.
팝송을 들을 땐 가사 해석도 찾아보며 혼자 소름 돋는 감정에 빠지곤 했다.
학창시절, 음악을 듣는 시간은 나에게 정말 소중하고, 행복한 순간이었다.
지금의 나는, 이어폰 없이는 어디에도 갈 수 없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대중교통을 탈 땐 늘 음악을 듣고, 이어폰 배터리가 없거나 이어폰을 두고 나오기라도 하면 심연 속으로 가라앉는 기분이 든다.
그래서 줄 이어폰을 하나 가방에 항상 넣고 다닌다.
난 이런 준비성만큼은 철저하다.
얼마 전, 자동 재생으로 음악을 듣다가 오랜만에 라디오헤드의 ‘Karma Police’를 듣게 됐다.
처음엔 “이게 무슨 노래였지?” 싶었지만, 곧 중학생 시절, 내가 가장 싫어했던 노래라는 걸 떠올렸다.
라디오헤드는 내 최애 밴드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Karma Police’는 당시 내게 꽤 충격적인 곡이었다.
사실 처음부터 싫어했던 건 아니었다.
그 특유의 우울한 멜로디는 사춘기 소년의 감성과 잘 맞았고, 자주 찾아 들었다.
나는 그때 ‘네이버 웹툰-금요일’을 매주 챙겨봤다.
그날도 눈은 웹툰을 보고, 귀는 헤드셋을 통해 ‘Karma Police’를 듣고 있었다.
그 에피소드는 미스터리 스릴러였고, 정서적으로 예민하던 나는 큰 타격을 받았다. (아마 ‘지아비’ 에피소드였던 것 같다.)
그날 이후, 웹툰 ‘금요일’도 듣지 않았고, ‘Karma Police’도 듣지 않았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 노래와 만화는 내 마음에 깊게 스며들어 감정적으로 과부하를 일으켰던 것 같다.
그만큼, 음악을 듣는다는 건 나에게 중요한 일이었다.
중학생 때의 나는 음악을 언제 어디서나 자유롭게 듣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리고 언젠가는 음악과 관련된 일을 하고 싶었다.
그렇다면 지금의 나는?
음악을 언제 어디서나 들을 수 있다.
음악 관련된 일을 하진 않지만, 나는 음악에서 많은 영감을 얻고 있다.
중학생의 내가 지금의 나를 본다면, 분명 행복해할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음악을 듣는 모든 순간이 그때처럼 소중한가?
고등학생 때, 나는 처음으로 “예술가가 되고야 말겠다”고 결심했다.
그때 처음으로 꿈이 생겼다.
매일매일 예술가가 된 어른의 모습을 상상했다.
예술대학에 진학해서, 같은 꿈을 꾸는 동기들과 함께하는 대학 생활.
서로 의지하고 자극을 주는 동료.
언더그라운드, 마이너의 세계 속에서 겪는 처절하고 우울한 경험들.
그 모든 것이 나의 꿈이었다.
예술가가 되어, 정해놓은 목표에 도달할 때까지 고군분투하며 절대 포기하지 않는 나.
그 미래의 나를 상상하던 나는 설레는 마음으로 꿈을 향해 한 걸음씩 나아갔다.
그때의 나는 정말 행복했고, 간절해서, 꿈을 이루고 싶어 매일 우는 내가 스스로 좋았다.
진심으로 그랬다.
중학생과 고등학생의 내가 바라던 어른이 되었다.
지금의 나는, 행복한가?
어릴 적 꿈꿨던 어른의 모습 중 일부를 이루지 않았는가?
혹은 그 기로에 서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지금의 이 하루하루는 얼마나 소중한가?
나는 최근, 누군가의 꿈이었을 수도 있는 지금의 내 모습을 나 자신이 왜곡해서 판단하고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그래서 앞서 말한 것처럼, 나는 지난 날들을 찬찬히 돌아보았다.
그랬더니 알게 됐다.
나는 나도 모르게, 마이너의 길 위를 찬란하게 걸어가고 있었다.
이제 나는 어른이 되었고, 새로운 미래를 상상하고 있다.
정말 멋진 일이다.
그 미래의 나는 또 어떤 꿈을 꾸고 있을까?
어디쯤 새로운 문이 나를 기다리고 있지는 않을까?
이 글을 읽는 당신도, 그렇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