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나는 다른 사람들의 말을 잘 들어주는 편이다. 귀를 열어놓고 고개를 주억거리며 상대의 말을 들어준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내가 말해야 할 때를 놓치는 경우가 종종 있다. 특히 남편과의 대화에서 더 그랬다. 온종일 바깥에서 일하고 온 남편은 자기 이야기를 폭풍우처럼 쏟아내기가 일쑤였다. 팀원 때문에 기분이 좋았다거나 다른 팀장의 행동 때문에 분개한 일들, 거래처 점장과 있었던 일들을 퇴근과 함께 나에게 털어놓는다. 그에게는 스트레스일 수도 있겠다 싶어 웬만큼은 다 들어준다. 한 시간가량 듣다가 보면 나도 지쳐 떨어지고 만다. 하루의 마무리는 대부분 그렇게 끝이 난다.
학창 시절, 가족이나 다른 사람들에게 내 의사를 정확히 표현하지 못하는 내 모습을 답답하다고 하는 친구도 있었다. 자기 속말을 다 토해내야 시원하다는 이도 있고, 속엣말을 꺼내놓지 않으려는 사람도 있다. 굳이 따진다면 난 후자에 속한다. 내 입에서 나온 말이 상대에게 상처를 주거나 큰 다툼으로 번질 것을 우려하여 입을 닫는 편이다.
밤낮으로 경제활동이 왕성한 남편이지만 삼시 세끼를 집에서 먹는다. 가끔 남편이 집에 있을 때 같이 외식하고 싶다는 말이라도 할라치면 “난 집밥이 좋아”라는 말로 딱 자른다. 그러면 난 또 꾸역꾸역 밥상을 대령해야 했다. 산책하러 좀 같이 나가자거나 시장 좀 보러 가자고 요청해도 “난 집에 있고 싶어. 나가기 싫어”라고 대답한다. 무엇이든 홀로 하는 게 습관이 되어버렸다. 서운하지만 겉으로 표현하지 않았다. 밤낮없이 일에만 몰두하는 남편에 대한 나의 도리라고 생각했다.
지난 3월에 브런치를 시작하고서도 한참이 지난 5월이 되어서야 남편이 내가 쓴 글을 읽기 시작했다. 그때 ‘남편의 브런치’라는 제목으로 글을 썼던 적이 있다. 그렇다. 남편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정확히 말해 브런치 글을 읽은 후부터이다. 남편은 브런치를 읽으면서 발행한 내 글만 읽는 게 아니라 댓글도 읽는다. 그중에서도 두 작가님의 댓글이 좋아서 항상 찾아 읽고 감탄을 하며 눈물 바람이다.
“마음의 온도 작가님은 어떤 사람이야?”
“예전에 공중파 방송 작가셨대. 왜?”
“마음의 온도 작가님이 쓴 댓글을 보면 당신 마음을 정확히 꿰뚫어 보는 것 같아. 안타까워하고 당신을 위로해 주시더라. 글 어디에도 당신이 슬프다거나 속상하다는 말이 없는데 말이야.”
“맞아, 마음의 온도 작가님은 내 마음을 잘 알아주시는 것 같아.”
“야~ 정말 그러기 쉽지 않은데 나도 모르는 당신 속마음을 위로해 주는 사람이 다 있네. 방송 작가는 아무나 하는 거 아닌가 보네. 사람의 마음을 읽는 능력이 있어야 하네. ”
칭찬 연발이다. 맞다. 마음의 온도 작가님은 항상 내 마음을 어루만져 주고 다독거려 준다. 글에 숨겨둔 내 마음을 항상 들키곤 했다. 상처난 내 마음에 연고를 발라주고 밴드를 붙여주는 심지가 깊은 사람이다. 본인의 글은 맛깔스럽고 재미있게 쓰는 작가님이다. 그러면서도 남의 아픔과 상처를 잡아내어 치료해 주는 마음의 의사가 바로 마음의 온도 작가님이다. 그런 이유로 작가님 주위에는 좋은 사람들로 가득하다. 누구나 진가를 알아보는 모양이다. 나 역시 작가님의 따뜻한 위로의 댓글을 받으면 없던 기운도 다시 생겨난다.
또 한 사람은 소위 작가님이다.
“소위 작가님은 <부사가 없는, 삶은 없다>를 쓰신 분이지?”
“응, 맞아. 자기도 몇 꼭지 읽어봤잖아. 소위 작가님은 왜?”
“소위 작가님은 당신이 잘 되게 진심으로 응원해 주시는 것 같아.”
“맞아, 지난번에 내가 글쓰기에 대해 고민하고 있을 때 나의 고민을 같이 나누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서 진지하게 조언해 주셨어.”
“소위 작가님은 항상 당신이 앞으로 잘 할 거라는 믿음을 갖게 해 주는 댓글을 많이 쓰시더라.”
한 달 전, 글쓰기 교실에서 합평 시간에 상처를 받은 적이 있었다. 내가 쓴 글은 ‘좋은 생각’에나 낼 정도로 평이하고 유니크하지 않다는 평가를 같은 수강생에게 들었다. 글이 쉽고 평이하면 좋은 글이 될 수 없는가에 대한 고뇌에 빠졌다. 글을 쓰기도 싫고 자신감이 확 떨어졌을 때 소위 작가님이 많은 시간을 할애해서 고민 상담을 해 주었다.
“이거저거 해보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출간하신 작가님들도 때론 방향을 잃기도 하신답니다. 아직은 길을 찾는 중이니 다른 사람의 평가에 휘둘리지 말고 물러서지도 말고 마음이 가는 대로 써보세요. 많이 써봐야 합니다.”
이렇게 조곤조곤 말씀해 주신 덕분에 글태기에서 벗어나 다시 나를 찾아갈 수 있었다.
마음의 온도 작가님은 마음을 따뜻이 데워주셨고, 소위 작가님은 글쓰기의 방향성을 알려주신 고마운 분들이시다.
며칠 전 남편이 오전에 쉬는 날, 점심 먹으러 나가자고 하였다. 집밥이 좋고 나가는 게 그리 싫다던 남편이 어쩐 일인가 했다. 마음이 변하기 전에 옷을 주섬주섬 갈아입고 따라나섰다. 내가 좋아하는 보리밥을 먹고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남편에게 말했다.
“자기야, 요즘 좀 달라진 것 같아. 집밥 좋아하는 사람이 바깥에서 밥을 다 먹자고 하고. 웬일이야?”
“난 당신이 아무 생각 없이 사는 사람인 줄 알았어. 브런치 글을 읽어보니 말을 못 하는 게 아니라 안 하는 거였더라고. 오히려 생각이 깊은 것 같더라. 당신이 어떤 생각을 가졌는지 이제라도 알아서 다행이지, 뭐.”
이러는 것이다. 결혼하고 40년 가까이 살아오는 동안 시가나 친정 식구들 그리고 우리 가족에게 큰소리를 치거나 마음 상하는 말을 한 적이 거의 없다. 주로 말을 들어주고 말을 아끼다 보니 남편은 나를 생각 없는 사람이라고 판단하였나 보다. 본인보다 브런치 작가들이 더 나를 잘 이해한다는 점이 양심에 콕 찔렸을지도 모른다. 지금이라도 내 마음을 알아주니 고마울 따름이다.
어제 오전에는 시장도 같이 보러 다녀왔다. 남편이 달라진 것은 다 브런치 덕분이다. 진심 어린 댓글로 위로와 희망을 안겨주신 작가님들 덕분이다.